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2017.01.04

와인 for you

후회 없는 선택, 예술적 풍미와 맛

스페인의 파우스티노 그랑 리제르바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6-12-30 16: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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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우스티노(Faustino) 와인 레이블에는 검정 모자를 쓴 근엄한 남자가 그려져 있다. 혹시 와이너리 설립자인가 싶어 자세히 보면 왠지 그림이 낯익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그린 네덜란드 상인 밤베이크(Bambeeck)의 초상이다. 파우스티노는 ‘와인은 미술처럼 또 하나의 예술’이라는 의미로 레이블에 렘브란트의 그림을 넣었다고 한다.

    1861년 설립된 파우스티노는 현재 90여 개 나라에 와인을 수출하는 스페인 북부 리오하(Rioja) 지방의 대표 와이너리다. 템프라니요(Tempranillo)라는 포도가 주 품종인 리오하 레드 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맛이 부드러워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리오하 와인은 숙성 기간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가장 높은 등급은 오크통과 병에서 5년 이상 숙성한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이고 3년 이상 숙성하면 레세르바(Reserva), 2년 이상 숙성하면 크리안사(Crianza)로 분류한다. 숙성을 거의 하지 않은 와인은 레이블에 생산지인 리오하만 적는다.

    리오하 와이너리는 대부분 매년 모든 등급별로 와인을 생산하지만 ‘파우스티노 그랑 리제르바’는 작황이 좋은 해에만 출시된다. 그래서 1964년부터 지금까지 파우스티노 그랑 리제르바는 14개 빈티지에 불과하다. 그들은 와인을 오크통에서 30개월 이상 숙성시킨 뒤 병에 넣고 다시 묵히는데, 병 숙성 기간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소비자가 사서 바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맛이 들었을 때 출시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파우스티노 그랑 리제르바 와인 가운데 가장 최근 빈티지는 2004년이다. 무려 12년 전 빈티지다. 2005년산은 아직도 숙성 중이다. 와인병도 특별하다. 표면을 사포로 연마해 병 색깔이 뿌옇다. 빛을 최대한 차단해 와인 품질을 오래 유지하고자 고안해낸 방법이다.

    파우스티노 그랑 리제르바의 이름은 파우스티노 1세다. 파우스티노 1세는 달콤한 과일향, 매콤한 향신료향과 함께 오랜 병 숙성으로 만들어진 가죽, 담배, 버섯 등 다양한 향이 어우러져 있다. 산도가 적당하고 타닌이 부드러워 마시기 편하며, 와인을 목으로 넘긴 뒤에는 입안에 달콤한 베리향이 오래도록 맴돈다. 전 세계 리오하 그란 레세르바 시장의 27%를 점유하는 명품 와인다운 맛이다. 고기나 버섯요리 또는 에멘탈이나 그뤼에르처럼 숙성된 치즈와 즐기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가격은 3만~4만 원대로 매우 저렴하다.

    3년 숙성시킨 레세르바 와인의 이름은 파우스티노 5세다. 잘 익은 딸기향에 18개월간 오크 숙성으로 얻은 바닐라향이 은은하게 섞여 있고 무게감이 적당해 감자요리나 파스타에 곁들이면 좋다. 파우스티노 7세는 오크 숙성이 6개월 정도로 짧아 가볍고 과일향이 풍부하다. 햄이나 참치 뱃살 등 가벼운 안주류와 잘 맞는다. 파우스티노 5세는 2만~3만 원대, 파우스티노 7세는 1만~2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파우스티노의 와인 저장고는 5만 개의 오크통과 900만 개의 와인 병을 수용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소비자 입맛에 딱 맞을 때까지 무한정 와인을 숙성시키니 거대한 셀러가 필요한 것이다. 예술을 창조하는 마음으로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만든 와인, 파우스티노. 가격으로나 품질로나 후회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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