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문화

왜 ‘불륜’에 흥분하고 빠져드나

‘진실한 사랑’ 목마른 현대인 역설적 심리 … 영화나 소설, 드라마 다양한 형태로 등장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왜 ‘불륜’에 흥분하고 빠져드나

왜 ‘불륜’에 흥분하고 빠져드나

‘불륜’ 상대를 천사의 포즈로 그린 영화 ‘빈집’의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한석규 주연의 새 영화 ‘주홍글씨’가 공개되자 변혁 감독은 “불륜 정도는 돼야 진실한 사랑을 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륜은 희생이 강요된 사랑이므로 이를 각오하고서라도 해보겠다면 이보다 더 진실한 사랑이 있겠는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말은 네티즌들과 영화 관객 사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 불륜에 대한 찬반이기도 했고, ‘주홍글씨’에 대한 상반된 해석이기도 했다. 변감독은 서울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나는 결코 불륜 예찬론자도, 불륜을 벌하는 계몽영화를 만든 감독도 아니다. 선악과를 먹고 싶어하는 심정과 그 사회적 금기를 깼을 때 개인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불륜이 가진 희생이라는 면에 관심 없는 것 같아 진실한 사랑이라 이야기한 것”이라며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을 던졌다.

한 명의 남자와 세 여자가 등장하는 ‘주홍글씨’는 사랑으로 엮어진 듯 보였던 관계들이 불륜 혹은 욕망으로 인해 깨져나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지독해지는가를 보여주는 심리극이다. 주인공들은 희생을 감내하고 불륜을 진실한 사랑으로 믿지만, “사랑하면 괜찮은 건가요?”라는 영화 속의 질문은 불륜이든 진실한 사랑이든, 그것은 결국 얼마나 허망한 토대에 세워지는가를 암시한다.

“불륜은 희생이 강요된 진실한 사랑”

변감독의 속내가 무엇이든, ‘불륜 정도는 돼야 진실한 사랑’이라는 말은 그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그의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에서 불륜은 사랑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구원의 방식이다. 영화평론가 김경욱씨는 “영화 ‘빈집’의 포스터를 보면, 불륜의 상대 남자가 마치 천사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빈집’에서 불륜은 그것이 구원이든 팬터지든 해석의 여지를 많이 가진다는 점에서 설득력과 새로움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다층적 의미 때문에 ‘빈집’의 홍보사가 인터넷을 통해 ‘낯선 남자와 일탈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한 번 정도라면’ 등의 전제를 달긴 했어도 대부분 ‘가능하다’는 답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일부일처제가 작동하는 문명사회에서 ‘불륜’은 영화와 소설, 미술 등 예술 작품들이 즐겨 다뤄온 소재다. 대개 불륜은 관객들의 비난 속에서 권선징악적 교훈을 남기지만 2001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 등을 받은 ‘정사’(파트리스 셰로 감독)처럼 “관객들이 어느새 바람피우는 여자 입장에 서게 되어 남자들이 무척 싫어하는”(영화평론가 이명희) 영화들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이재용 감독의 ‘정사’가 불륜을 새로운 관계의 출발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후 ‘바람난 가족’이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결혼제도의 모순이라는 각도에서 불륜을 다뤄 호평을 받았다.

왜 ‘불륜’에 흥분하고 빠져드나

불륜에 대한 대가 혹은 희생을 무릅쓴 치명적 사랑으로 해석되는 영화 ‘주홍글씨’.

올해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전수찬의 ‘어느덧 일주일’도 일주일을 함께 보내는 남녀의 불륜을 애정행각이 아닌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그려 화제가 되었다. 작가는 행복에 이르는 방식으로 불륜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고은주가 최근 펴내 인기를 얻은 소설집 ‘칵테일 슈가’ 역시 설탕처럼 녹아버리고 있는 결혼을 희화화한 불륜 ‘무용담’이다.

이와 함께 최근 방송되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불륜을 다룬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 다양한 불륜이 등장한다. ‘불륜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특히 KBS 드라마 ‘두번째 프로포즈’의 불륜이 뜨거운 감자인데, SBS ‘아내의 반란’이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불륜을 단지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끌어오거나 코믹한 상황을 위해 가져온 것과 대조된다.

