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0

2004.11.18

얽히고 설킨 세 사령관 지휘력 이상없나

강정원·황영기·하영구 행장 학교·직장 선후배 사이 … 구조조정·위로부터의 입김 극복이 첫 ‘시험대’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11-11 1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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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얽히고 설킨 세 사령관 지휘력 이상없나

    3월 25일 우리금융 지주 회장 취임식장에 들어서고 있는 황영기 행장.

    11월1일, 국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의 새 행장이 동시에 취임식을 했다. 이를 계기로 시중 은행과 은행장들에게 유례없는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02년 7월, 통합 국민은행장 자리를 놓고 김상훈 당시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격돌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외환위기 전 행장 자리가 ‘낙하산용’이었고, 이후 4~5년간은 격렬한 구조조정으로 은행장이 정상적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행장 역할이 가능해진 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리딩 뱅크인 국민은행의 새 수장은 강정원 전 서울은행장, 씨티뱅크가 한미은행을 흡수 합병해 새롭게 문 연 한국씨티은행의 초대 행장은 하영구 전 한미은행장이다. 세간에서는 이 둘을 비롯해 올 3월, 삼성증권 사장에서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전격 변신한 황영기 우리은행장이 ‘은행권 제3의 빅뱅’을 주도하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1, 2차 빅뱅의 핵심이 각각 구조조정과 외형 성장이었다면 3차 빅뱅의 화두는 시장경쟁이다. 올해 취임한 세 은행장이 모두 외국계 은행 출신의 정통 뱅커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강정원, 황영기, 하영구 행장은 사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사이다. 경기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강행장과 하행장은 모두 씨티뱅크 서울지점에서 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함께 근무한 기간은 1981~83년. 이후 각기 다른 길을 가던 두 사람은 9월 국민은행장 추천위원회의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 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이 된 것이다.

    두 사람 중 먼저 제안을 받은 쪽은 하행장이었다. 당시 한미은행장으로서 ‘한미은행+씨티은행 서울지점 합병은행’인 한국씨티은행장으로 내정돼 있던 하행장은 “도의가 아니다”라며 이를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한국씨티은행이 아무리 다크호스라지만 국민은행장에 비하겠느냐. 첫 직장 선배인 강행장에 대한 후배로서의 배려라고 봐야 할 것”이라 말했다.

    강·황행장, 영국계 BTC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세가도



    하행장과의 인연이 30대 초반 잠시 잠깐이었다면 ‘소싯적’ 강행장의 진짜 라이벌은 황영기 우리은행장이었다. 강행장과 황행장은 83~89년 영국계 뱅커스트러스트그룹(BTC)에서 근무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세 가도를 달렸다. 황행장이 89년 4월 BTC 계열의 BT증권 도쿄지점 이사를 끝으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강행장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입사 후 황행장은 심기일전, 물 만난 고기처럼 승승장구했다. 회장비서실 재무팀 이사, 인사팀장을 거쳐 삼성전자 상무이사,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전무), 삼성투신운용 사장, 2001년에는 마침내 삼성증권 사장 자리에 올랐다.

    같은 시기 강행장도 착실히 경력을 쌓아갔다. BTC 한국 대표로 일하다 99년 도이치뱅크가 BTC를 합병하자 다시 그 합병은행의 한국 대표로 선임돼 일했다. 2000년 정부가 도이치뱅크 캐피털 파트너스와 서울은행 매각 협상을 시작하면서 강행장은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낙점’을 받아 서울은행장에 취임했다. 그의 취임을 두고 ‘서울은행 해외매각용’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강행장은 도이치뱅크와의 협상 결렬 후에도 살아남아 하나은행-서울은행 간 매각 협상이 마무리된 2002년 11월까지 행장 자리를 지켰다. 이후 법무법인 김&장 고문을 지냈지만 당시 삼성증권 사장으로서 삼성그룹 재무계열 서열 3위를 자랑하던 황행장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두 사람이 다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강행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하면서다. 이로써 강행장은 황행장의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에 일정한 몫을 하게 됐다.

