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5

2005.05.17

F1 7차례 제패 ‘총알탄 사나이’

최연소 세계선수권 2연패 등 살아 있는 ‘전설’ … 지진해일 구호에 100억 쾌척 ‘기부도 챔피언급’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입력2005-05-12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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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4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오른 5명의 스포츠 스타 가운데 독일의 미하엘 슈마허(36)가 눈에 띈다. 1995년 역대 최연소 챔피언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F1을 7차례나 제패한 슈마허는 2004년 8937만 달러(약 900억원)를 벌어들여 골프 스타 타이거 우즈에 이어 스포츠 스타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수입을 올렸다.

    슈마허는 갑부 스포츠 스타지만, 여느 부자들과는 다르다. 슈마허는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스타다. 동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 구호에 1000만 달러(약 100억원)를 쾌척,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개인 기부로는 최고액이다. 지난 10년간 유네스코 대사로 제3세계 어린이 구호 활동에 앞장서온 그는 2004년 11월에 어린이 자선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기부했고, 동유럽이 물난리를 겪었던 2002년에는 100만 유로를 내놓았다. 또 최근에는 “사후에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까지 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레이서로 두각

    그는 “스포츠에서 그렇듯이 사회생활에서도 남을 돕는 팀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통 큰’ 슈마허지만, 자식에게는 ‘짠돌이’다.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딸 마리아(8)와 아들 믹(6)에게는 일주일에 단 2유로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마허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부자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슈마허는 어떤 드라이버인가? 그를 빼놓고는 F1을 말할 수 없다. 경이적인 드라이빙 기술, 코스 전체를 꿰뚫어보는 판단력, 어떤 차를 몰더라도 최고 속도를 내는 천재성,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 그리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천재적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승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 그는 자동차 경주에서 전무후무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슈마허의 아버지는 “슈마허는 걸음마도 배우기 전부터 수영을 아주 잘하는 아기였습니다. 처음 카트를 탔을 때는 내가 줄로 묶어 끌고 다녔는데, 너무 재미있어해서 엔진을 단 카트를 선물했더니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좋아했습니다. 슈마허가 네 살 때의 얘깁니다”며 슈마허가 독일의 만하임 케어핀에서 카트와 첫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의 아버지의 회상대로 슈마허가 네 살 때 받은 엔진 달린 카트는 그가 장차 세계 모터 스포츠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80년, 슈마허는 벨기에 니벨레스에서 열린 세계 카트 선수권 대회를 관전하면서 당시 최고의 레이서였던 아이르톤 세나의 모습을 보고 레이서가 되기로 결심한다. 84년, 열다섯 살의 나이로 독일 주니어 카트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87년에는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한다. 그는 독일의 포뮬러 포드에 입문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카 레이싱의 길로 접어든다. 몇몇 사람이 대회마다 우승을 거두는 젊고 가능성 있는 그에게 관심을 보여, 슈마허는 좋은 조건으로 스폰서를 얻게 된다. 선수로서 풀 시리즈를 뛴 첫해에는 10차례의 레이스에서 9승을 따내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린다.

    F3 진출 첫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카를 벤들링거와 하인츠 프렌첸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슈마허의 적수가 되진 못했다. 슈마허는 이듬해에 시리즈를 모두 평정했다. 이들은 훗날 F1 드라이버로 진출해서도 슈마허에게 또다시 패배를 맛보게 된다. 베버는 슈마허를 F1으로 가는 통상적 관문인 F3000에 진출시키지 않는 대신, 메르세데스 주니어 팀에 배치하여 소버(Sauber)팀의 스포츠카를 몰고 F3 시절의 라이벌들과 경쟁하도록 했다. 여기서 슈마허는 니어스 파크에게서 레이스카 운전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 특히 이 기간에 훗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부드러운 스타일의 드라이빙 기술을 익힌다.

    경쟁자 없이 ‘나 홀로 독주’



    94년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에 오른 슈마허는 95년에도 또 한 번 챔피언에 올라 세계선수권 2연패를 이룬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다. 96년 슈마허는 페라리 팀으로 이적했다. 당시 정상권 선수였던 아이르톤 세나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슈마허는 F1에서 독보적 위치를 굳힌다. 화려한 명성을 증명해주듯 97년에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97년 고액 소득 운동선수 40인 중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1위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었다.

    슈마허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페라리의 360 모데나다. 한국에서 열린 수입차 모터쇼에 선보이기도 한 페라리 360 모데나는 3600cc, 400마력의 엔진에 최고시속 295km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4.5초다. 주문 계약한 뒤 1년을 기다려야 출고될 정도로 인기 있는 모델이다. 독일 출신 슈마허에게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인 메르세데스 팀이 현재의 페라리 팀보다도 고액을 제안하고 있지만, 슈마허는 페라리에서 오랫동안 달성하지 못한 드라이버 챔피언 획득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적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슈마허는 단순히 서킷을 일주하는 속도뿐 아니라 기후, 코스의 상황, 자신과 상대 차량의 상태를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 등 모든 것이 다른 드라이버를 훨씬 능가한다. 아이르톤 세나의 사망 이후 강력한 경쟁자가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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