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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화성의 추억’

20여 일 동안 부녀자 실종 3건 터져 … 경찰 대규모 수사에도 별 단서 없어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되살아나는 ‘화성의 추억’

“수사본부죠? 화성 연쇄실종사건에 대해 여쭤보려고요.”

“화성 연쇄실종사건이란 건 없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부녀자 4명이 실종된 사건을 수사하는 중 아닌가요?”

“이봐요, 기자 양반. 제발 화성 어쩌고 좀 붙이지 말아요. 가뜩이나 사건이 안 풀려 고생인데…. 그냥 부녀자 연쇄실종사건이라고 써요. 실종자들이 화성 사람들도 아니잖아요.”

화성에 또다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차로 10여 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는 시화호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탓이 아니다. 20~50대 부녀자들이 화성에서 사라지면서 ‘살인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여 간 이 지역에서 총 4명의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원에서 사라진 20세 여대생 연모 씨는 다른 실종사건들과 관련 없다”는 수사팀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연쇄 실종자는 3명에 이른다.



실종자들 집은 수원·안양 등으로 다양

처음 실종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 12월14일. 노래방 도우미였던 배모(45·여) 씨가 사라졌다. 밤늦게 언니와 헤어진 뒤 사라진 그의 휴대전화는 다음 날 새벽 4시경 화성시 비봉면 일대에서 꺼졌다. 열흘 후인 12월24일에는 또 다른 노래방 도우미 박(36·여) 씨가, 올해 1월3일에는 회사원 박모(52·여) 씨가 퇴근길에 연이어 실종됐다. 이들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끊긴 곳도 모두 비봉면 일대였다.

부녀자 연쇄실종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는 1월9일 터져나왔다. 지난해 12월 사라진 두 노래방 도우미의 행적을 은밀히 수사하던 경찰이 비공개 수사를 포기한 것. 여기에는 1월3일 접수된 세 번째 실종자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언론은 앞다퉈 이 사건을 ‘화성 연쇄실종사건’으로 명명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실종자들의 집은 수원, 안양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언론은 이들을 모두 화성 사람들로 보도하고 있다. 공개수사를 시작한 것이 오히려 불안과 혼란을 가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언론에 섭섭함을 표시했다. 그래서일까. 비봉면에 설치된 수사지휘본부 인근에는 인근 주민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플래카드에는 ‘화성 연쇄실종이란 표현을 쓰지 맙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수사현장에 기자들 접근 불허

공개수사가 시작되면서 경기청 2부장이 수사본부장으로 투입됐고, 수사본부도 금정 치안센터에서 군포경찰서로 옮겨졌다. 실종자들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화성경찰서, 수원 남·중부경찰서와 경기도경에도 별도의 수사팀이 꾸려졌다. 한마디로 수사의 ‘격’이 높아진 것. 15일에는 이례적으로 경찰청장까지 찾아와 조속한 해결을 당부하고 돌아갔다. 인력과 장비도 계속 늘었다. 수사 초기 3마리로 시작된 탐색견은 최근 9마리까지 늘었다. 서울청 소속이던 탐색견들이 경기청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지원수색을 전담할 전경도 두 배 늘었다.

공개수사 14일째인 23일, 수색을 전담하는 비봉지휘본부에는 하루 종일 1000여 명의 전경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마을 주민의 수(2000명 정도)가 절반이나 더 늘어난 셈이 됐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정모(53) 씨는 “경찰들이 많아지니까 여기 주민들이야 덜 불안해서 좋지만 없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찾을 수나 있으려나. 자꾸 화성사건이 생각나서 더 무섭네요”라고 말했다. 수사팀 관계자들은 명함을 내밀며 말을 붙이는 기자의 손을 한사코 뿌리쳤다. 수색팀에 있는 한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같은 동네에서 3명이나 한꺼번에 없어졌으니 단순 실종사건이라고 볼 수도 없잖아요. 아침에 밥 먹고 나가서 하루 종일 수색하고 점심밥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닥치는 대로 먹어요. 해가 질 때쯤에야 들어오는데 정말 죽을 맛이에요.”

그러나 아직까지 그럴듯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눈길 가는 제보 하나 접수된 것이 없다. 범죄에 의한 실종인지 단순 실종인지도 정확지 않다. 그러다 보니 23일 이후에는 언론 보도도 사실상 끊긴 상태다. 한 경찰 관계자는 “기자들도 쓸 게 없죠. 수사가 잘됐으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자들을 모아놓고 얘기했을 거예요. 브리핑을 요구하던 기자들도 요즘에는 조용합니다. 서로 사정을 다 아니까요”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수사본부가 차려진 군포경찰서에는 살기마저 감지될 정도다.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기자들과 수사경찰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사본부에 들어가려던 취재진을 막아선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빨리 사건을 해결하고 수사를 종결하기 위해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 내에 홍보실을 마련했다. 4명의 전담 수사관도 배치됐다. 수사와 언론보도 사이의 혼선을 애초에 막겠다는 취지다. 이로써 홍보실을 통하지 않는 기자들의 ‘사적’인 취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단서는 없고 취재도 어렵다 보니 기자들의 고민도 늘고 있다. 게다가 수사본부가 있는 군포경찰서와 경기지방경찰청, 화성경찰서, 비봉지휘본부, 수원 남·중부경찰서 등 수사가 진행되는 현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

비봉지휘본부 인근에서 만난 한 기자는 “아침에는 지방청에서 브리핑 챙기고, 바로 군포 수사본부와 수색이 이뤄지는 비봉지휘본부를 돌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가요. 2주일이 넘어가니 슬슬 지쳐가네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할 말은 아니지만 차라리 사체라도 발견되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어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간동아 2007.02.06 572호 (p40~41)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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