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2007.05.08

서양인들의 인삼 사랑

고리키도 교황도 흠뻑 반했다

  • 입력2007-05-07 15: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양인들의 인삼 사랑

    홍콩 시내를 오가는 ‘트램’에 고려인삼 광고가 선명하다.

    서양에 전파된 동양의 신비한 약초

    신비의 약초 ‘인삼’이 서양에 처음 전파된 것은 16세기경으로 알려진다. 1575년 러시아인 신부 마르친 마르치니우스가 중국에서 얻은 인삼을 신비한 풀로 소개한 것이 최초라는 것.

    이렇게 서양에 알려진 인삼은 동양의 보물로 인식돼 태국 왕국의 사신이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선물로 바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프랑스인 선교사 자르투가 만주지방에서 들은 산삼 이야기를 본국에 서신으로 알려 이미 상류층에는 인삼에 대한 지식이 전파된 상황이었다.

    조선이 인삼의 보고(寶庫)로 서양에 알려진 것은 17세기 초반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들의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네덜란드가 일본에 파견했던 니콜라스 쿠케바케르 무역관장은 1637년 본국에 보낸 ‘조선 정세 보고서’에서 조선의 특산물로 쌀, 구리, 인삼을 꼽으며 “조선 해안의 한 유역에서 일본인들과 교역을 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수석 재정관이던 요안 니위호프는 1665년 ‘동인도회사 중국기’라는 책 2부에서 한국을 소개하며 특산물인 인삼에 대해 언급했다.

    13년간 조선에 머물렀던 하멜도 조국으로 돌아가 1668년 ‘하멜표류기’를 발간, 조선의 풍물을 소개하면서 인삼이 조선의 특산물임을 유럽에 알렸다. 17세기 중반, 서양인들의 조선 왕래가 잦아지면서 조선은 인삼의 나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이따금 여행기나 서신 형태로 유럽에 전파되던 동양의 약초 인삼은 1711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베이징에 와 있던 프랑스인 선교사 자르투는 지도 제작에 사용할 지형자료 수집을 위해 조선을 관찰하라는 청나라 강희제의 명을 받고 1709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지역을 답사하던 중 조선 산삼을 접한다. 자르투는 1711년 4월 편지와 함께 자신이 직접 그린 산삼 삽화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신비의 약초를 반드시 찾을 것을 요청했다.

    정열적인 활동과 창작의 힘 루소와 고리키

    서양인들의 인삼 사랑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제를 남긴 프랑스의 사상자 장 자크 루소(사진 위)가 인삼을 애용했다는 사실이 그의 전집을 통해 전해진다.

    루소의 제자이자 문인이었던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1772년 6월, 블루본 섬에서 가져온 커피 원두 한 부대를 루소에게 선물로 보냈다. 블루본산 원두커피는 당시 매우 비싼 선물이었다.

    하지만 고지식한 루소는 값비싼 선물을 받을 수 없다며 생피에르에게 되돌려주려 했다. 그러자 생피에르는 루소에게 커피를 돌려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선물을 주면 되지 않느냐고 제의했다. 그때 루소가 생피에르에게 답례품으로 보낸 것이 바로 인삼 한 뿌리였다.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사진 아래)도 인삼 애용가였다. 고리키와 절친한 소설가 자먀틴은 고리키가 서거한 직후 망명지 파리에서 그에 대한 회상기를 남겼다. 자먀틴은 고리키의 도움으로 망명을 하는 등 지원을 받았고, 고리키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먀틴이 정열적으로 일하는 고리키를 보고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했던 대목이 회상기에 나온다.

    “고리키에게 하루는 도대체 몇 시간이나 되는 거지? 담배를 피워대는 불그스름한 콧수염 사이로 끝없이 기침을 하는, 결핵으로 반쯤은 잡아먹힌 저 사람의 어디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일까? 한번은 그에게 그것에 대해 물었다. 그는 비밀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를 간이식당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그는 짙은 색깔의 호리병을 내밀며 그것이 신비한 효험을 지닌 인삼즙이라고 했다.”

    자먀틴은 고리키의 정열적인 활동과 창작이 인삼의 힘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파워풀, 원더풀 코레아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양인들의 인삼 사랑


    2005년 4월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과의 인연이 매우 깊다. 재위 기간 한국을 두 차례나 방문한 교황은 한국과 인삼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1999년 주교황청 한국 대사로 부임한 배양일 전 대사는 교황이 인삼과 인연을 맺게 해준 주인공이다. 배 전 대사가 교황청에 부임해 지내면서 겪었던 일화 한 토막이다.

    “당시 교황은 파킨슨병과 몇 가지 노환을 앓고 계셨습니다. 정신은 더할 나위 없이 명민하셨지만 육체가 쇠약해 힘들어하셨죠. 한번은 교황을 접견하러 갈 때 홍삼차를 선물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교황을 직접 모시는 주교가 제게 ‘교황께서 홍삼차를 매우 좋아하신다’고 귀띔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홍삼차 외에 홍삼근이나 홍삼 진액 등을 가끔 챙겨드렸습니다. 제가 대사로 재직하던 때는 교황의 건강이 쇠약해질 무렵이어서 인삼이 귀하게 쓰였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교황이 좋아한다는 말에 힘입어 바티칸의 주교와 다른 나라 대사들 사이에서 한국의 인삼 열풍이 불었다. 바티칸 한국대사관 리셉션에서는 인삼을 이용한 요리가 빠지지 않고 선보였고, 인삼제품을 구하고 싶다는 외국인들의 문의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교황청 근위병들까지 대사관에 인삼을 구할 방법을 문의할 정도였다.

