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2017.01.04

정치

‘개헌’으로 불붙은 대선 샅바싸움

문재인 나 홀로 ‘호헌’, 비문 진영 헤쳐 모여…개헌파 동상이몽도 과제

  • 유창선 정치평론가 yucs1@hanmail.net

    입력2016-12-30 1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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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 개헌세력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비주류 30여 명이 주축이 된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의원 모임’(가칭)은 2016년 12월 26일 개헌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다음 날 민주당 비주류와 국민의당 의원 69명이 함께 개헌토론회를 열어 두 야당의 개헌파가 연대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두 토론회에서 개헌은 시대적 과제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는 대통령선거(대선) 전 개헌 논의에 반대하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추미애 지도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런 가운데 국회는 정식으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1월부터 본격적인 개헌 논의에 들어간다. 바야흐로 개헌이 국회에서 공론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비박계가 꿈꾸는 권력분점형 개헌

    이에 앞서 국민의당은 ‘개헌 즉각 추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대선 전 개헌이 통과되지 않으면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제안한 대로 대선후보들이 개헌 공약을 내건 뒤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조건이 따르기는 했지만, 야권에서 처음으로 개헌 추진을 당론으로 정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민주당 내 대선주자들도 사실상 개헌론을 수용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진작부터 개헌 필요성을 제기해온 김부겸 의원은 야권 전체가 합의하는 개헌안을 만들어 야권 공동공약으로 국민에게 내놓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개헌에 대해 말을 아끼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9년 개헌을 완성한 뒤 2020년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자고 했고, 이재명 성남시장도 분권형 4년 중임제로 개헌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야권에서 대선 선두주자인 문 전 대표의 제동으로 공론화되지 못하던 야권 내 개헌론이 이제 물꼬를 트는 양상이다.

    개헌론이 급물살을 탄 데는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비박(비박근혜)계 개혁보수신당(가칭)이 등장한 정치 환경 변화의 영향도 크다. 신당의 한 축인 김무성 전 대표는 그동안 대선 전 개헌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어느 세력과도 연대할 수 있다는 그의 개헌론은 야당 내 개헌세력이나 제3지대 세력과 권력분점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원죄를 지녔기에 단독집권 가능성이 줄어든 비박계가 권력분점을 위해 개헌을 꿈꾼다는 해석을 낳았다. 비박계 신당은 다당제를 강화해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 협치가 불가피한 상황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개헌 필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개헌 공조로 민주당 압박

    이처럼 여야를 넘어 개헌파가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음을 감안하면 개헌론이 정치권의 대세를 점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하다. 그러나 대선 전 개헌 추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높은 벽이 있다.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주류세력의 반대다. 개헌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 의석수가 121석이다. 새누리당-국민의당-개혁보수신당 소속 의원 전원이 찬성하는 극단적 경우를 상정한다 해도,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물론 민주당 내 개헌론자들이 당론을 이탈해 다른 정당들과 함께 개헌을 추진할 수도 있겠지만, 조기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자칫 집권이 유력시되는 대선을 망쳐놓았다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의 개헌론은 문 전 대표의 호헌론이라는 벽 앞에서 주춤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현 개헌 논의를 자신을 포위하려는 불순한 전략으로 여기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문 전 대표가 자발적으로 개헌론을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고, 결국 신년 정국은 개헌론과 호헌론의 대치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각 당 개헌세력은 국회 개헌특위 활동을 계기로 삼아 개헌론을 확산하면서 대선 전 개헌에 반대하는 민주당 주류를 압박해나갈 것이다. 이미 개헌 문제와 관련해 각 정당 간 경계선은 무너졌고, 개헌 공조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이처럼 정치권 내 개헌세력은 여야 경계를 넘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민주당 비주류는 물론 새누리당, 국민의당, 개혁보수신당, 그리고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정의화 전 국회의장 같은 제3지대 인사에 이르기까지 구성도 다양하다. 개헌세력이 광범위한 만큼 일단 개헌이 공론화되면 동조세력 규합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헌세력이 마음을 먹었으니 개헌이 성사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이들의 응집력이 강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개헌세력은 아직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박당이 된 새누리당은 당연히 권력분점형 개헌을 원한다.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인지라, 대선 전 그런 개헌이 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반길 것이다. 개혁보수신당도 김무성 전 대표 쪽에서는 ‘비박(비박근혜)-비문(비문재인)’ 세력과 손잡을 수 있는 내각제 개헌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유승민 의원은 대선 전 개헌 자체에 소극적이고, 권력구조도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개혁보수신당이라고 권력분점형 개헌 당론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국민의당도 사정은 복잡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대선 전 개헌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호남 중진의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당과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세력들과 개헌연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고, 결국 안 전 대표와 호남 중진의원들의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개헌 추진 당론이 정해진 것이다. 자신의 대선 완주를 목표로 하는 안 전 대표와, 그 외 대안을 열어놓으려는 호남 중진의원들 사이 미묘한 기류 차이가 읽히는 대목이다.

