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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이냐, 페이스 메이커냐

여의도 복귀 임박한 한명숙 총리 역할 놓고 의견 분분

  • 양정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torch@hk.co.kr

퀸이냐, 페이스 메이커냐

퀸이냐, 페이스 메이커냐

노무현대통령은 2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 초청 만찬을 갖고 있다.

“내게 역할이 요구된다면 피하지 않겠다.”

조만간 ‘고향’인 여의도로 돌아올 예정인 한명숙 총리가 2월26일 측근들과 대화를 나누다 한 말이라고 한다. 측근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던진 말이라 정치적 함의가 커 보인다. 한 측근은 “‘피하지 않겠다’는 그의 한마디에 누구도 해석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역할에 대한 교감이 그만큼 무르익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돌아온’ 한 총리에 대해 범여권 내에선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예상과 함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여당 내 대표적 전략가 또는 선거기획 전문가일수록 ‘한명숙’ 브랜드의 가치를 높게 본다.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기획통인 민병두 의원은 최근 “한 총리가 3월 초 대선전에 뛰어들면 대선판을 1차적으로 붐업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선 ‘빅리그’ 태동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여권 대선 흥행 위한 필수카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박원순 변호사가 합류하는 빅리그 출범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공백을 메우는 데 한 총리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주문도 담겨 있다. 그는 “한 총리가 스타트를 잘한다면 우리 진영 모두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의 생각도 비슷하다. 전략통인 그의 머릿속에 입력된 ‘한명숙 카드’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한 총리는 당 복귀와 동시에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은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과에 상관없이 범여권의 판을 키우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한 총리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상징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범여권 여성 정치인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흥행을 일궈내기 위해선 한 총리의 대선 도전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여권 내에서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상징해왔다. 정치권에서 대선주자로서 그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주목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민 의원은 이를 “역사의 피해자였지만 모든 것을 안고 갈 듯하다”고 하면서 “세상의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입각시킨 정치인들에 대해 좀처럼 후한 평가를 하지 않던 노무현 대통령도 “사회적 갈등과제를 해결하는 데 한 총리만한 사람이 없다”고 치켜세웠을 정도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한명숙 카드’를 생각 중이라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조차 “한 총리는 진보와 개혁의 색채가 뚜렷하면서도 중도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 어법과 포용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 총리의 정치력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지난 10개월간 총리로서의 국정운영 능력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취임 당시만 해도 ‘얼굴마담‘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퇴 파문 당시 당정 간 막후 조정 구실을 비롯, 서해교전 부대와 육사 방문 등 안보 행보의 강화, 부처 간 업무 조정이 미흡했던 장관들에 대한 공개 질책, 야당의 대정부질문 공세에 대한 맞대응 등을 통해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즉, 한국 정치사의 좌우 이념대립을 뛰어넘을 여지를 보이고 국정운영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보인 점 등은 한 총리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는 요인들이 됐다.

당내 기반 취약은 여전한 약점

물론 한 총리에겐 약점도 많다. 헌신적으로 뛰어줄 조직이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쉬운 부분이다. 재야 여성운동의 대모(代母)였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연이어 세 차례 입각했으며 국회의원으로도 재선했지만, 당내에서조차 기반이 취약하다. 그나마 재야 시절부터 연을 맺어온 김근태 전 의장 계열과 가까운 정도다. 하지만 한 총리의 한 측근은 “캠프는 언제 꾸리느냐”는 농담 반 진담 반 질문에 “우리는 언제든 산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한다. 자신 있다는 말투다.

한 총리는 현재의 범여권 입장에선 그야말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정치인이다. 통합신당 추진 과정에서 여의도 정치권과 재야·시민사회 세력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고, 경우에 따라선 자신이 직접 ‘퀸’을 노릴 수 있는 잠재력도 충분하다. 9월께로 예상되는 오픈프라이머리 때까지 후보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페이스 메이커’로서도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

열린우리당 한 중진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한 총리는 ‘페이스 메이커’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범여권이 진용을 갖추면서 후보군이 하나 둘 떠오를 때까지는 최소 3~4개월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마냥 공백으로 놔둘 수는 없다는 게 이유다. 그는 “한 총리에겐 대단히 미안하지만 한 총리 말고는 그 짐을 떠맡을 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서 “그러나 결국은 그 과정이 한 총리에게 득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총리의 주변에서도 이 같은 부담을 회피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한 총리와 가까운 열린우리당 한 여성 의원은 “한 총리는 언제나 어려운 짐을 떠맡고 일어섰던 분”이라며 “통합신당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재야 시절부터 고락을 함께해온 한 재야파 의원도 “평화개혁 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선 모두가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며 “누구보다 한 총리가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참여정부 들어 세 번째 총리였던 ‘정치인 한명숙’은 고건 전 총리와 달리 현실 권력인 청와대의 신임이 두텁고, 이해찬 전 총리와 달리 국민적 호감이 커져가던 중에 여의도로 돌아왔다.

당장은 국민적 인지도와 당내 기반이 약해 본격적인 대권 경쟁에 뛰어들긴 어려워 보이지만, 그가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면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란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주간동아 576호 (p32~33)

양정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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