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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부 태만함은 범죄 수준”

카트리나 늑장 대처·이라크전 미군 희생·빈곤층 문제 등 야당으로부터 ‘뭇매’

  • 워싱턴=선대인/ 통신원 battiman@hanmail.net

“부시 정부 태만함은 범죄 수준”

“지난 대선이 지금 치러졌더라면….”

요즘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국정운영 리더십이 한계상황에 봉착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탓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처로 멀어지던 민심은 최근의 ‘리크(누설) 게이트’ 등으로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 해리엇 마이어스가 반대여론에 밀려 자진 사퇴하는 일도 생겼다. 이라크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수가 2000명을 넘어서면서 미국 내 반전여론 또한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업무 수행 지지율은 39%까지 떨어졌다.

케리·에드워즈 의원, 강연회서 맹비난

여당의 실책이 야당의 강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정치적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와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비록 지난 대선에서 낙선하기는 했으나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과 함께 여전히 2008년 대선에 나설 유력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 특히 에드워즈 의원은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 의원을 제치고 미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대선주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케리와 에드워즈 의원의 비판을 들어보면 현 정권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케리 의원의 비판. 그는 11월1일 케네디스쿨 초청 강연에서 부시 행정부의 정책 실책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전방위적 비판을 퍼부었다. 그는 “건강보험이 20년 후면 파산될 지경인데도 행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현 행정부는 범죄 수준으로 태만한(criminally negligent) 정부”라고 비난했다. 또 “부시 행정부는 종교와 이념에만 기댈 뿐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정책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며 “이 정부의 무대책과 잘못된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지금 부시 대통령 등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이 실행하고 있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며 “예수가 우리 아이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빼앗고 메디 케이드(미 건강보험 제도 중 하나)의 재정을 축내 이 나라의 가장 부유한 사람에게 주라고 가르쳤더냐”고 반문했다.

케리 의원은 또 “이 정부의 외교정책도 너덜너덜해지고 있다”고 화제를 바꾼 뒤 북한 문제와 관련, “온갖 소동을 다 벌이더니 결국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대북 정책 상황으로 돌아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전쟁 문제와 관련, “나는 ‘서둘지 마라. 시간을 갖고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먼저 공고히 하라’고 주문했는데 부시 행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계속 경고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른 속도로 일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부시가 정책 노선을 바꿀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절대 안 바꾼다”며 “이런 상태라면 내년에는 (양당 간에)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년 중간선거에 대해 “현재 같은 여건이라면 우리는 하원을 되찾을 것이며 상원도 되찾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리 의원보다 일주일 정도 앞서 케네디스쿨을 방문했던 에드워즈 의원도 부시 비판에 열을 올렸다. 그는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지적하며 부시 행정부의 무책임을 공격했다.

에드워즈 의원은 “미국민의 3700만명이 빈곤층”이라며 “부시 행정부는 이들이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교육하고 건강보험료를 내기 위해 일을 두 개, 세 개씩 하고 있다”며 “부시 행정부는 늘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들 ‘워킹 푸어(working poor)’들에게는 좋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지금 세계 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번영한 이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를 주시하며 미국의 진정한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세계 각국에 (리더십 대신) 완력(muscle)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한국의 야당처럼 여권의 실책에 매서운 공격을 가했지만 이들의 행태는 두 가지 점에서 한국 정치권과는 사뭇 달랐다. 먼저 비판을 하더라도 구체적인 정책에 관해 비판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정책 대안 제시 측면서 우리 정치권과 차이

“미국은 석유 때문에 또 다른 사악한 중동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문제엔 눈감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케리 의원의 답변이 이를 잘 보여준 예였다. 그는 이에 대해 “미국은 석유의 60%를 사우디에 의존하고 있어 오랫동안 사우디에 강하게 대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 같은 문제는 일본이나 독일 등이 하듯 새로운 대안에너지를 개발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 1갤런의 가솔린으로 200마일밖에 못 가지만 바이오 에너지와 가솔린을 혼합한 에너지를 쓰면 500마일을 갈 수 있다”며 “우리(민주당)가 정권을 잡아 에너지 소비 포트폴리오를 바꾸면 미국의 대(對)사우디 정책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정책의 문제를 에너지 및 환경 정책과 관련지어 정책적 대안을 펼쳐보인 것이다. 실제로 케리 의원은 “우리가 권력을 잃었으므로 표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했을 정도다.

말로만 민생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다. 에드워즈 의원의 경우 “미국 빈곤층의 현실을 알기 위해 3년 동안 전국 곳곳의 빈곤층과 싱글 맘(single-mom)들을 만나고 다녔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각 당의 소장파 의원들도 하지 않는 일을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사람이 몸소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비교해보자. 세간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한 교수의 발언을 둘러싸고 여야가 격렬한 이념논쟁을 벌였다.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후보들은 앞다투어 출판기념회를 열고, ‘청계천 프로젝트’ 등 이벤트를 벌인다. 주거, 교육, 취업, 노후 문제 등 절절한 삶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한국의 정치인이나 정당은 이들 문제를 정책 의제로 다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노력은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공화당)는 최근 케네디스쿨 주최 포럼에서 한국 정치권이 귀담아들어야 할 만한 발언을 했다.

“내가 공화당 소속이든 민주당 소속이든, 우파든 좌파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왜 공화당 소속이면서 메디케이드(정부 지원)확대 등 민주당의 정책 노선과 유사한 정책을 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었다.



주간동아 2005.11.15 510호 (p50~51)

워싱턴=선대인/ 통신원 batti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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