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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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코스 망치는 ‘오너의 난도질’

  • 입력2007-05-02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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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코스 망치는 ‘오너의 난도질’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한 해비치CC.

    미국에서 발행되는 ‘골프다이제스트’와 ‘골프매거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양대 골프잡지다. 우리나라에서는 ‘골프다이제스트’가 에이스에서, ‘골프매거진’이 서울경제에서 라이선스로 매달 발행된다. 두 잡지 모두 2년에 한 번씩 우리나라 10대 골프코스를 선정한다.

    올해가 바로 그해다. 우리나라에서 뽑힌 10대 골프코스는 그대로 미국 본지에 실려 1000만명이 넘는 세계 각국 독자에게 배포된다.

    골프코스 선정기준이라는 것이 이제 거의 준국제공인규격으로 굳어져 ‘골프다이제스트’와 ‘골프매거진’의 선정기준도 대동소이하다.

    선정기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샷의 가치(shot values)’다. 흔히 위험(risk)과 보상(reward)으로 압축된다. 쉽게 말하면 매 홀의 공략 루트는 위험한 길과 안전한 길로 나뉘어 골퍼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한 길로 가면 낭패는 보지 않지만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위험한 길로 가면 낭패는 볼 수 있지만 극복했을 땐 보상이 따른다.

    다음으로 중요한 기준은 경기성, 난이도, 디자인 다양성인데 이것들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샷의 가치’에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다음으로 기억성, 심미성, 코스 관리 상태, 기여도, 서비스 등이 있다.



    필자는 양대 골프잡지로부터 선정위원으로 위촉받아 2년에 한 번씩 채점지(?)를 받아들고는 곤혹스러워한다. 골프코스를 평가할 때 코스 관리 상태, 기여도,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기준은 코스 설계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골프코스는 코스 설계자의 작품이고, 선정위원은 그것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스 소유주가 중간에 끼어들면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우리나라에 골프코스 설계는 없다”라는 극언도 나오는 판이다.

    골프장 주인은 모두가 골프광들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로서 광이지 설계자는 아니다. 전문가인 코스 디자이너가 설계한 코스 청사진을 골프장 주인은 멋대로 난도질해 엉뚱한 코스로 만들어버린다.

    마치 자기 정원으로 생각 … 애초 설계 의도 대부분 상실

    “골프장 주인은 골프코스를 자기 집 정원으로 생각합니다.”

    설계자 J씨의 하소연에 필자는 핀잔을 줬다.

    “아니, 애초 계약할 때 외국처럼 설계도는 변경할 수 없고 시공은 설계도대로 해야 한다는 걸 못 박으면 되잖아요!”

    한숨과 함께 나온 J씨 목소리.

    “그러면 나는 굶어죽어요.”

    화가의 그림에 주인이 덧칠한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마추어가 프로 작품에 손을 댄 흔적은 표시가 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골프코스 평가기준엔 이런 항목이 하나 추가돼야 할 듯싶다.

    오너의 코스 설계 불간섭성!

    경기 덕소 외곽에 보석 같은 골프코스가 탄생했다. 해비치CC. 이 골프코스가 빼어나다는 것은 강남에서 40분 거리인 접근성 때문만이 아니다. 완벽한 샷의 가치와 수려한 경관, 잘 다듬어진 코스 때문만도 아니다. 이 코스가 진정 빛나는 이유는 오너가 청사진을 보고, 조감도를 보고, 시공 현장을 보며 한마디도 자기주장을 펴지 않고 전문가 뜻에 따랐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괴상한 외래어 골프장 이름이 판치는 세상에 고운 우리말, 해(가)비치(다)도 마음에 쏙 든다.

    - 조주청의 골프 잡설은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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