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2017.01.04

특집 | 폭풍전야 미·중 무역전쟁

한국 경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중국 통한 對美 직간접 수출 치명타, 신흥국 거래도 빨간불…‘고부가가치’만 살 길

  •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hjkim@lgeri.com

    입력2016-12-30 16: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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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후 반세계화,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 근린궁핍화 같은 단어들도 더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마치 연관검색어처럼 트럼프 당선인의 뒤를 바짝 따라다닌다. 트럼프 현상의 배경을 설명할 때나, 미국 차기 행정부 출범 이후를 전망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멕시코, 베트남 제3세계 우회 수출 막힐 수도

    영국 국민이 자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를 지지한 것이나, 미국 유권자가 트럼프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 모두 그 배경에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향한 반발, 즉 반세계화 움직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염원을 바탕으로 당선한 트럼프는 자국 기업과 노동자 보호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보호무역정책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런 결정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미국의 이익으로 파생하는 피해를 이웃 국가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소위 ‘근린궁핍화(beggar-my-neighbor)’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반세계화 움직임 확산이 초래할 비극적 드라마의 종결이 심히 걱정스러운 이유다.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변화는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다. 물론 보호무역정책 확산의 책임을 트럼프 당선인에게 묻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보호무역 조치들은 세계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던 2010~2012년 잠시 주춤했을 뿐, 미국 대선 일정과 상관없이 줄곧 늘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반세계화 움직임과 트럼프 현상이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7년 이후 미국 통상당국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은 훨씬 더 노골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보호무역정책 확산을 우려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최근 들어 반덤핑 제소 등 미 통상당국의 정책 집행이 자의적,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많아 피소 기업들의 예측과 대응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율, 기술표준, 위생검역 같은 무역장벽은 대부분 기준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보호무역 조치’도 적잖게 취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반덤핑 제소가 이뤄지더라도 관행으로 정해진 통상적인 절차와 일정을 따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었고 예측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새 ‘불리한 가용정보(Adverse Facts Available·AFA)’ 규정을 확대 적용하는 등 피소된 외국계 기업에게 무혐의 입증 책임을 지우고, 미국 피해 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면서 적기 대응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추세다. 이런 피해는 특히 자동차, 가전제품 등 대미 수출이 많은 내구성 소비재 분야와 미국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한 일부 철강이나 화학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제재 조치가 강화되고, 이를 계기로 양국 간 통상 마찰이 경쟁적으로 심해질 경우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이다. 일차적으로는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겠지만 미국의 무역장벽 강화는 중국, EU, 멕시코 등 주변국 통상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며, 그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리 기업이 입을 직간접적인 피해 역시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미국시장으로 직접 수출하는 경우 외 중국이나 멕시코에서 임가공 과정을 거쳐 간접 수출하는 사례도 상당히 많다. 반대로 우리 기업이 미국이나 독일 장비업체에 수출한 부품이 완제품과 함께 중국으로 팔려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경제성장 둔화, 엎친 데 덮친 격

    따라서 미·중 간, 혹은 미국과 주변 국가 간 보호무역장벽이 높아질 경우 두 나라에 대한 직접 수출뿐 아니라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GVC)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출하는 물량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어 이중고, 삼중고를 겪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중 수출액을 상품 성질별로 나눠보면 원자재 30%, 자본재 65%, 소비재 5%가량이다. 즉 중국 내수시장으로 직접 팔려가는 소비재의 비중은 매우 낮은 반면,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원자재와 자본재 비율이 95%에 달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중국에서 생산한 완제품의 25~35%가 해외로 수출되며, 총수출의 18%가량이 미국시장으로 향한다. 다시 말해 한국 기업은 미국으로 직접 들어가는 수출과 미국을 최종 목적지 삼아 중국이나 멕시코, 베트남 등 제3국을 거쳐 들어가는 수출이 모두 영향을 받는다. 한 발 더 나아가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저임금 후발국의 경제가 수출경기 부진으로 악화되면 신흥국시장 개척에 공을 들여온 우리 기업의 수출 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피해는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 사이에서도 명암은 다소 엇갈릴 전망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출범 이후 미국 경제에 거의 종속된 멕시코처럼 특정 국가나 단일 업종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내수시장 규모가 크거나 수출 대상국과 업종이 다변화된 국가는 특정 나라에 수출이 막히더라도 그 대체시장이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는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할 만하다.

    이처럼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우리나라에겐 특히 치명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수입+수출) 비중이 80%에 이르는 만큼 수출입 부진은 곧바로 투자 위축, 고용 감소 등 경제활력 둔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누가 뭐라 해도 아직까지는 수출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5년 -6.6%를 기록한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2016년에는 -8.5%까지 떨어졌으며, 같은 기간 수입 증가율 역시 -17~-10%로 부진했다는 점은 최근 우리 경제의 성장 활력 둔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선택 가능한 대안은 무엇일까. 먼저 내부적으로는 주력 업종의 고부가가치화, 생산공정 내 무형자산 확대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후발 국가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피 말리는 비용 경쟁도 피할 수 있다. 다만 기업들의 원천기술 확보, 교육체계 개편 등 상당한 준비와 시간이 요구되는 만큼 당장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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