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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고향의 시루떡

따끈한 이웃의 情 한입에 먹고 싶다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따끈한 이웃의 情 한입에 먹고 싶다

따끈한 이웃의 情 한입에 먹고 싶다
시루떡의 김 속에는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다. 그러나 시루떡의 맛은 언제나 그 향수를 배반한다.”

이어령 씨가 ‘문장대백과사전’에 쓴 글이다. 시루떡의 김 속에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다는 말에는 대한민국 성인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그러나 시루떡의 맛이 그 향수를 배반한다는 말에는 적어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식은 시루떡은 담백하기만 할 뿐 별 맛이 없다. 하지만 김이 오르는 시루떡은 그 맛이 무엇에 비길 바가 아니다. 따끈따끈할 때는 쌀의 전분이 당화되어 그 맛이 달기까지 하다. 폭신폭신한 듯하지만 두어 번 씹으면 찰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팥고물의 고소함까지 더해지니 그 맛이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이어령 씨도 이 맛을 알 것이다. 아마 ‘식은’ 시루떡 맛에 배반을 느낀 것이 아닐까 싶은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삼국시대 초기의 시루가 꽤 많이 전시돼 있다. 반면 솥은 거의 없다. 그 시기 주요 끼니는 밥이 아니라 떡이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떡 관련 일화가 전해진다. 남해왕이 죽자 노례와 탈해가 서로 왕위를 놓고 양보하는데, 탈해가 성지인(聖智人)은 치아가 많다고 하니 떡을 물어 시험하자고 제안한다. 그때가 서기 17년이니 2000년 전쯤의 일이다.

공동체 정서 상징하는 떡, 이제는 명절 음식

‘떡 해먹을 세상’이란 속담이 있다. 세상을 절구로 찧고 메로 쳐 떡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꼴이 떡을 해 굿판을 벌일 지경이라는 의미다. 마을 일이 잘 되지 않으면 굿판을 벌여 액막이를 했고, 그 주된 음식이 떡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아이가 ‘푸세식’ 화장실에 빠져도 액을 푼다고 떡을 돌렸다. 또 아이를 낳으면 삼칠일 지나 시루떡을 돌리고 백일이면 수수떡을 돌리고 돌에는 백설기를 돌렸다. 이사를 와도 떡을 돌려야 ‘된 집안’이란 소릴 들었고, 대갓집에서는 추석에 머슴들에게 송편을 한 아름씩 안겨야 덕 있는 양반 대접을 받았다. 떡이란 곧 가족끼리 먹는 밥과 달리,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나눠 먹는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들이다.



요즘 떡을 안 먹는 까닭은 떡을 나눠 먹던 지역공동체의 해체에 그 첫째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최근엔 이사를 와도 떡 돌리는 집을 보기 어렵고, 백일이라고 수수떡을 보내오는 집도 없다. 공동체사회가 사라지니 떡의 사회적 의미도 사라지고 떡 먹을 일도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씨족마을 출신이다. 경남 마산시 진전면 임곡리가 그 마을이다(임곡[林谷]은 일제강점기에 개명한 것인데, 원래 이름은 ‘숲실’이다. 숲이 있는 동네라는 말이다. 행정명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임곡이라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숲실이라 부른다. 참 정감 있는 이름인데…). 족보를 보면 임진왜란 이후부터 이 마을에 황씨네들이 모여 살았다. 고향이라지만 부모님이 일찌감치 객지 생활을 하셔서 이 마을에 갈 일이라고는 시제를 모시기 위해 3~4년에 한 번 정도밖에 없다.

숲실에 가면 그 특유의 냄새가 먼저 나를 반긴다. 햇살 받은 흙벽 냄새 같기도 하고 군불 지핀 아궁이 냄새 같기도 한…. 고향에 사시는 종친들 몸에서도 이 냄새가 나는데, 친척이라는 반가움 이전에 이 냄새로 인해 그분들이 더없이 살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제는 한나절 내내 절하다가 끝난다. 솔직히 좀 지겹기도 한데, 간소화하자고 건의를 드리고 싶지만 매년 오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도 귀찮아한다고 어른들께 꾸지람만 들을까 싶어 만다. 점심 먹고 또 절하다가 오후 3시쯤에야 마무리한다. 먼 길을 가야 하는 내게 고향분들은 뭐라도 하나 챙겨 보내려 하신다. ‘검정 봉다리’에 음복 음식을 넣어주는데 이때 꼭 들어 있는 게 떡이다. 이 떡은 식어도 맛있다. 고향 냄새 덕이다.

공동체 정서를 일깨우는 음식으로서의 떡을 먹을 기회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외에는 거의 없다. 간혹 결혼식이나 회갑 피로연 상차림 한구석에 떡이 오르기도 하는데, 가까스로 남아 있는 우리네 공동체 정서를 대변하는 것 같아 오히려 서글퍼 보이기까지 한다.

요즘 나는 떡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한두 봉지는 꼭 사들고 들어온다. 그러나 이를 다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주방에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냉동실에 처박힌다. 그런데도 또 떡집을 지나치면 꼭 떡을 사들고 온다. 내가 고픈 것은 떡이 아님이 분명한데…. 이어령 씨 역시 내 심정 같았건만 이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주간동아 2007.02.06 572호 (p77~77)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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