주간동아 585

2007.05.15

블로그 진화 ing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입력2007-05-09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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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자신의 소설 ‘향수’에서 그루누이라는 인물을 창조한다. 그루누이 자신의 몸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지만 세상 모든 냄새에는 놀라운 감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과 그가 체험하는 세상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루누이와 같은 천재적 감각을 타고나지 않아도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경험할 수 있는 통로와 공간을 갖고 있다. 바로 사이버 세상이다. ‘이곳’은 실재하지만 뇌가 만들어낸 ‘생각’들처럼 눈에 보이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희한한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우리는 데이터와 지식, 상상과 공상, 이야기와 논리, 이미지와 소리들을 엮어 현실과 다른 차원의 집을 지을 수 있다. 더구나 싸고 간편하다.

    블로그 진화 ing

    인터넷에 올라온 개인 블로그들.

    현대인 실존 필요성 충족 일상 속으로 더 침투

    사이버 세상에 짓는 이 두 번째 집은 새로운 건축자재와 공법의 개발로 쉴새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중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것이 블로그(blog)다. 쉬운 접근통로(easy web)로 포털사이트에 가입하고 ‘펌질(남의 자료를 가져오는 일)’만으로도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 블로그다. 무엇보다 블로그는 정보와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라는 현대인의 실존적 필요를 가장 잘 충족한다. 그래서 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으로 전 국민의 74.8%(3412만명)가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이들 중 39.6%(약 1351만명)가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43%가 일주일 평균 1회 이상 블로그를 읽는다고 응답했다(에델만코리아, 2006년 11월 조사).

    그렇다면 블로그의 미래는, 즉 사이버 세상에서 창조하는 자기만의 집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인가. 현재까지 관찰한 결과로 나는 네 가지 키워드를 변화의 에너지로 주목한다.



    첫째는 신선하지만 깊이를 가진 정보와 지식에 대한 욕구다. 이를 바탕으로 부지런함과 디지털 저작도구에 대한 능숙함을 갖추고 자신만의 경험으로 생산해낸 지식을 가진 파워 블로거들이 ‘놀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블로그 세상의 권력관계를 바꿀 것이다.

    둘째, 타인의 인정과 그를 바탕으로 하는 권력추구에 대한 욕구다. 앞서 소개한 에델만코리아의 조사에서도 영향력 행사자의 블로그 활용률이 훨씬 높게 나왔다(한국 63%, 일본 91%). 여론, 소비, 레저, 여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블로거들의 권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들을 활용하는 비즈니스가 성장할 것이다.

    셋째, 개인화된 지식 아카이브(archive·특정 장르의 정보와 지식을 모아두는 창고)에 대한 욕구 증가다. 여기에는 정보와 지식만이 아니라 추억, 경험, 개성 등 한층 개인화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제투성이인 세상을 구원해줄 코칭에 대한 욕구다. 이 욕구 위에서 블로그를 통한 멘토링(mentoring·일대일 상담)이 구조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멘토(mentor·조언자)이면서 동시에 여러 멘토들의 멘티(mentee·조언받는 사람)가 될 것이다.

    블로그 세상은 진화를 계속하며 우리 일상 속으로 더 깊이 침투할 것이다. 하지만 ‘블로그’라는 형식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필요에 대한 욕구는 블로그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이버 세상을 창조하는 ‘두 번째 집’에 대해 투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필요를 충족한다면 굳이 아파트만 고집할 필요가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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