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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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 속 뻥 뚫은 시원한 국물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입력2007-03-07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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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캬 ~ 속 뻥 뚫은 시원한 국물

    미거지국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으니까 30년 정도 전의 일이다. 당시 수학 선생님과 퍽 친했는데 진해 가덕도로 전근 가셔서 친구 녀석과 인사할 겸 해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가덕도는 진해에서 부산 넘어가는 길에 있는 제법 큰 섬이다. 근래 들어 부산 신항만이 들어선다 어쩐다 해서 상당히 개발됐지만 그때만 해도 시외버스를 두어 차례 갈아타고 다시 조그만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외진 곳이었다.

    나고 자란 곳이 마산이라 바닷것에 그리 낯설지 않은 나였는데 그 섬에서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를 발견하고는 매우 신기해했다. 길쭉한 물고기가 담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말려지고 있었다. 당시 내 고향 마산에서 이런 식으로 말리는 물고기는 대구, 명태, 아귀, 가자미 등이었다. 하여간 이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는 그 후 20여 년간 나와 전혀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10년 전쯤인가. 강원도 삼척 어느 포구 식당에서 ‘곰칫국’이란 것을 처음 맛보았다. 신 김치와 콩나물, 무를 넣고 끓인 생선국인데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생선 살과 시원한 국물 맛에 한입에 반하고 말았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곰치의 몸을 확인했는데 그게 바로 가덕도에서 본 물고기였다.

    ‘물메기’의 진해 사투리…맑게 끓여 먹어

    이후 강원도 바닷가에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곰칫국을 찾았는데 주문진과 삼척 외에는 이를 내는 식당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이듬해, 경남 남해 어시장에서 우연히 이 물고기를 발견했다. 여기에서는 ‘물메기’라 불렀으며, 강원도에서처럼 국으로 해먹었다. 그해 전남 목포에서도 이 물고기를 발견했는데 목포에서는 국 외에 회로도 먹었다.



    곳곳의 물메기 요리를 맛보고 다녔지만 이 물고기가 전국화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겨울 한철 나오는 데다 이것만 전문적으로 잡는 어부도 없고 생김새가 그다지 맛깔스럽지 않으며 식감도 느끼기에 따라서 콧물 들이마시는 듯해 깔끔 떠는 도시 사람들이 찾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한 해가 다르게 물메기탕 내는 식당이 늘어났다. 도미, 광어 등 고급 생선에 물린 소비자들의 입맛 ‘일탈’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캬 ~ 속 뻥 뚫은 시원한 국물

    갈치젓

    2월 중순 집안일로 진해에 갈 일이 있었다. 진해 큰집에 일가친척 몇몇이 모였는데 막내숙부가 “여기까지 왔으니 속천항에 가서 미거지미역국 한 그릇 먹고 가자”고 제의했다. 미거지? 여기 사투리로 물메기를 미거지라고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물메기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미역어(迷役魚)라고 기록되어 있다는데 어원이 같지 않나 싶다.

    진해 사람들은 회를 먹으러 보통 속천항에 간다. 막내숙부가 진해에 오면 반드시 찾는 집이라면서 그곳으로 다들 데리고 갔다. “내가 추천하는 집이라기보다는 진해문화원장이 추천하는 집이라고 해야 할 거다. 그이가 내 동창인데 진해에 오면 항상 여기서 회 먹고 미거지미역국 먹었다.”

    도다리와 감생이(감성돔의 경상도 사투리) 막회 한 접시 먹고 미거지미역국을 시켰더니 안 된단다. 미거지미역국은 특별주문 요리인 듯한데 진해문화원장이나 데려와야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미거지국을 시켰다. 강원도 곰칫국과는 사뭇 달랐다. 무, 대파, 마늘만 넣고 맑게 끓였다. 강원도에서는 신 김치를 넣고 끓인다고 했더니, 한 입맛 하는 막내숙부가 “그렇게 하면 미거지의 시원한 맛이 나나?” 하고 반문했다. 사실 남해안에서는 도미, 광어, 대구 가릴 것 없이 맑은 국으로 끓이는 게 대세다. 이 맛 한번 들이면 매운탕은 못 먹는다. 회로 배를 불렸는데도 한 대접을 모두 비웠다. 속 저 안쪽까지 시원하게 내려가는 국물 맛으로 온몸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 시원한 미거지국에 강한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따라 나왔는데, 갈치젓갈이다. 갈치 속으로 담근 것이 아니라 갈치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숙성시켰다가 잘게 잘라 양념한 것이다. 톡 쏘는 맛은 갈치속젓보다 적고, 황석어젓처럼 생선 살이 발효되면서 나는 뭉근하고 깊은 향내가 있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갈치젓갈을 조금 얻었다. 한 공기 분량도 안 되지만 나 혼자 가끔 꺼내 먹으면 1년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숙부, 숙모 눈치보면서, 진해에 갈 일이 또 언제일까 싶어 두고두고 먹으며 그 잔잔한 바다나 떠올려보려고 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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