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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뺌·항의·호소… 연행 뒤엔 “노 코멘트”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불법 외국인 강사 단속 현장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발뺌·항의·호소… 연행 뒤엔 “노 코멘트”

발뺌·항의·호소… 연행 뒤엔 “노 코멘트”
“어디서 나오셨죠?”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왔습니다. 여기 외국인 강사가 전부 몇 명이죠?”

2월27일 오후 2시25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빌딩. 4명의 남자가 2층에 자리한 쭛쭛쭛어학원으로 뛰어들었다. 한가롭게 카운터를 지키던 40대 여성의 얼굴엔 이내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이날 단속은 무자격 외국인 회화지도 강사에 대한 적발. 단속에 나선 이들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1과 소속 최성휴(57) 과장과 이상수(45) 팀장, 임용성(38) 계장, 조신(35) 반장 등 4명. ‘주간동아’ 취재진도 단속과정에 동행했다.

이 어학원의 외국인 강사는 모두 4명으로, 이중 3명은 영국인이고 나머지 한 명은 재외동포였다. 단속반원들이 강사들의 신원 확인에 나서자 손님과 상담 중이라던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학원 대표가 곧 모습을 드러냈다.

“강사들이 E-2(회화지도 체류자격) 비자를 받았나요?”(최 과장)



“그건 아니고…. 지금 영국에서 프로세싱(processing)하고 있는 중인데요.”(학원 대표)

“여행비자로 들어와서 회화지도 하면 불법인 거 아시죠? 이 강사들은 현재 여행객 신분입니다.”(이 팀장)

“제가 목사인데, 학원을 처음 하다 보니 절차를 잘 몰라서…. 비자 신청 타이밍을 잘못 맞춘 것 같습니다.”(학원 대표)

“연행해서 조사하겠습니다.”(최 과장)

“왓 아 유 두잉 나우?(What are you doing now?)”

“플리즈(Please)….”

긴급보호 명령서를 학원 대표에게 내보인 단속반원들이 재외동포를 제외(2005년 9월25일 이후 재외동포의 한국 내 회화지도 규제는 전면적으로 풀렸다)한 3명의 강사를 승합차에 태우려 하자 그들의 항의와 호소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포기한 듯 연행에 응한 강사들은 한 시간 뒤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도착해 곧장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뜻 조사에 응하지 않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겠다며 버텼다.

“오늘 적발한 강사들은 도주 우려가 낮아 수갑을 채우지 않았지만, 가끔은 연행과정에서 도망가는 이들도 있어요. 적은 인력에다 가스총조차 없으니 단속에 애로가 적지 않죠.”(최 과장)

이날 단속에 걸린 외국인 강사는 R(27)씨 등으로 올해 1월3~4일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뒤 1인당 월 200만원씩 받기로 하고 같은 달 15일부터 문제의 어학원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쳐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어학원 측은 학원 설립을 준비하던 지난해 11월 영국 신문인 ‘더 타임스(The Times)’에 원어민 강사 구인광고를 내고 교사 자격자들을 모집해 e메일 등으로 지원자들의 신원과 자격 여부를 심사한 뒤 최종적으로 이들을 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8명이 서울 전역 담당…단속인력 태부족

발뺌·항의·호소… 연행 뒤엔 “노 코멘트”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이 이 어학원의 불법 사실을 인지(認知)할 수 있었던 것은 불법 외국인 강사 관련 첩보를 수집하던 중 2월20일자 국내 모 유력 일간지의 교육 섹션에 실린 어학원 홍보 기사가 계기가 됐다.

현행법상 내국인에게 회화지도를 할 수 있는 외국인 강사는 해당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4년제 대학 이상의 학교를 졸업하고, 학사학위 이상의 자격을 소지한 자 또는 이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학력이 있는 자에 한한다. 그래야만 원어민 강사로 일할 수 있는 E-2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체류기간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허가를 받으면 1년 단위로 연장된다.

이 같은 자격과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적법한 체류자격이 없는 무자격 강사다. 따라서 이들을 불법 고용하다 단속을 당한 어학원 대표는 출입국관리법 제18조(외국인 고용의 제한) 제3항 위반으로 통고처분(通告處分·일정한 행정범에 대한 벌금·과료·몰수 또는 추징금에 상당하는 금액을 일정한 장소에 납부하도록 통고하는 행정행위)을 당하게 된다. 범칙금을 10일 이내에 내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될 수도 있다. 적발된 강사 3명은 출입국관리법 제18조 제1항 위반으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에서 대기하며 위법사실을 인정하면 관련 법규를 적용받게 된다. 본국으로 강제 퇴거되는 게 통례.

발뺌·항의·호소… 연행 뒤엔 “노 코멘트”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2007년 1월 현재 전국의 외국어 학원은 1만500여 개소. 이중 1000

여 개가 서울에 몰려 있다. 국내 외국인 강사는 2007년 1월 현재 1만4570명. 국적별로는 미국이 5244명으로 가장 많고 캐나다(4716명), 영국(1333명) 등이 뒤를 잇고 있다(그래프 참조).

