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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禪 이야기

돈오(敦悟)사상 창시한 혜능 스님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돈오(敦悟)사상 창시한 혜능 스님

중국 선종의 6조인 혜능(慧能·638~713) 스님은 중국 불교사에서 석가모니와 대등한 반열에 선 생불(生佛)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공자, 노자, 장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사상가이기도 하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스님은 세 살 때 부친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나무장사로 홀어머니를 모신 효심 깊은 나무꾼이었다. 비록 배움은 짧아도 모친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불자였다. 산속에서 나무를 하다가도 절에서 흘러나오는 출가사문들의 구성진 염불 소리가 들려올 때면 불쑥불쑥 동경심이 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터에서 나무를 팔다 탁발승의 독송 한마디에 크게 깨친다.

“어디에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

“죄송하지만, 길손께서 외우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금강경이라는 불경이오.”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하북 황매현 홍인 스님께 배웠습니다.”

남다른 효자였던 혜능 스님의 출가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 사연이 애절하여 후대의 여러 기록에선 다소 과장되고 신비화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스님은 노모와 눈물로 이별한 뒤 법을 구하고자 홍인 스님을 찾아 마침내 출가하기에 이른다.

그는 절에서 좌선을 하거나 경전을 공부한 게 아니라 8개월 동안 방아 찧는 노역만 했다. 그러다 깨달음의 시를 읊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제자들은 5조 홍인 스님의 법은 학식과 수행이 훌륭한 신수라는 스님에게 전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깨달음의 시를 적어 오라는 큰스님의 말에 신수 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낸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맑은 거울이네.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때 묻지 않도록 하세.’

그런데 이 시를 혜능 스님이 방앗간에서 듣자마자 다음과 같이 고쳐버린 것이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요, 거울 또한 거울이 아니라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서 티끌이 일어나랴.’

혜능 스님은 이전의 좌선수행이라는 불교 수행에서 벗어나 직관에 바탕을 둔 ‘돈오(敦悟)’ 사상의 창시자다. ‘금강경’ 독경 소리에 깨달은 자신의 경험에 바탕해, 수행과 깨달음을 분리하는 이원적(二元的) 관점을 무너뜨렸다. 어떤 특정한 방식의 수행을 고집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입장에 머무는 것으로서 불교의 기본 철학인 불이(不二)나 중도(中道)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도 달마 스님이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이지만, 혜능 스님은 외래 종교를 중국화해 중국선(中國禪)에서 새로운 선문(禪門)을 연 개조(開祖)라 할 수 있다. 그의 선사상은 이후 중국을 위시해 한국이나 일본으로 전파된 선불교의 토대가 됐다. 특히 임제종(臨濟宗)의 간화선(看話禪)으로 계승된다. 따라서 혜능의 선(禪)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중국선을 이해하는 길잡이요 지름길이다.



주간동아 2005.11.15 510호 (p45~45)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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