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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현대인의 성공키워드 ‘전략적 아부’

동물의 아부, 그 ‘원초적 본능’

집단과 서열 있는 어느 곳에나 존재 … 전략적 아부는 생존 필수조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동물의 아부, 그 ‘원초적 본능’

동물의 아부, 그 ‘원초적 본능’

침팬지는 권력자(오른쪽)와 가까워지면 먹이, 섹스 등에서 혜택을 누린다.

2월15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 다람쥐원숭이 스물여섯 마리가 호들갑스럽게 나무를 타고 있다. 원숭이는 야생에서도 쉴새없이 무언가를 한다. 바닥에 깔아놓은 대팻밥을 손으로 찢거나 이빨로 씹는 원숭이의 표정이 앙증맞다.

열여덟 마리의 어른 원숭이와 일곱 마리의 새끼 원숭이를 다스리는 무리의 대장은 여덟 살(사람으로 치면 40세)짜리 수컷 홍만이. 원숭이의 위계서열과 권력다툼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영토와 먹이, 섹스에서 비롯한다. 원숭이들은 보스인 홍만이의 묵인(默認) 없이는 성욕을 해결할 수 없다.

홍만이는 후배위 자세로 수컷들에게 올라타곤 했다. 동성 간의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이 행위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운팅’이라고 불리는 이 행동은 대장이 하위 수컷에게 서열관계를 일깨우는 일종의 훈계 행동. 홍만이에게 마운팅 당한 녀석들은 몸을 움츠렸으며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보스에게 찍힌 녀석은 섹스를 할 기회를 얻기는커녕 후미진 곳으로 내몰려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맹수들도 힘센 놈에게 철저하게 굽실굽실

원숭이들은 권력자가 다가오면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 비굴하게 몸을 떨거나 싱글거린다. 발랑거리며 살랑대고 알랑거리는 행동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위계는 집단을 이뤄 사는 거의 모든 동물사회에서 나타나는데, 서열이 있는 곳에선 반드시 아부가 발견된다.



에버랜드 사파리의 맹수들도 자기보다 힘센 개체에겐 굽실거린다. 영특한 암사자들은 수사자가 자신을 공격할 기미가 보이면 흙을 깔고 대자로 누워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을 부린다. 암호랑이들은 기운 센 수사자가 멀리서 다가오면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허공을 바라본다.

아부는 ‘유전자(DNA)를 퍼뜨리고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전략적 행위로서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성’이라고 동물행동학은 가르친다. 인간과 98% 넘게 DNA를 공유하는 침팬지의 아부는 혀를 내두를 만큼 전략적이다.

침팬지가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굽실거리는 행위에 ‘절(복종적인 인사·submissive greeting)’이라는 개념을 처음 갖다 붙인 동물행동학의 권위자 프랜스 드 발에 따르면,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에게 우러러보는 포즈를 취하며 절하는 까닭은 사귀어놓으면 도움이 되는 녀석(대부분은 보스)의 환심을 사고픈 마음에서다.

수컷 침팬지들은 보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의 털을 골라주거나 몸을 구석구석 핥아준다. 나뭇잎 또는 나뭇가지를 진상하거나 보스의 발에 키스하는 행위도 관찰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우두머리에게 헌신적으로 알랑거리는 녀석이 보스의 비호를 받으면서 암컷과의 섹스나 먹이 분배 등에서 갖가지 혜택을 누린다는 것.

우두머리와 친해지기 위해 권력자를 ‘핥고 빠는’ 침팬지의 행위는 DNA에 각인된 생존 전략인 동시에 손해 볼 게 없는 현명한 행동이다. 보스에 빌붙을수록 권력 피라미드의 위쪽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침팬지는 상위계급의 수컷들이 가임기의 암컷을 분점하므로,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DNA를 후손에게 남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동물의 전략적 아부는 ‘위’에서 ‘아래’로도 이뤄진다. 쿠데타를 예비하고 있는 상위계급의 침팬지는 보스와의 권력투쟁에서 우군을 늘리고자 하위계급 침팬지들의 털을 골라준다. 암컷들의 몸단장을 헌신적으로 돕고 새끼들과 잘 놀아준 수컷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보스 비호받으며 섹스나 먹이 분배 등 갖가지 혜택

동물의 아부, 그 ‘원초적 본능’

맹수들의 세계에도 아부가 있다.

잇속에 맞게 행동하는 데 재빠른 우두머리 침팬지는 쿠데타를 막기 위해 젊은 수컷들과 영향력 있는 암컷들에게 털고르기뿐 아니라 뇌물(음식)을 나눠주면서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부하들의 지지는 경쟁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우두머리도 하위계급에 적절하게 아부해야 권좌를 오래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침팬지 암컷은 섹스도 전략적 아부의 도구로 사용한다. 암컷들은 보스(혹은 실력자)를 다독거리기 위해 엉덩이를 추켜세워 성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발정기엔 관계가 역전된다. 호의를 얻으려는 수컷이 음식을 가져다 바치고, 정성스레 암컷의 털을 고른다. 수컷에게 아부는 금고의 잠긴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에버랜드 와일드사파리의 여제(女帝) 비너스(8세)는 색공을 무기로 수사자들을 거느리며 실력자로 군림해왔다. 비너스가 세상을 다스리는 법은 영특하지만 비겁하다. 비너스는 마음에 안 드는 사자나 호랑이가 있으면 살며시 그 앞으로 다가선다. 그러면 비너스의 매력에 포박당한 힘 좋은 수사자가 비너스가 눈길을 준 사자나 호랑이를 혼내준다.

수컷의 사타구니를 ‘핥고 빠는’ 비너스의 혀는 능란하다. 비너스가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이런 아부 덕분이다. 비너스는 속살을 보여주며 수사자에게 앙탈을 부릴 때도 앙칼졌는데, 사람의 눈으론 종잡을 수 없는 뭔가 특별한 매력을 가진 모양이다. 수사자들은 ‘생존 능력이 뛰어난’ 여제의 비위를 맞추면서 이 암컷을 통해 DNA를 퍼뜨릴 가능성을 높인다.

케냐의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버빗원숭이들은 우두머리에게 빌붙음과 동시에 현재는 지위가 낮더라도 계략이 뛰어나 향후 권력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개체를 나름대로 짚어내 털고르기를 해준다. 미래의 권력자에게 알랑거림으로써 유대관계를 맺어놓으려는 것이다. 비너스도 젊은 수사자로 ‘갈아타기’ 전에 비슷한 행동을 해왔다.

요컨대, 아부는 집단으로 생활하는 동물의 아첨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DNA에 아로새겨진 본성이다. 다만 언어를 사용하고, 문명을 이루고 사는 인간의 아부는 동물의 그것보다 복잡하다. 교활한 영장류의 혈통을 이어받아 진화해온 인간은 면전에서 아첨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잇속에 맞게 행동하는 데 재빠른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찬사한다’.



주간동아 576호 (p20~21)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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