    다시 원내 제1당에 오른 민주당은 개헌 논의 자체가 뇌관이 될 수 있다. 문 전 대표와 추미애 지도부가 대선 전 개헌을 반문연대 음모로 보는 상황에서 비주류 의원들의 개헌 행보가 일정 선을 넘어서면 사실상 반란으로 규정될 수 있다. 모든 정당이 다 개헌에 찬성해도 민주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비주류 개헌론자들이 개헌을 밀어붙이면 개헌은 가능해질 수 있다. 개헌은 심각한 당 내홍을 수반할 수 있는 문제이고, 그래서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는 민주당 개헌파가 그렇게까지 행동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 같은 동상이몽의 현실을 감안하면 대선 전 개헌 합의가 이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개헌특위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다 결국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담기고,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완료하는 로드맵에 합의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반기문과 문재인이라는 변수

    하지만 대선 전 개헌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개헌세력의 연대는 대선구도를 좌우하는 변수다. ‘호헌 대 개헌’ 구도는 곧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문 전 대표에게 대단히 부담스러운 구도다. 문 전 대표가 다자구도에서 선두자리를 놓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로 재편된다면 대선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판세로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

    사실 문 전 대표가 ‘호헌 대 개헌’ 구도를 막는 확실한 지름길이 있다. 그 자신이 개헌 논의에 동참하면 된다. 그리하여 모두가 개헌을 얘기하는 상황이 된다면 특별히 개헌이 문 전 대표를 포위하는 반문연대의 고리가 되기는 어렵다. 개헌 논의는 탄력을 받는 대신, 문 전 대표는 자신을 향한 포위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잘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이 문 전 대표의 사정이다. 그의 전략은 현상 유지다. 현 구도나 판세를 흔들어놓을 변수를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 그가 가진 최상의 집권전략으로 읽힌다. 개헌론을 반대하는 것도 그렇고, 야권의 공통된 요구인 결선투표제를 사실상 반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판의 변화를 막으려고 개헌을 반대하는데 오히려 그 결과로 판이 변화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것이다. 문 전 대표가 개헌에 반대하고 결선투표제에도 부정적인 것이 오히려 다른 세력들에게 반문연대의 명분과 유혹을 만들어주는 상황을 예고한다.

    개헌연대와 관련해 또 하나의 변수는 반 전 총장의 선택이다. 그동안 정치권의 개헌론에는 항상 반 전 총장 이름이 따라다녔다. 특히 친박과 비박의 개헌론은 반 전 총장과 다른 인물의 연대를 통한 권력분점형 권력구조를 전제로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최근 반 전 총장이 개헌 필요성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밝혔고, 임기 단축 개헌 의사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1월 귀국 후 실제로 개헌을 적극 주장하면서 개헌세력과 연대할 경우 개헌연대가 반문연대 성격을 띨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개헌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개헌이 대선정국의 뇌관인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만 퇴진한다고 우리 사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동안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치·사회 전반에서 대개혁을 이루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런 내용을 담은 개헌이 지름길이다. 그럼에도 개헌이 쉽지 않은 이유는 대선주자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 전 개헌을 주장하는 쪽이나, 그에 반대하는 쪽이나 모두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개헌 추진에 앞장서는 손학규 전 고문은 “개헌 이긴 호헌은 없다”고 말한다. 과연 개헌세력이 호헌세력을 이길 수 있을까. 개헌은 이미 대선주자 간 힘겨루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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