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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난, 블루스 선율에 녹아버렸다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 공연 ‘명불허전’ … 지치고 힘겨운 중년 감성 위안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그날 밤 난, 블루스 선율에 녹아버렸다

  • It’s late in the evening(늦은 저녁입니다.)/ She’s wondering what clothes to wear(그녀는 무슨 옷을 입을지 망설이고 있어요.)/ She puts on her make-up and brushes her long blonde hair(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죠.)/ And then she asks me, “Do I look all right?”(그러곤 제게 묻습니다. “저 괜찮아 보여요?”)/ And I say “Yes, you look wonderful tonight”(저는 말해줍니다. “오늘 밤 당신은 무척 아름다워.”)
그날 밤 난, 블루스 선율에 녹아버렸다
어떤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게끔 하는 기능을 한다. 당신에겐 그런 경험이 없는가. 익숙한 선율이 귀에 들려오는 순간, 과거 자신이 속해 있던 특정 공간에 대한 기억과 그 공간 위를 떠돌던 이런저런 냄새들, 그리고 그때 품었던 감정의 편린(片鱗)들까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경험 말이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기자에게 에릭 클랩턴(Eric Clapton)의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이 자동 연상시키는 과거의 한 자락은 1970년대 말 대학가의 음악다방 안, 어두컴컴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공간이다. 독재정권 말기 휴강을 밥 먹듯 하던 그 시절, 운동권에서 한 걸음 비껴서 있던 우리 ‘회색인’들은 커피 한 잔에 백몇십 원 하는 다방에 죽치고 앉아 음악을 들었다. 레드 제플린, 비지스, 사이먼 앤 가펑클, 리오 세이어, 그룹 퀸, 캔사스….

전체 관객 3분의 2는 30`~50대

따라서 기자에게는 에릭 클랩턴의 내한 공연이 그때의 감수성을 떠올리는 일종의 회귀(回歸) 여행이었다. 그 당시에 즐겨 듣던 음악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라이브로 다시 들으면 내 안에 남아 있는 갖가지 생채기와 콤플렉스들을 객체화해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불완전한 감정의 퍼즐을 재구성해 기억 속의 내 청춘을 복권할 수도 있지 않을까.

1월 23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 주변은 붐볐다. 주차에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에 중년층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주최 측에선 표를 구매한 관객 중 30대가 37%, 40대가 23%, 50대가 7%라며 “무척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최근 유명 외국가수의 내한 공연이 대부분 자리를 다 채우지 못한 것에 비춰볼 때 1만명 들어가는 객석이 완전 매진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전체 관객의 3분의 2가 넘는 30~50대들은 무슨 이유로 에릭 클랩턴의 공연장을 찾은 것일까. 단순히 그의 노래가 좋아서? 현존하는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라는 그의 현란한 연주를 직접 보려고? 아니면 기자처럼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공연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올해 62세가 된 ‘기타의 신(神)’이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만만치 않은 티켓값이 아깝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했다. 프로그램은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이나 ‘체인지 더 월드(Change the World)’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곡 대신 70년대 밴드 시절의 곡들로 대부분 채워졌지만, 익숙하지 않은 레퍼토리가 무대와 관객의 거리감을 넓히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드럼과 베이스, 키보드 둘에 기타 둘이 합세한 밴드도 가히 환상적이었다. 고비마다 등장하는 신들린 듯한 애드리브에 관객은 숨을 죽였다. 공연은 히트곡 ‘원더풀 투나잇’과 ‘레일라(Layla)’에 접어들면서 절정에 올랐다. 흥분한 플로어 쪽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포효하는 거장의 몸짓에 화답했다.

스탠드 쪽의 기자 앞줄에 앉아 있던 30대 부부는 형광 막대봉을 마구 휘둘러대며 몸을 흔들었다. 그 옆자리의 50대 아저씨도 발을 구르고 어깨를 흔들며 박자를 맞췄다. 뒤쪽에 앉은 은발의 외국인 커플은 ‘레일라’를 소리내어 따라 불렀다. 그날 저녁 공연장에서 ‘근엄한’ 중년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의 의식 수준을 계량화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책으로 쓴 미국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음악 등 예술과 가까이하는 것이 지적, 도덕적 능력을 포괄해 개인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고 강조했다. 호킨스 박사는 또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그들의 기질이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의식 수준이 높은 쪽에 속한다는 주장도 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드는 음악이 타인의 의식세계를 개선하는 순기능을 하기 때문이란다(‘Power vs Force’·한국어 번역판 ‘의식혁명’, 한문화, 2002).

인생 중요한 고비 음악으로 극복

에릭 클랩턴의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를 보면 호킨스 박사의 가설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신이 인생의 중요한 고비를 음악으로 극복해낸 훌륭한 사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릭 클랩턴은 마약중독에 허우적거리던 시절, 그리고 절친한 친구였던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의 아내와 나눈 위험한 사랑 등 좌절과 절망의 순간들을 음악으로 치유했으며, 그때마다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을 썼다. 1991년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실족사한 아들을 생각하며 썼다는 ‘티어스 인 헤븐’이 가장 널리 알려진 예다. 이 곡은 93년 그래미상 6개 부문을 휩쓸며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이번 내한 공연 전에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평생 추구해온) 블루스 음악은 현재의 고통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얘기인 셈이다.

이 시대의 많은 중년 세대는 에릭 클랩턴의 음악에서 어떤 위안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간단없이 휘청거리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소량의 진통제 주사를 놓는 것, 그것이 에릭 클랩턴의 공연장을 찾는 40, 50세대의 심리가 아닐까 하는 말이다.

기자에게 그 주사의 효과는 어땠느냐고? 물론, 아주 컸다. 그의 기타 소리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속에서 둥둥거리고 있으니까.



주간동아 2007.02.06 572호 (p64~65)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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