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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교양 돋보기ㅣ‘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사건의 연속’과 ‘모험’ 팬터지 선구자 … 어릴 때 한 번·어른 돼서 또 한 번 읽어야 할 동화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나뭇가지 위의 체셔 고양이는 앨리스 앞에 나타나 미소 짓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한 장면.

처음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은 게 언제였을까?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이었을 게다. 다시 이 책과 마주친 것은 10년 전 베를린의 길거리. 좌판에 널린 헌 책들 틈에서 우연히 루이스 캐럴 전집을 발견했다. 별 생각 없이 이리저리 넘겨보다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주 가끔은 일생에 반드시 두 번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어릴 때에 한 번, 자라서 또 한 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그런 책이다.

눈부신 황금빛 오후

“눈부신 황금빛 오후에 우리는 나른하게 미끄러져 가네. 서툰(little) 솜씨로 노를 저으려는 부산한 작은(little) 팔들. 놀라운 곳으로 가자며 재촉하는 작은(little) 손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시(序詩) 중)

앨리스의 환상은 1862년 7월4일 ‘아이시스’라는 영국 런던 템스 강의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 위에서 탄생했다. 루이스 캐럴은 그 빛나는 날의 기억을 시로 적어 남겼다. 시 속에서 ‘리틀’이 세 번 반복되는 것은 보트 위에 탄 것이 리델(Liddell) 가문의 세 꼬마 아가씨라는 것을 암시한다.

“어느덧 상상의 샘물이 마르고, 이야깃거리도 사라져… ‘나머지는 다음에’라고 하면, 아이들은 행복하게 외쳐댄다. ‘지금이 다음인 걸요!’”(서시)



구멍 속의 세계로 들어간 앨리스의 모험담도 꼬마들의 성화에 못 이겨 즉흥적으로 만든 모양이다.

“그날 나는 내 주인공을 토끼 굴로 들여보냄으로써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 해도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직 아무 생각도 없었다.”(서시)

그날 이야기는 특히 재미있었나 보다.

“평소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그날 소풍을 아직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지요. 게다가 바로 그 다음날부터 나는 그것들을 써달라고 아저씨를 무척 조르기 시작했거든요.”

동화 주인공의 모델인 진짜 앨리스의 말이다. 2년 뒤인 1864년 크리스마스에 그녀는 캐럴로부터 글로 씌어진 그 이야기를 선물받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본이다. 캐럴 이전까지 동화는 철없는 아이들에게 어른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캐럴 이후에 비로소 아이들은 자기들 세계를 갖게 되었다.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몽환적인 이야기꾼이면서 동시에 논리학자였던 루이스 캐럴.

캐럴과 도지슨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1832~98). 영국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교수로, 수학에 관한 몇 권의 저서를 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나중에 꾸며낸 이야기로 드러났지만, 이 가짜 일화는 동화 작가 캐럴과 수학자 도지슨의 이중성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 앨리스의 모험을 읽은 빅토리아 여왕이 루이스 캐럴에게 다음 저서를 보내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여왕이 받아본 이 동화작가의 후속작은 ‘행렬의 기초론’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국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도지슨은 부제(副祭)서품을 받은 성직자였다. 당시는 빅토리아 시대로, 보수적 왕조의 모럴로 무장한 그는 공공연히 소녀애를 드러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사내애들은 빼고).”

카메라를 좋아하여 가끔은 소녀들의 옷을 벗겨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리델 가문에서는 나중에 갑자기 캐럴과 앨리스의 만남을 거절하는데, 그 이유에 관한 설이 분분하다. 그중에는 캐럴이 앨리스의 나체 사진을 찍었기 때문일 거라는 추측도 있다.

도지슨은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같은 대학 학장(앨리스의 아버지 리델)의 자유주의적 개혁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보수주의자가 보트 위에서는 갑자기 무정부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가 캐럴이 되어 들려주는 동화 속에서 의미는 사라지고, 논리는 뒤집히고, 법칙은 물구나무선다.

루이스 캐럴 연구자 장 가텐노가 “성직자와 어린 소녀들을 사랑하는 남자. 팬터지와 지루한 수학교수. 몽환적인 이야기꾼과 논리학자. 이 정반대되는 성향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한 것처럼 캐럴을 이해하는 것은 곧 이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다.

거울 뒤의 앨리스

그 해답을 속편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7년 뒤에 발표된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1)에서 앨리스는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거울은 좌와 우를 뒤바꿔놓는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혹시 거울에 비쳐 뒤바뀐 논리의 세계가 아닐까? 앨리스의 이야기는 오늘날 환상 소설의 선구로 여겨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앨리스의 그것은 가령 ‘해리 포터’의 마술적 팬터지와는 다르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의미를 뒤집어놓음으로써 만들어낸 논리적 팬터지이기 때문이다.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캐럴리 쓴 앨리스 연작 동화의 모델이 된 앨리스 플레장스 리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도 부조리한 인물들이 나온다. 예컨대 주정뱅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것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주정뱅이. 생텍쥐페리는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이상한 어른들의 부조리를 풍자한다. 하지만 앨리스의 세계에는 어른과 아이의 대립이 없다. 나무 위의 체셔 고양이가 말한다.

“너와 나를 포함해서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미쳤음에 틀림없어.”

따지는 앨리스에게 체셔 고양이는 말한다.

“넌 틀림없이 미쳤어.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올 리가 없지.”

