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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茶人기행|서산대사

산골 물 달과 함께 길어 차 달이네

산골 물 달과 함께 길어 차 달이네

산골 물 달과 함께 길어 차 달이네

해남 대흥사 전경.

서산대사는 왜 제자인 유정(사명당)과 처영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대흥사에 보관하라고 유언했을까. 그의 말대로 대흥사가 ‘만세토록 훼손되지 않을 자리’여서 그랬을까.

대흥사 부도들은 경내 초입 오른쪽 산자락에 있다.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부도도 수십 기의 그 부도들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부도란 붓다의 한역(漢譯)이다. 비슷한 한자음을 차용한 말로 원래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조형물인데, 중국과 우리나라는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곳도 부도 혹은 사리탑이라고 부른다.

청허당(淸虛堂)이라고 음각된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 왼편 바로 뒤에 초의선사 부도가 있다는 것이 나그네에게는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다승이었던 두 분이 사후에도 차 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서산대사는 ‘승려의 일생은 차 달여 조주(趙州)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조주란 조주의 가풍, 즉 조주선(趙州禪)을 말한다. 서산대사가 살아 생전에 다선일여 경지를 읊조렸던 다시(茶詩)다.

산골 물 달과 함께 길어 차 달이네

서산대사 부도와 초의선사 부도.

낮에는 차 한 잔 하고/ 밤이 되면 잠 한숨 하고/ 푸른 산 흰 구름/ 더불어 무생사(無生死)를 말함이여.

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이고 서산대사는 별호다. 평안도 안주 출신으로 아명은 운학이었다. 9세 때 어머니를, 이듬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고아가 된다. 총명한 운학은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을 따라 서울로 와 성균관에 입학해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힌다. 그러나 과거에 낙방, 친구들과 지리산을 여행하던 중 영관대사의 설법을 듣고 법열에 빠져 산중 절에 기거하며 여러 대승경전을 읽어 마침내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한다.



임진왜란 승병장 … 생전에 조주禪 가풍 추구

이후 명종 4년에 승과에 급제한 뒤 선교양종판사가 된다. 그러나 대사는 선승의 길을 걷고자 승직을 버리고 금강산, 두륜산,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에 있는 절로 찾아가 보임에 힘쓰고 제자들을 가르친다. 이때 대사는 불교 중흥을 위해 선과 교를 제도적으로 통합하고자 ‘선은 부처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 말씀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한때 정여립 모반사건 연루 혐의로 투옥되었으나 무고임이 밝혀져 석방되는데, 선조가 그의 인품을 흠모하여 손수 그린 묵죽 한 폭을 하사하기도 했다.

이에 대사는 ‘경차선조대왕어사묵죽시운(敬次宣祖大王御賜墨竹詩韻)’이라는 시를 올렸고, 선조 또한 시 한 수로 화답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면서 신하를 묘향산으로 보내 나라의 위급함을 대사에게 알렸다. 대사는 전국의 절에 격문을 돌려 승려들이 구국에 나서도록 했다. 싸움에 나선 대사와 제자들은 명군과 함께 평양을 탈환했다.

이에 선조는 대사에게 팔도도총섭이라는 직함을 내렸으나 대사는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제자 사명에게 물려준다. 대사는 묘향산으로 물러나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을 꺼내어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는 시를 적고는 가부좌를 한 채 열반에 들었다. 열반에 들기 전 묘향산에서 지은 듯한 이 다시가 대사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스님 몇 명 있어/ 내 암자 앞에 집 지었구나/ 새벽종에 함께 일어나고/ 저녁 북에 함께 잠든다/ 산골 물 달과 함께 길어/ 차 달이니 푸른 연기 나고/ 염불과 참선일세.

둥근 달은 초저녁의 산골 물에도 떠 있고, 대사는 그 물을 달과 함께 길어와 차를 달여 마시고는 염불과 참선에 들고 있다. 염불의 구절은 부처님 말씀일 것이고, 참선은 부처님 마음을 응시하는 일일 것이다. 이 다시 속의 산골 물에 비친 둥근 달은 대사에게는 조주선, 즉 화두일 터다.

☞ 가는 길

전남 해남읍에서 대흥사까지의 거리는 12km이고, 827번 지방도로를 타고 직진하면 절에 이른다. 해남읍에서 대흥사 가는 버스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5.11.29 512호 (p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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