    배 전 대사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당시 바티칸 한국대사관에는 늘 인삼차를 가득 보관할 정도였습니다. 주요 인물과의 만남에서 인삼차보다 인기 좋은 선물이 없었으니까요.”

    교황은 인삼 말고도 한국 수지침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한국인을 ‘인삼의 향기처럼 강하고 끈기 있는 민족’으로 기억했다는 게 배 전 대사의 설명이다.

    세계 왕들의 건강을 지켜온 영약 프랑스 미테랑과 일본 황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생명을 인삼이 연장해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95년 대통령 재임 중 암선고를 받은 미테랑 대통령은 힘겨운 투병생활을 했다. 미테랑 대통령의 암을 발견한 의료진은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그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미테랑 대통령은 암세포가 심하게 전이돼 김 대통령 방문 직전까지 정상회담이 불투명할 만큼 병세가 심각했다.

    당시 대통령 주치의인 필리프 드 퀴페르 박사는 인삼이 항암에 좋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인삼 진액을 구해 복용하게 했다. 그해 5월 퇴임한 미테랑 대통령은 6월부터 타개하기 직전까지 7개월간 인삼을 복용했다고 한다. 결국 암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3개월 시한부 생명을 6개월 이상 연장한 것은 인삼의 힘이었다.

    예부터 인삼의 효능을 높이 사온 일본 황실에서도 혈통을 잇는 데 인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나루히토 등 두 명의 왕자를 두었다. 하지만 맏아들인 나루히토 황태자가 결혼한 지 6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자 1998년 일본은 천황 계승 문제로 온 열도가 들끓었다. 당시 마사코 황태자비도 30대 중반으로 나이를 더 먹으면 임신 능력이 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루히토 황태자의 남동생도 결혼해서 딸만 둘을 낳았다. 초조해진 일본은 남성이 아닌 여성도 천황 자리를 승계할 수 있게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황세손에 대한 열망이 커지자 일본 황실은 북한에서 인삼 진액을 구입해 황태자에게 복용시킨 일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인삼이 정자결핍증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일본 황실이 기대를 걸었던 것. 결국 마사코 황태자비는 2001년 12월1일 황세손을 낳았다.

    철인의 비결 한국 트라이애슬론 얀 레휼라 감독

    바다수영 3.9km, 도로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 등 총 226.3km를 쉬지 않고 이어 달리는 트라이애슬론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다. 대회 제한시간인 17시간 이내에 완주하면 철인 칭호를 받지만, 완주 자체만으로도 철인의 칭호를 받기에 충분하다. 요즘 트라이애슬론 한국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위한 특급작전을 수행 중이다. 그 선장을 맡은 사람은 바로 체코 출신의 얀 레휼라 감독.

    서양인들의 인삼 사랑

    트라이애슬론에 참가한 선수들이 역영하는 모습.

    얀 감독은 인삼 애호가다. 그는 “인삼이 있는 한 한국인의 세계 정상 정복은 시간문제”라고 단언한다. 얀 감독은 트라이애슬론이 올림픽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세계 정상급 선수로 유럽 그랑프리 우승, 유니버시티 월드 챔피언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트라이애슬론의 절대요소인 강철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로 인삼의 힘을 주저 없이 꼽는다. 체코에서도 인삼을 많이 먹었다는 그는 “운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지구력을 높이는 데 인삼의 효과는 단연 으뜸”이라고 말한다.

    얀 감독에 따르면 체코 사람들은 인삼에 친숙한 편이다. 덴마크 브랜드의 인삼제품이 많이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수영에서 트라이애슬론으로 종목을 바꾼 1990년대 초반 두 달 정도 인삼을 복용하고 효과를 봤다고 한다.

    그는 “인삼을 먹으면 체력이 강화돼 힘든 훈련을 이겨내기 쉽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감기 때문에 훈련에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지만 인삼을 먹고 회복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자신이 가르치는 한국 선수들에게 인삼 복용을 권하고, 특별훈련 기간에는 직접 나눠주고 있다.

    인삼과 낙타 젖의 신경전 알라지 주한 사우디 대사

    서양인들의 인삼 사랑
    2005년 3월26일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국 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맘 축구경기장 기자실에서 양국 기자들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한국 기자들이 “한국축구의 힘은 인삼에서 나온다”고 자랑하자, 사우디 기자들이 “인삼보다는 낙타 젖이 훨씬 좋다”고 대응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축구의 힘이 인삼에 있다고 외신들이 보도해 인삼의 힘을 알고 있는 사우디 기자들이었지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낙타 젖을 인삼에 견주는 스태미나 식품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비교가 되겠는가.

    흔히 인삼을 열이 많은 사람이나 여름철에 먹지 않는 보양식으로 알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열사(熱沙)의 나라 중동에서도 인삼을 먹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인사가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역임한 살레 엠 알라지 씨다. 1998년 주한 사우디 대사로 부임해 2005년까지 한국에 머물렀던 알라지 대사는 한국에서 인삼을 즐기며 삶의 에너지를 충전했다고 한다.

    알라지 대사는 책과 신문을 통해 오래전부터 인삼의 우수성을 알고 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인삼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에 부임하면서. 그 전에는 인삼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는 지금 인삼 애호가가 돼 있다. 알라지 대사의 인삼 예찬론이다.

    서양인들의 인삼 사랑

    오미자인삼차

    “요즘도 매일 얇게 저민 인삼을 먹고 인삼차를 즐깁니다. 승용차 안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인삼제품을 갖춰놓았지요. 규칙적으로 인삼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고 몸에 활력이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알라지 대사의 부인도 인삼 애호가다. 부인은 스웨덴에 사는 고령의 친척에게 정기적으로 인삼을 보내고 있다. 그 친척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을 인삼의 효능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