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2017.01.04

경제

한국인은 왜 ‘별다방’에 빠졌나

스타벅스 1000호점 개점…‘레드오션’ 커피시장 돌파한 강력한 팬덤의 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12-30 16: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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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2월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스타벅스 매장 계산대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스타벅스 스페셜 에디션 카드’를 구매하려는 이들 때문이었다. 스타벅스 카드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대금을 결제할 때 사용하는 전용카드다. 버스카드처럼 일정 금액을 충전하는 형식으로,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날 인파가 몰린 건 스타벅스가 1000호점 개점을 기념해 오직 이 매장에서만 겉면에 금박을 두른 ‘한정판’ 카드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개수는 단 3000장, 최소 충전액은 5만 원이었다. 이 카드는 하루 만에 동이 났고, 이후 한동안 인스타그램 등 여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 카드 ‘득템’을 자랑하는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한 직장인은 “평소 커피를 마실 때는 스타벅스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주문, 결제한다. 하지만 이 카드는 꼭 소장하고 싶어 1시간 반 동안 줄을 섰다”고 밝혔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스타벅스 브랜드 로고 상품을 사는 건 해당 제품이 예쁘거나 사용하기 편리해서만이 아니다. 스타벅스 ‘굿즈’를 열광적으로 사 모으는 이들에게 그 행위는 스타벅스 브랜드의 트렌디하고 ‘에지’ 있는 이미지를 공유하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대개 SNS를 통해 결과물을 공개한다. 스타벅스는 오래전부터 커피보다 굿즈를 팔아 충성스러운 고객을 늘려왔다”고 밝혔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현지화의 황금비율

    특히 한국 스타벅스는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데 세계 어느 스타벅스에 뒤지지 않는다. 서규억 스타벅스커피코리아 홍보팀장은 “스타벅스가 진출한 세계 75개국 가운데 디자인팀이 따로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했다. 이 팀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은 2016년 ‘붉은 원숭이 해’를 맞아 원숭이가 그려진 머그와 텀블러를 제작하는 등 한국만의 굿즈를 꾸준히 출시해 ‘완판’ 기록을 세우고 있다. 매년 화제를 모으는 ‘스타벅스 다이어리’ 역시 이들 작품이다.

    스타벅스는 2004년부터 겨울 무렵이면 음료를 일정 횟수 이상 마시는 고객에게 선착순으로 다음 해 다이어리를 증정하는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이것이 화제를 모으면서 다이어리 ‘득템’을 목적으로 스타벅스를 찾는 이가 늘어 겨울 매출이 치솟는다는 후문이다.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커피전문점이 있다고 할 만큼 관련 상권이 포화 상태인 한국에서 스타벅스가 꾸준히 성장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강력한 ‘팬덤’이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할 때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던 건 아니다. 스타벅스 본사와 신세계 이마트가 50%씩 출자한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99년 서울 이화여대 앞에 제1호 스타벅스 매장을 열었다. 당시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젊은 여성은 ‘된장녀’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곤 했다. 상대적으로 비싼 커피 값과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허세’의 상징으로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이후 꾸준히 이미지를 바꿔갔다. 특히 ‘20~45세 전문직 지식근로자가 많이 모이는 곳’(송규봉 GIS UNITED 대표 분석)에 매장을 세움으로써 브랜드에 세련됨, 여유로움, 진취성 등의 이미지를 입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전공하고 와튼경영대학원 등에서 GIS 연구원으로 재직한 송 대표는 2013년 스타벅스 서울 매장 지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종로와 을지로가 만나는 강북 중심업무지구 △강남 테헤란로 일대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구로구와 금천구가 만나는 구로디지털단지 일대 등을 거점 삼아 스타벅스 매장이 차츰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전거바퀴 중심(hub)에서 가느다란 바큇살(spoke)이 뻗어나가는 듯한 ‘허브 앤드 스포크’ 방식이었다. 이러한 스타벅스 매장의 밀집도는 서울에 본사가 있는 757개 상장기업 본사 분포와 일치했다고 한다.

    송 대표는 이에 대해 “미국 스타벅스의 출점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며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는 경영 컨설팅 회사 매킨지와 인터뷰에서 ‘매장 위치를 어떻게 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지난 40년간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비롯해 이상적인 매장 입지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을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매우 고도화된 모델을 개발해왔다’고 답했다. 한국 스타벅스 역시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입지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스타벅스는 여타 커피전문점과 매장 분위기도 차별화했다. 테이크아웃을 은근히 부추기는 저가 커피전문점과 달리 편안한 의자, 무료 와이파이(Wi-Fi) 시스템, 잔잔한 음악 등으로 ‘머물고 싶은 공간’을 창조했다. 서규억 팀장은 “이러한 특성은 다른 나라 스타벅스도 공유하는 것이지만, 한국 매장은 특히 고객이 편안함을 느끼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우리나라 스타벅스에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여러 개인이 공유할 수 있는 넓은 탁자)은 혼자 카페에 오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한 테이블을 독차지하는 것은 불편해하는 한국인의 특성에서 착안해 우리나라 스타벅스 디자이너들이 개발해낸 것”이라고 밝혔다.



    승승장구는 계속될까  

    한국에서만 시행하는 ‘콜 마이 네임’ 서비스 역시 현지화의 한 사례다. 해외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직원이 회사 시스템에 등록된 고객 이름을 부르며 커피를 제공한다. ‘톰, 아메리카노 나왔어요’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서비스를 한국에 들여오자 국내 소비자는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이름까지 알려줘야 하나’라며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본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객 닉네임을 등록하는 서비스를 마련했다. 음료를 제공할 때 직원이 이를 불러주는 것이다. 이후 대중 사이에서 ‘스타벅스 닉네임 재미있게 붙이기’ 경연이 벌어졌고, 자신의 이름을 ‘라테 시키신 분’으로 등록한 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직원이 ‘라테 시키신 분,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고 했다는 등 후일담이 SNS를 가득 채웠다. 이 과정에서 ‘스타벅스 팬덤’이 더욱 공고해졌음은 물론이다.

    본사의 오랜 노하우와 한국적인 특수성을 결합한 마케팅 전략으로 2016년 스타벅스는 한국 진출 17년 만에 1000호점 출점 기록을 세웠다. 연매출도 사상 최고액을 돌파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2016년 삼사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7153억 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5494억 원)보다 30.2% 늘었다. ‘다이어리 특수’가 있는 사사분기 매출을 합하면 1조 원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저서 ‘Pour Your Heart Into It’에서 ‘고객들은 스타벅스의 커피와 사람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 때문에 스타벅스를 선택한다’고 했다. 한국 소비자를 사로잡은 힘 역시 커피 맛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과연 스타벅스가 앞으로도 마니아의 정서를 달래는 공간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많은 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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