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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들의 귀여운 변심

  • 최 윤 희 ㅣ카피라이터

우리들의 귀여운 변심

우리들의 귀여운 변심

최윤희

사람의 마음은 왜 그렇게 이랬다 저랬다 할까. 요즘 유행어처럼 정말 그때그때 다르다.

결혼 같은 걸 뭐 하러 번잡스럽게 하느냐며 평생 독신을 고집하던 후배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시침 뚝 떼고 나한테 청첩장을 내미는 것이다. 아니, 웬 청첩장? 놀라서 묻는 나에게 그녀는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결혼, 그거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예요. 혼자 살아봐야 별것도 없는데 뭐 하러 궁상맞게 그러고 살아요? 성질도 꼬장꼬장하게 보이고 사는 것도 그렇고, 오해받을 소지가 엄청 많던데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비웃어주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렇게 작정하고 나니 갑자기 인생이 흥미롭게 변했어?”

“어머, 어쩜 그렇게 제 마음을 딱 맞히세요?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도 그랬나 봐요.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러니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그래서 일단 결혼하기로 했답니다. 한 다음에 후회해도 늦진 않겠죠?”

사람들의 마음은 그때그때 다르다!



“결혼 NO” “아이 NO” 하던 사람들이 마음 바꾼 까닭은 …

아이를 절대 낳지 않겠다던 광고회사 후배 카피라이터가 있었다. 그는 “이 힘든 세상, 어른들 살아가기도 벅찬데 왜 아이까지 낳아서 비극을 대물림하느냐. 더구나 나 같은 ‘불량종’은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지구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큰소리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를 둘씩이나 낳은 죄(?)가 있어선지 그가 근사하고 특별해 보여 오이장아찌처럼 쪼그라들곤 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얼마 전 그를 모임에서 만났다. 나는 가장 먼저 그의 ‘해설’이 듣고 싶었다. 그의 해설인지 변명인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불량종 인간이지만 아내가 ‘초우량종’ 인간이라 둘이 합치면 최소한 우량종은 나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구가 힘들면 힘들수록 우량종 인간이 자꾸 태어나서 지구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우리들의 임무가 아니겠는가.”

이제 그는 아이를 한 명이 아니라 생기는 대로 낳겠다는 태세였다. 아이 낳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퍼포먼스라고까지 치켜세웠다.

맙소사, 사람들의 마음은 그때그때 다르다!

나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하루 20~30통씩 상담 e메일을 받는다. 엄마 잔소리가 미워 죽겠다는 초등학생부터 이야기 상대가 필요하다는 할아버지까지. 얼마 전 39세의 직장여성이 편지를 보냈다. 그는 나에게 남편 흉을 봤다. “남편은 무책임하게 회사를 때려치우고, 걸핏하면 잔소리를 해대는 아주 ‘쪼잔한’ 성격의 사람이다. …이 인간, 이 웬수를 어쩌면 좋으냐. …당장이라도 헤어지고 싶다. 하지만 열한 살 아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대략 이런 사연이었다.

나는 그의 처지가 되어 한참을 고민하다 이런 답장을 보냈다. “헤어진다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성급하게 이혼부터 생각하지 말고 일단 남편 처지에서 생각해봐라. 부부는 ‘좌지우지’가 아니라 ‘역지사지’해야 한다. 그리고 D-day를 잡아 핑크빛 무드를 만든 뒤 남편과 솔직하게 대화해라. 서로 고쳐가면서 살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며칠 후 답장이 왔다. “제가 그땐 흥분해서 이혼까지 생각했는데요. 알고 보면 우리 남편만큼 착한 사람도 없어요. 그냥 사랑하고 살아야지요! 호호^^*”

내 친구들도 부부싸움만 하면 당장 죽을 것처럼 전화를 한다. “야,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없냐?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칵 죽어버리고 싶어.” 그러나 며칠 안 돼서 헤헤 웃으며 전화를 한다. “나 지금 남편이랑 설악산에 와 있어. 설경이 기막히다 못해 쥑여준다. 너도 남편이랑 여행 한번 떠나라.” 자랑 수준을 넘어 충고까지 하면서 약을 올린다.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다 라디오를 들었는데 재미있는 코너가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일종의 화풀이 방이다. 어떤 여대생이 전화를 해서 친구 흉을 봤다. 외롭게 지내는 게 딱해 보여 남자 한 명을 소개해주었는데 친구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화를 냈다고 한다. “너, 나를 뭘로 보는 거니? 내 수준이 고작 그 정도야? 어쩜 그렇게 새까만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니?” 근데 이러던 친구가 어느 날부턴가 그 남자랑 죽고 못 산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얼굴 까만 남자가 뚝심도 좋댄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연 선탠’하고 나왔으니 돈도 벌었지 뭐냐? 매력도 넘치고 섹쉬하지 않니? 후후.” 그래서 얄미워 죽겠다고 친구 흉을 본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 사람들의 귀여운 모순이여.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140~140)

최 윤 희 ㅣ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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