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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침팬지가 망치로 ‘호두’를 깨먹어?

석기시대부터 도구사용 능력 확인 … 창 모양 사냥무기 만드는 모습도 발견

  •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뭐? 침팬지가 망치로 ‘호두’를 깨먹어?

뭐? 침팬지가 망치로 ‘호두’를 깨먹어?
3월4일은 정월 대보름이었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보름날 새벽에 호두, 땅콩, 밤, 은행 같은 부럼을 자기 나이 수대로 먹었다. 부럼을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깨 먹으면 한 해 동안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호두처럼 껍데기가 딱딱한 부럼을 깰 때는 망치를 동원한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너무 세게 때리면 호두 알맹이가 가루처럼 바스러진다. 그렇다고 힘을 덜 주면 아예 깨지지 않는다. 고난이도 기술이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2월호)를 보면 흥미롭게도 침팬지가 이 같은 기술을 사용해 견과류를 깨 먹었다는 증거가 나온다. 그것도 수천 년 전 석기시대 때부터 말이다.

캐나다 캘거리대 훌리오 머카더 박사와 크리스토프 보슈 박사는 독일 영국 미국 공동연구팀과 함께 아프리카 서부 코트디부아르에서 울퉁불퉁한 모양의 석기 한 점을 발굴했다. 크기는 멜론 정도. 인간이 손에 쥐고 사용하기엔 다소 컸다. 그럼 도대체 어떤 동물이 이 도구를 사용했단 말인가.

견과류 껍데기 제거 고난이도 기술



석기에는 특이하게도 몇몇 종류의 녹말 성분이 묻어 있었다. 연구팀은 분석을 통해 녹말 성분이 이 지역에 서식하는 견과류에서 나온 것이고, 이 견과류가 침팬지의 먹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코트디부아르는 고대에 침팬지가 살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연구팀은 석기의 연대를 분석했다. 그 결과 후기 석기시대인 4300여 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당시에도 침팬지가 석기를 사용해 견과류를 깨 먹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셈.

그렇다면 침팬지는 그 먼 옛날 어떻게 석기 사용법을 익혔을까. 인간이 농사지을 때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머카더 박사는 “4300년 전은 이 지역에 농부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이라면서 “침팬지가 거주민들을 모방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뭐? 침팬지가 망치로 ‘호두’를 깨먹어?

누가 알랴.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침팬지도 사람처럼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 침팬지들이 스스로 도구를 개발했거나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들에게서 도구 사용법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마이클 카잔 박사는 “이번 발견은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해 견과류를 깨는 행동을 고대부터 해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제는 인간만이 도구 사용 능력을 발달시켜 왔다고 말하기가 난감해진 셈이다. 침팬지의 도구 사용 역사도 나름대로 뿌리가 깊어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침팬지가 정확히 언제부터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사용법을 어떻게 서로에게 전달하는지, 견과류를 깰 때 힘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머카더 박사는 “현대 침팬지의 경우 견과류를 깨는 방법을 완벽하게 배우는 데 7년이 걸리기도 한다”면서 “알맹이를 먹기 위해 껍데기를 깨는 만큼 부숴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결코 간단한 기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샌디에이고 멸종위기종 복원연구소(CRES)의 베탄 모건 박사와 에코지 아브웨 박사팀은 아프리카 카메룬의 에보숲에서 침팬지가 돌로 된 망치로 견과류를 깬 뒤 영양분이 풍부한 씨를 꺼내 먹는 모습을 관찰했다.

사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침팬지가 견과류를 깨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코트디부아르의 사산드라 강 근처가 침팬지의 도구 사용법 전파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이 지역 밖에서는 도구로 견과류를 깨 먹는 침팬지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건 박사팀의 발견은 이례적으로 사산드라 강에서 동쪽으로 17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은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문명 구역’이 예상보다 넓다는 점을 시사한다”면서 “실제로 ‘장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 지역의 침팬지는 생태학적으로나 유전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암컷과 어린 침팬지가 주로 사용

결국 침팬지와 인간은 수천 년 동안 같은 문화적 행동을 공유했다는 가설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놀랍게도 침팬지가 사냥용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증거까지 나왔다. 특정 목적이나 일의 유형에 따라 도구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고 여겨져왔는데 말이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질 프루에츠 박사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파코 버토라니 박사의 공동연구팀은 아프리카 세네갈 남동부의 넓은 초원에서 사는 침팬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날카로운 창처럼 생긴 도구를 차례차례 만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침팬지는 스스로 만든 창 모양의 도구를 덤불이나 나무구멍 속으로 밀어넣었다. 이에 연구팀은 그 안에 숨어 있는 포유류 사냥감을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추정했다. 침팬지가 포유류를 사냥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한다는 증거가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곤충을 잡는 행동은 이미 보고된 바 있다.

침팬지가 창 모양의 도구로 사냥을 시도한 횟수는 22번. 성공률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팀은 “도구를 만들어 사냥하는 행동이 체계적이고 일정했다”면서 “이는 도구 사냥을 습관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흥미롭게도 암컷이나 어린 침팬지가 주로 사냥용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수컷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이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쪽으로 먼저 진화해왔을지도 모른다는 게 연구팀의 추측이다.

침팬지는 지금도 서서히 진화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알랴.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시대에 침팬지가 창과 방패를 사용해 전쟁을 벌이고,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며 새끼들과 망치로 호두를 깨 먹을지….



주간동아 2007.03.20 577호 (p48~49)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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