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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종식 ‘베를린 필’ 민주 和音 들고 방한

카라얀 이후 지휘자 단원 선거로 선출 … 현 래틀 체제서 권위적 분위기 완전히 사라져

  •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 alephia@hotmail.com

독재 종식 ‘베를린 필’ 민주 和音 들고 방한

독재 종식 ‘베를린 필’ 민주 和音 들고 방한

베를린 필 역대 최연소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

클래식에 문외한일지라도 ‘카라얀’이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이름은 20세기 후반 전 세계 클래식계를 호령한 카리스마의 대명사였다. 1984년 그의 세종문화회관 내한공연은 전 국민적 이슈였다. 문화부 기자들은 물론 사회부 기자까지 가세했던 취재경쟁으로 그는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를 남겼다.

당시 카라얀이 이끌고 왔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5년 만에 다시 내한공연을 한다(11월7~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거의 사반세기 만에 다시 찾아오는 그들은 그러나 모양새와 성격이 많이 달라져 있다. 우리가 한국 땅에서 보았던 베를린 필은 지휘자 1인 독재체제의 종언을 알리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변화는 그로부터 6년 뒤 카라얀이 서거한 뒤 일어났다.

이전 지휘자들 카리스마 갖춘 독재형

1882년 5월 54명의 단원으로 출범한 베를린 필은 대단히 자치적인 단체였다. 단원들이 비밀투표로 상임지휘자를 선출하는 것은 물론 연주 레퍼토리까지 선정할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정관에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정관은 창단되는 그 순간부터 10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유는 베를린 필을 거쳐간 상임지휘자가 여섯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초대 상임지휘자 한스 폰 뷜로를 필두로 아르투르 니키슈,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그리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이르기까지 모두 투표가 아닌 전임자의 지명 또는 비상시국에 지휘봉을 넘겨받아 하나같이 종신제를 요구할 만큼 대단한 카리스마와 독재를 폈기 때문이다.

1882년에 작성된 오케스트라 정관은 1989년 10월 처음으로 제 기능을 발휘했다. 카라얀의 서거로 난생처음 상임지휘자 투표권을 쥐게 된 베를린 필 단원들은 익숙지 못한 민주적 분위기로 극심한 의견대립을 보였다. 레바인, 바렌보임, 마젤 등 쟁쟁한 거장들이 거론되었지만 정작 뚜껑이 열렸을 때 결정된 인물은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아바도의 베를린 필 입성은 베를린 필뿐 아니라 전 세계 오케스트라계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지휘자의 독재에 의해 좌우되던 오케스트라의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변화한 것,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세대교체를 의미했다. 상임지휘자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고 고백한 아바도는 취임 후 단원들에게 자신을 ‘미스터’가 아닌 ‘클라우디오’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지휘자 기침소리에도 껌뻑 기가 죽던 단원들이 아바도와 함께 연주 해석을 두고 대등하게 토론을 벌일 만큼 베를린 필은 민주적으로 변화했다.

예산을 쥐고 있는 베를린 시의 간섭과 프로그램 선정에 따른 각종 불화가 불거지긴 했지만 노후한 베를린 필에 젊은 피를 수혈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아바도의 공을 인정한다. 아바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50명이 넘는 젊은 단원들이 새로 입단했고 그들 가운데는 에마뉘엘 파후드(플루트) 같은 수준 높은 솔리스트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한번 입성하면 평생 눌러앉는 자리로 여겨졌던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직을 아바도가 박차고 나온 것은 결과적으로 대단히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독재 종식 ‘베를린 필’ 민주 和音 들고 방한

베를린 필은 재단법인화와 민주적 운영 등으로 또 다른 명성을 얻고 있다.

2002년, 아바도는 수많은 거장들이 욕심 내는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1년, 베를린 필 단원들은 생각보다 일찍 두 번째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이름이 다시 거명되었지만 베를린 필은 역시 예측불허의 젊은 미래를 선택했다. 이번에 베를린 필을 이끌고 내한하는 사이먼 래틀 경을 뽑은 것이다. 베를린 필 역대 최연소(44) 상임지휘자로 기록된 래틀의 이전 경력은 버밍엄 시립교향악단 상임직이 전부다. 그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바렌보임이 시카고 심포니, 파리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 유수 단체의 상임지휘직을 거친 것에 비하면 정말 ‘미천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1980년 불과 25세의 나이로 버밍엄에 들어가 98년까지 이룩한 래틀의 업적은 바렌보임을 능가한다.

래틀은 영국의 일개 지방도시, 그것도 공업도시에 불과했던 버밍엄을 세계적 수준의 문화도시로 이끌어냈다. 무명의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은 래틀에 의해 런던 필, 런던 심포니와 어깨를 겨루는 일류 오케스트라가 되었고, 버밍엄 시는 래틀의 업적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 오케스트라만을 위한 전용 홀을 지어주었다. 래틀은 아바도가 고생스럽게 다져놓은 민주화 발판 위에서 베를린 필을 더욱 합리적이고 세련되게 운영했다. 아바도를 좌절시켰던 시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래틀은 재단 법인화를 통해 일거에 퇴치해버렸다. 래틀의 지휘봉 아래 베를린 필의 연주는 더욱 안정되고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 필의 내한은 한-중-일과 대만의 4개국 6개 도시를 방문하는 아시아 순회공연 중의 하나다. 그들로서도 대단히 오랜만의 행보인지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한 방송 카메라를 대동했다. “베를린 필의 가장 위대한 전통은 그 어떤 진보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해나가는 것이다”라는 베를린 필 악장의 발언처럼, 베를린 필은 충분히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주체가 될 수 있음에도 이를 타파하고 진보의 길을 선택하는 선례를 보이고 있다. 전통은 고인 물에서가 아닌 흐르는 물에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5.11.15 510호 (p44~45)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 alephi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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