‘도플갱어’라 하던가? 거울 속의 나라는 이성의 세계와 나란히 존재하는 부조리의 세계다. 캐럴의 팬터지가 보여주듯 부조리는 좌우가 뒤바뀐 합리성이고, 철학자들이 알아낸 것처럼 합리성은 부조리의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일 뿐이다. 캐럴에게 부조리는 풍자해야 할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외려 그것은 모든 합리적인 것이 솟아나는 원천과 같은 것이다. 캐럴의 찬미자 앙드레 브르통의 말이다.

“부조리한 것을 통해 정신은 그 어떤 어려움에서라도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놀이의 명인

캐럴의 책은 온갖 말놀이로 가득 차 있다. 생쥐가 말한다.

“내 이야기(tale)는 길고 슬픈 것이란다.”

앨리스는 이렇게 대꾸한다.

“당신 꼬리(tail)가 진짜 길기는 길군요. 그런데 왜 꼬리가 슬프다고 말하는 거죠?”

다음은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한 패러디. 가짜 거북이가 바다 학교의 과목을 소개한다.

“먼저 비틀기(reeling)와 뒤틀기(writhing)를 배우고.”

이는 일반 학교의 정규 과목인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를 뒤틀어놓은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말놀이에도 능했다.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부터가 벌써 자신과 어머니 이름의 철자를 바꾸어 만든 애너그램(anagram)이다. ‘거울 뒤의 앨리스’의 마지막에 붙인 헌시를 보자.

“맑은 하늘 아래 보트 하나가/ 천천히 꿈같이 떠가는/ 어느 7월의 저녁/ 세 아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그란 눈과 쫑긋한 귀를….”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우리의 삼행시처럼 각 행의 앞 자들을 따면 ‘Alice pleasance Liddell’이라는 이름이 된다. 이런 것을 ‘아크로스틱(akrostic)’이라고 한다.

캐럴이 발명한 말놀이도 있다. 그가 만든 ‘더블릿’이라는 놀이는 낱말의 철자를 하나씩 바꾸어서 목표한 낱말에 도달하는 게임이다. 가령 생쥐의 머리(head)를 꼬리(tail)로 바꿔보라. 이 마술의 비법은 이것이다. HEAD→heal→teal→tell→tall→TAIL.

다음은 캐럴 연구자 마틴 가드너가 내는 문제다. 원숭이(ape)를 한번 인간(man)으로 바꿔보라.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APE→apt→opt→oat→mat→MAN!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모험의 끝에 마침내 여왕 자리에 오른다. 이는 무슨 뜻일까? 이 변신의 비밀은 체스의 규칙에 있다. 장기의 졸(卒)에 해당하는 폰(pawn)은 앞으로 나아가 맨 마지막 칸에 이르면, 막강한 힘을 가진 퀸(queen)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거울 뒤의 세계는 거대한 체스 판이다. 여기서 하얀 색 폰이 된 앨리스는 열한 번 움직인 끝에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아예 체스의 기보(棋譜)를 작품의 줄거리로 삼은 것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제임스 조이스(1882~1941)가 ‘피네건의 경야(經夜)’(1939)에 도입한 무의식의 흐름 기법은 캐럴의 서술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한다. “누가 파이를 훔쳐갔을까?”라는 이상한 나라의 재판이 없었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1925)에 나오는 부조리한 상황이 나올 수 있었을까? 캐럴의 소녀애(少女愛)는 후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1955)에서 좀더 노골적으로 발전한다. 다다이즘의 무의미 시와 캐럴의 말놀이, 초현실주의와 캐럴의 팬터지 사이의 관련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이상한 나라의 역설, 무의미, 부조리에 깔린 철학적 깊이를 보여준 바 있다. ‘의미와 논리’라는 책에서 그는 앨리스를 소재로 삼아 스토아 학파의 존재론을 논한다. 스토아 학파에는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플라톤주의와는 다른 존재론이 들어 있다. 플라톤이 ‘존재’를 중시한다면, 스토아 학파는 ‘사건’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앨리스의 모험은 이 새로운 존재론을 문학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캐럴 연구자 마틴 가드너는 앨리스 2부작이 “10대가 되기 전에 읽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외려 10대야말로 캐럴의 동화를 읽기에 가장 부적합하지 않을까? 반쯤 어른이 된 청소년들은 그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보고 깔깔거리기에는 너무 늙었고, 그 역설, 무의미, 부조리의 바탕에 깔린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리다. 캐럴은 가장 비논리적인 어린이와 가장 논리적인 어른만이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인생은 꿈이런가?

토끼를 따라 구멍 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의 첫 번째 모험은 카드들이 덤벼드는 것으로 끝난다. 비명을 지르며 놀라서 몸을 뒤척이다가 언니 무릎 위에서 잠이 깬다. 꿈속의 카드는 자고 있던 얼굴에 떨어진 낙엽이었다. 거울 뒤로 들어간 두 번째 모험은 체스의 붉은 여왕을 붙잡고 흔드는 장면으로 끝난다. 붉은 여왕은 얼굴이 작아지고 눈동자가 커지더니 고양이가 된다. 꿈속의 붉은 여왕은 집에서 기르던 새끼 고양이였던 것이다. 꿈에서 돌아온 세계는 얼마나 현실적일까? 앨리스의 이름으로 된 아크로스틱 시는 이런 구절로 끝난다.

“꿈이 아니라면 인생이 무엇이겠는가?”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104~106)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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