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2007.03.20

“나이 잊은 열정, 세상살이 지혜에 반했네”

여교수가 만난 아름다운 중년남 이야기

  • 이미나 서울대 교수·사회교육학 lmn@snu.ac.kr

    입력2007-03-14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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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잊은 열정, 세상살이 지혜에 반했네”
    이번 ‘주간동아’의 원고 청탁은 도무지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미중년 김쭛쭛 교수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서다.

    나는 김 교수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오는 e메일을 클릭할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그의 메일에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가 보낸 메일은 이렇게 시작한다. ‘선진(先進)과 서비스는 동의어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선진 서비스를 실천하는 경영자로 오늘은….’

    타인 잘못에 너그럽고 결단력 강해

    김 교수는 요즘 선진 서비스의 사례를 학생들에게 전파하는 데 여념이 없다. ‘산나물 이름을 새겨 넣은 나무 접시에 나물을 담아, 손님들이 그 이름을 쉽게 알도록 한 음식점 주인’ ‘아침마다 그날의 일기예보 내용, 기후에 맞는 옷이나 준비물 등에 대해 적은 종이를 꽃한 송이와 함께 방문 앞에 놓아주는 중국의 한 호텔’ ‘열전도율이 낮은 보온 금속판을 식판 구석에 놓아, 음식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해주던 일본의 한 비행기’…. 학생들과 함께 선진 서비스의 사례를 찾아 모으고, 그 내용을 e메일로 보냄으로써 김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선진 서비스 마케팅을 현실에서 체화하도록 한다.

    김 교수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대외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의 전공 분야 지식을 일반인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데만 심혈을 기울일 뿐이다. 김 교수가 생각하기에 강의나 책 같은 전달방식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동영상을 택했다. 그는 흥미롭고 쉬운 동영상을 제작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한 해에 한 번씩은 전국 규모의 필름 페스티벌도 연다.



    김 교수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너그럽다. 일전에 나는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행각에 분개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화분’론을 펼쳤다.

    “이 교수님, 화분을 보면 꽃이 햇빛을 향하고 있지요? 한번 화분의 방향을 바꿔보세요. 식물이 햇빛을 향해 돌아섭니다.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가엾고 기특하지 않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자리잡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향해 몸부림쳤습니다. (저를 이용하려는) 이 사람들도 살려고 몸부림치느라 제게 떼를 쓰는 겁니다. 그들을 도와줄 힘이 있으니 제게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도와줘야죠. 하지만 이 교수님, 안심하세요. 억울하지 않을 만큼만 도와주겠습니다.”

    “나이 잊은 열정, 세상살이 지혜에 반했네”

    중년 남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위)과 춤을 통해 새롭게 깨닫는 중년 인생에 대해 다룬 영화 ‘쉘 위 댄스’의 한 장면.

    그는 결단력이 강하다. 40대 초반 위암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간 뒤로, ‘간이 커지고 무서울 게 없어졌다’고 한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니 잃어도 상관없다는 심정이 되었다고 한다. 기대, 자만, 실패에 대한 공포, 수치심, 명예, 부, 성공, 사회적 인정 등 평소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해졌다. 모든 것의 끝인 죽음이 상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명약이 되었다. 김 교수는 내게 조언한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결심이 서지 않는다면 죽음을 상상하세요.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도 이것을 할 것인가?’라고 자문해보세요. 여전히 그렇다는 답이 나오면 그 일에 착수하세요.” 그러고 보니 김 교수의 결심은 대부분의 경우 말리기 힘들었다. 죽음의 문턱을 상상하고 내린 결단이었기 때문이리라.

    김 교수는 따뜻하고 세심한 ‘연인형’ 남편이기도 하다. 듣자 하니 아내 생일에 튤립 꽃다발을 선물했단다. 사연인즉 튤립의 꽃말이 ‘사랑의 선언’이기 때문이란다. “자꾸 표현해야 더 커지는 것이 사랑”이라며 김 교수는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상대로 ‘애정 표현하기 운동’을 벌인다. 또 비 오는 어느 날에는 천장과 벽면이 유리로 된 레스토랑에 아내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유리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먹고 싶어요”라고 한 아내의 말을 기억해서다.

    아버지로서의 김 교수는 개구쟁이 친구이자 엄한 스승이다. 유학 간 딸과 화상전화기로 대화를 할 때, 화면 가득 자기 콧구멍을 갖다 대며 “어흥!”거린다. 이에 딸은 화면에 엄지손가락을 댄다. 아버지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겠다는 장난스런 응수다. 그런 두 사람은 영락없이 또래 친구 사이로 보인다.

    연로한 부모에게 김 교수는 어떤 아들일까? 그의 부친은 자녀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말씀하길 즐긴다. 여러 번 들어 지겨울 법한데도 그는 언제나 처음이라는 듯 맞장구치며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부친의 기분이 언짢아 보일 때는 숫제 먼저 청해 듣기까지 한다. 그는 연로한 부친의 보호자이자 마지막 친구다.

    자녀들에겐 개구쟁이 친구이자 엄한 스승

    김 교수의 이야기,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더듬어본다. 그는 출세해야 하며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이제 야망의 횡포에 이끌려 고통당하던 젊은이가 아니다. 대신 자신이 청년 시절에 이루려 했던 꿈의 본질적 가치에 관심 갖고 이루기 위해 애쓴다. 거창하고 추상적인 관념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겁없는 중년’이 된 김 교수. 그러나 그는 무지해서 용감한 청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세상일에 경험이 많아 지혜롭고 용감한 중년인 것이다.

    그는 선악을 가지고 세상을 양분하지 않는다. 인간의 나약하고 어두운 면까지도 포용한다. 가족이 원하는 것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한다. 노쇠한 부모에게는 물질적,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김 교수가 중년의 남자로서 갖는 아름다움이 눈부시다. 인간의 노력이 도달할 수 있는 성숙의 극치에 도달해 있다. 그것이 미중년의 참모습이다.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으로 황금분할의 영역에 사는 중년의 아름다움이다. 미중년의 김 교수는 청년들이 누리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탐낼 이유가 전혀 없다. 그것은 김 교수의 과거가 향유했던 빛 바랜 아름다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Ps.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혹시 눈치채셨는지요. 여기 나오는 김 교수는 세 남자의 합성물입니다. 어떤 미중년을 선택할까 고민하다 어떤 이도 포기할 수 없어 한 인물로 합쳐놓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용서를 구합니다.

    * 이미나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흔들리는 중년, 두렵지 않다‘(20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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