하지만 이 통계는 합법적인 외국인 강사들만 집계한 것. 반면 학원가에서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원어민 강사들이 4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자연히 불법 강사들에 대한 단속은 쉽지 않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2005년 8월부터 2개월간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와 공조 수사를 펼쳐 리크루팅 업체를 운영하면서 미국과 캐나다 소재 대학들의 위조 학위증을 국내 어학원들에게 제공해온 전문브로커 K씨(한국계 미국인으로 당시 33세) 등과 원어민 강사 등 73명을 검거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먹고 기획조사를 하지 않는 한 단속 사례의 대부분을 신고나 제보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다 그것마저 단속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제때 단속에 나서기가 힘든 형편이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1과의 단속 관할구역은 서울시 전역과 광명·하남 등 경기도 내 5개 시. 이에 비해 단속인력은 과장을 포함한 16명. 이중 8명은 불법체류자 상시단속에 투입돼 결국 나머지 8명이 불법 외국인 강사 단속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영어 광풍(狂風)’을 타고 무자격 외국인 강사들의 행렬은 판을 치고 있다. 실제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불법 회화지도 외국인 단속 현황’에 따르면 2005년 191명, 지난해엔 121명의 불법 외국인 강사가 적발됐을 정도다. 저개발국가 출신이 주를 이루는 이주노동자들과 달리 대부분 영어권 선진국 국적을 가진 무자격 외국인 강사들은 각급 학교와 학원, 기업들이 자신들의 학위를 검증하기가 쉽지 않음을 악용해 다양한 편법과 불법행위를 저지르며 손쉽게 돈벌이에 뛰어들고 있다.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 없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몇몇 기획조사 적발 사례를 살펴보자.

●기업 출강 불법 회화지도 강사 적발 2005년 6월 서울 강남 일대에서 일부 대기업과 국내 굴지의 인터넷 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새벽 출강을 해온 캐나다인 D씨(당시 29세) 등 7명과 알선회사 두 곳을 적발. 원어민 강사 알선회사와 고용회사는 6~8개월 단위로 출강 계약을 맺고 같은 기간 강사 비용으로 3억8000여 만원을 지불.

●미국 주 상원의원 출신 불법 강사 적발 2005년 7월, 미국 미시간주 상원의원 경력을 지닌 J씨(당시 47세)가 관광사증을 소지한 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대학교수 행세를 하면서 1998년부터 3년간 D대학, K대학 등 유명 대학교와 일부 대기업에 출강해 비즈니스 영어를 강의한 것을 적발. 시간당 5만원의 강의료를 받고 불법 강의.

●합법 체류자 사칭 불법체류 캐나다인 강사 적발 2002년 7월 관광통과(B-2) 자격으로 입국한 캐나다인 A씨(당시 25세)가 이후 3년간 국내에 불법체류하면서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캐나다 친구의 인적사항을 사칭해 경기도 부천의 한의사, 대기업 간부 등 12명의 가정을 방문, 불법강의를 한 것을 2006년 2월에 적발. 시간당 5만~10만원의 강의료 받음.

●캐나다인 사칭 우즈베키스탄인 강사 적발 2000년 11월 입국해 불법체류 중이던 우즈베키스탄인 S씨(당시 39세)가 캐나다인을 사칭하면서 서울 목동과 구로동 일대 가정을 방문, 주 1회 2시간에 월 30만원을 받고 영어와 러시아어를 가르치다 2006년 7월 적발.

●캐나다인 사칭 브라질인 강사 적발 2004년 7월 사증면제(B-1) 자격으로 입국한 브라질인 G씨(당시 32세)가 캐나다인을 사칭하며 15차례 국내를 입·출국하면서 합법적인 취업자격 없이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2년간 시간당 2만5000원씩 받고 영어강의를 하다 2006년 8월 적발.

●외국인 강사 알선 인터넷 카페 적발 한국인 대학생 B씨(당시 23세) 등 5명이 모 포털사이트에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서울 종로, 강남, 신촌, 분당, 부평 등 5개 지역으로 나눠 각자 한 지역씩 맡으며 회원들을 상대로 그룹 스터디와 개인교습을 알선하다 2006년 8월 적발.

발뺌·항의·호소… 연행 뒤엔 “노 코멘트”
무자격 외국인 강사들의 불법행위는 이처럼 천태만상이다. 이들을 단속할 필요성은 무엇보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무자격 강사에게 유아 및 청소년의 영어교육을 맡기게 될 경우 영어교육의 질적 하락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학원 입장에서 볼 때는 쉽고 저렴하게 외국인 강사를 쓰는 불법 고용주와 시간·비용이 많이 드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실력 및 자격을 갖춘 강사를 채용하는 합법 고용주 사이에 형평성의 문제도 생긴다. 합법적인 외국인 강사 알선업체에 구인신청을 할 경우 비자 신청기간을 포함해 통상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때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일부 불량한 외국인 강사들의 문란한 사생활도 문제다.

수급 불균형이 불법 강사 양산

불법 외국인 강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건 일부 대형학원을 제외한 대다수 학원들이 원어민 강사를 1~3명 고용하는 영세한 규모인 데다, 강사 수급을 정확히 맞추기가 어려워 다른 학원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강사를 근무처 변경 없이 사용(지정된 근무처를 무단 변경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하거나 자격 없는 강사를 고용하는 탓이다. 전문 알선업체(에이전시)를 통해 외국인 강사를 구하는 비용이 1인당 200만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여서, 구인과정에서 학원 측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부적합한 강사를 알선받았다 해도 취업 비용과 시간 문제로 알선받은 외국인 강사를 그대로 고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불법 외국인 강사 양산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최성휴 조사1과장은 “초등학교당 1명의 원어민 강사 채용 의무화,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적인 영어마을 유치 등으로 인해 외국인 강사 수요가 급증하는데도 공급은 이에 따르지 못하는 원천적인 수급 불균형이 불법 강사를 낳고 있다”며 “불법 강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영어교육이 필요한 초등학교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인 강사의 학력조건과 단순한 영어놀이 과정이 필요한 유치원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인 강사의 학력조건을 이원화해서 외국인 강사 공급을 원활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棟2월27일 단속된 무자격 외국인 강사들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2월27일 단속에 걸린 어학원(위)과 연행되는 외국인 강사들.학원가에서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강사가 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사진은 기사 내용 중 특정 사실과 관련없음).



주간동아 576호 (p22~24)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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