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6

2007.03.13

퀸이냐, 페이스 메이커냐

여의도 복귀 임박한 한명숙 총리 역할 놓고 의견 분분

  • 양정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torch@hk.co.kr

    입력2007-03-07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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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이냐, 페이스 메이커냐

    노무현대통령은 2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 초청 만찬을 갖고 있다.

    “내게 역할이 요구된다면 피하지 않겠다.”

    조만간 ‘고향’인 여의도로 돌아올 예정인 한명숙 총리가 2월26일 측근들과 대화를 나누다 한 말이라고 한다. 측근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던진 말이라 정치적 함의가 커 보인다. 한 측근은 “‘피하지 않겠다’는 그의 한마디에 누구도 해석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역할에 대한 교감이 그만큼 무르익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돌아온’ 한 총리에 대해 범여권 내에선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예상과 함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여당 내 대표적 전략가 또는 선거기획 전문가일수록 ‘한명숙’ 브랜드의 가치를 높게 본다.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기획통인 민병두 의원은 최근 “한 총리가 3월 초 대선전에 뛰어들면 대선판을 1차적으로 붐업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선 ‘빅리그’ 태동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여권 대선 흥행 위한 필수카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박원순 변호사가 합류하는 빅리그 출범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공백을 메우는 데 한 총리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주문도 담겨 있다. 그는 “한 총리가 스타트를 잘한다면 우리 진영 모두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의 생각도 비슷하다. 전략통인 그의 머릿속에 입력된 ‘한명숙 카드’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한 총리는 당 복귀와 동시에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은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과에 상관없이 범여권의 판을 키우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한 총리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상징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범여권 여성 정치인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흥행을 일궈내기 위해선 한 총리의 대선 도전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여권 내에서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상징해왔다. 정치권에서 대선주자로서 그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주목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민 의원은 이를 “역사의 피해자였지만 모든 것을 안고 갈 듯하다”고 하면서 “세상의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입각시킨 정치인들에 대해 좀처럼 후한 평가를 하지 않던 노무현 대통령도 “사회적 갈등과제를 해결하는 데 한 총리만한 사람이 없다”고 치켜세웠을 정도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한명숙 카드’를 생각 중이라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조차 “한 총리는 진보와 개혁의 색채가 뚜렷하면서도 중도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 어법과 포용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 총리의 정치력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지난 10개월간 총리로서의 국정운영 능력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취임 당시만 해도 ‘얼굴마담‘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퇴 파문 당시 당정 간 막후 조정 구실을 비롯, 서해교전 부대와 육사 방문 등 안보 행보의 강화, 부처 간 업무 조정이 미흡했던 장관들에 대한 공개 질책, 야당의 대정부질문 공세에 대한 맞대응 등을 통해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즉, 한국 정치사의 좌우 이념대립을 뛰어넘을 여지를 보이고 국정운영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보인 점 등은 한 총리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는 요인들이 됐다.

    당내 기반 취약은 여전한 약점

    물론 한 총리에겐 약점도 많다. 헌신적으로 뛰어줄 조직이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쉬운 부분이다. 재야 여성운동의 대모(代母)였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연이어 세 차례 입각했으며 국회의원으로도 재선했지만, 당내에서조차 기반이 취약하다. 그나마 재야 시절부터 연을 맺어온 김근태 전 의장 계열과 가까운 정도다. 하지만 한 총리의 한 측근은 “캠프는 언제 꾸리느냐”는 농담 반 진담 반 질문에 “우리는 언제든 산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한다. 자신 있다는 말투다.

    한 총리는 현재의 범여권 입장에선 그야말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정치인이다. 통합신당 추진 과정에서 여의도 정치권과 재야·시민사회 세력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고, 경우에 따라선 자신이 직접 ‘퀸’을 노릴 수 있는 잠재력도 충분하다. 9월께로 예상되는 오픈프라이머리 때까지 후보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페이스 메이커’로서도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

    열린우리당 한 중진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한 총리는 ‘페이스 메이커’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범여권이 진용을 갖추면서 후보군이 하나 둘 떠오를 때까지는 최소 3~4개월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마냥 공백으로 놔둘 수는 없다는 게 이유다. 그는 “한 총리에겐 대단히 미안하지만 한 총리 말고는 그 짐을 떠맡을 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서 “그러나 결국은 그 과정이 한 총리에게 득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총리의 주변에서도 이 같은 부담을 회피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한 총리와 가까운 열린우리당 한 여성 의원은 “한 총리는 언제나 어려운 짐을 떠맡고 일어섰던 분”이라며 “통합신당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재야 시절부터 고락을 함께해온 한 재야파 의원도 “평화개혁 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선 모두가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며 “누구보다 한 총리가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참여정부 들어 세 번째 총리였던 ‘정치인 한명숙’은 고건 전 총리와 달리 현실 권력인 청와대의 신임이 두텁고, 이해찬 전 총리와 달리 국민적 호감이 커져가던 중에 여의도로 돌아왔다.

    당장은 국민적 인지도와 당내 기반이 약해 본격적인 대권 경쟁에 뛰어들긴 어려워 보이지만, 그가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면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란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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