    한편 황영기 행장과 하영구 행장은 서울대 무역학과(현 국제경제학과) 선후배 사이다. 금융계의 ‘서울대 무역학과 인맥’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붙은 ‘은행 전쟁’의 와중에 이들 세 행장은 각기 어떤 전략을 세워두고 있을까.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경우 역시 가장 큰 과제는 노조 통합으로 상징되는 국민은행-국민카드-주택은행 등 세 조직의 통합과 적정 수준의 구조조정이다. 강행장이 취임식 일성으로 “국민은행이 합병 이후 합병 효과를 낼 만한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시장의 지적이 있다”며 “1인당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은행은 정규직이 2만명, 비정규직이 8000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조직이다.

    실제로 강행장은 서울은행장 당시 노조와의 합의 아래 구조조정을 단행해 ‘합리적 개혁가로서 조직 쇄신에 최적의 인물’이라는 안팎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강행장에게는 무리한 일”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한 금융 전문가는 “강행장에 대해서는 ‘국민은행만한 덩치를 이끌어갈 만한 경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국민은행장은 실무 능력뿐 아니라 청와대,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등과 ‘게임’을 펼칠 줄도 알아야 한다. 홍콩과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주로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한 강행장이 그만한 적응력과 노련함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국책은행 연구원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강행장 별명이 ‘세븐일레븐’이다.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워커홀릭’일 뿐 아니라 소리소문 없이, 정말 조용하게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그것을 문제 삼는 사회가 더 이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금보험공사 출신의 한 지인이 강행장에 대해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제자리에만 있는 것 같은데, 잠시 눈을 돌렸다 다시 보면 저만치 앞서가 있다”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행장, 은행 주요 핵심 업무 두루 거쳐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한미은행장 취임 당시 ‘최초의 40대 은행장’으로 화제를 뿌렸다. 한 금융전문가는 “하행장은 현직 행장 중 그 누구보다 은행의 주요 핵심 업무를 다 해본 사람이다. 특히 소매금융 분야에 밝다. 이번 한미은행 인수전에서 씨티뱅크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도 하행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씨티은행의 현안이 씨티은행과 한미은행의 화학적 통합이라 할 때 씨티은행 출신으로 3년간 한미은행장을 역임했던 하행장보다 더 적합한 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행장은 강정원 행장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거대 조직’과의 문화 차이 때문에 고심할 필요도 없다. 노조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하행장은 마치 강행장의 취임사를 겨냥이라도 한 듯 “한국씨티은행에 구조조정은 없다”는 말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전국은행연합회의 모 임원은 “한미은행장 재직 시절 뚜렷한 특색을 찾기 어려웠다. 취임 전 외국계 은행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명성을 떨쳤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던 셈”이라며 “결국 씨티그룹 본사의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취임사 그대로 ‘한국적인 은행’으로 그 위상을 재정립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들보다 8개월 남짓 먼저 취임한 황영기 우리은행장의 경우, 취임 초기 기대를 모았던 데에 비하면 다소 주춤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 의견이다. 황행장은 취임 초 “CEO는 검투사다. 지면 죽는 검투사의 심정으로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할 것”이라는 말로 조직에 한껏 긴장을 불어넣기도 했으나 아직 성과는 크지 않다.

    한 금융계 인사는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이 합쳐진 우리은행은 전형적 연고주의가 판치는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 비해 황행장은 경력에서 알 수 있듯 서구식 사고와 합리주의가 몸에 밴 사람이다. 불협화음이 심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황행장은 취임 초기부터 인사에 있어 수많은 ‘시어머니’들의 ‘검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한 상태. 한 금융권 인사는 “은행 지분의 85%를 갖고 있는 것이 예금보험공사다. 그 상부 기관인 재경부, 그 이상의 권력 핵심부로부터도 간섭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황행장이 사석에서 ‘지점장 인사를 하는 데에도 걸리는 게 많다’며 힘겨움을 토로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행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인척인 한 직원을 고심 끝에 뉴욕 지사로 발령을 내기도 했다.

    노조의 시각도 차가운 편이다. 우리은행 노조집행부 인사는 “황행장은 무노조 정책을 밀어붙여온 삼성그룹 출신이다. 처음 우려했던 것만큼 반노조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에서 배운 제도, 행사 등을 우리은행에 심으려 하고 있다. 그중에는 ‘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는 것도 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황행장과 직원들 사이에 한가족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한 국책은행 연구원은 “그럼에도 황행장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조직을 바꾸려면 당연히 어려움이 따른다. 변화는 환영받기 힘들다. 그를 적정한 동기 부여를 통해 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리더십 아닌가. 지금은 두고 볼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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