‘아내의 반란’에는 돈 잘 버는 아내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섹스를 피하는 대학강사 남편, 바람이 취미가 된 돈 많은 남편, 구두쇠에 가끔 폭력을 쓰는 삼겹살집 주인 남편이 등장하는데 그중 ‘폭력 남편’이 잠자리에서도 문제가 없고 상대적으로 진실한 인물로 그려진다. ‘아내의 반란’의 곽영범 PD는 “불륜 드라마가 아니라 치유 드라마”라면서 “우리나라가 보수적이라 여자의 불륜은 심각해질 것 같아 배제했다”고 말한다. 잦은 침실 장면에도 불구하고 눈높이는 보수적인 시청자들에게 맞추겠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두번째 프로포즈’는 시청자들의 반발을 각오하고 ‘불륜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설득한다. 주인공 민석(김영호 분)은 오래 알고 지내던 미영(오연수 분)과 결혼해 10여년을 별 탈 없이 살다 연정(허영란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미영과 이혼하고 연정과 재혼한다.

보통 불륜 드라마라 하면 바람피우는 남자 주인공은 남성 중심적이고 치사한 인물이다. 그는 조강지처를 내쫓고, 남편을 유혹한 여자 역시 돈을 노리거나 비뚤어져 있어서 결국 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두번째 프로포즈’에서 민석은 연정을 만나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다. 아내에게 미안한 그는 자기가 가진 재산을 모두 그녀에게 주고 사회적으로 여전히 성실한 사업가다. 연정 역시 잘나가는 방송인으로 착한 성품을 갖고 있다.

‘두번째 프로포즈’ 게시판에는 ‘가정파괴범을 미화하지 말라’거나 ‘불륜을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려야 정상 아니냐’, ‘가정을 버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달라’ ‘ 속상해서 어제 시청하지 않았다’는 항의성 의견이 적지 않게 올라와 있다.

왜 ‘불륜’에 흥분하고 빠져드나

불륜을 사랑의 한 형태로 그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두번째 프로포즈’.

‘가정 해체 공포’ 여성 시청자 민감

작가 박은령씨는 “여성 시청자들의 반발이 거세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일종의 3부작입니다. 전업주부인 미영의 이혼, 미영의 이혼 로드무비, 미영의 사업가로의 성공으로 이뤄져 있어요. 이혼해 고생하는 부분이 현실이라면 성공은 팬터지인 셈인데, 현실 부분이 여성 시청자들의 맘에 들지 않나봅니다. 민석과 연정 역시 ‘대가’를 치를 텐데, ‘천벌’을 받거나 하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눈물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만큼 책임이 있다는 것, 어렵게 얻은 사랑도 여러 사랑 중 하나일 뿐임을 결국 깨닫는다는 거죠.”

그는 “세상에 장담할 일이란 없다”는 것이 드라마의 주제라고 한다. 누구든 신성불가침일 듯한 가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나와 혼자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시청자들이 민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가정’ 해체의 공포가 현실에 다가와 있다는 뜻이다. 한 여성 시민운동가는 진보적 여성들도 ‘러브호텔’ 반대 시위 문제를 놓고는 여러 가지로 의견이 갈라진다고 말한다. 누구든 가정과 불륜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기검열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근대에 고착화된 일부일처제가 자본주의에 가장 기능적인 가족 형태이기 때문에 사랑이나 불륜도 철저히 정치 경제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가족이나 결혼을 신성시하기 때문에 외도 따로 가정 따로다. 불륜이 역설적으로 가족을 지탱하는 구실을 한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정치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가정과 불륜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에서 불륜에 대한 묘사가 일상화되고 긍정적인 상황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폭력적인 가부장주의의 모순에 억눌려 있으며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게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진화 생물학자들은 일부일처제가 자리잡기 전인 원시수렵사회가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어나고 경제적 능력이 커진 현대 맞벌이 사회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남과 여를 불문하고 인간의 본성에 의한 ‘바람’, 즉 ‘불륜’의 가능성도 현대사회에서 점점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원시적 본성과 여성의 정치 경제적 지위 향상이 21세기에 ‘불륜’이라는 코드로 다시 만나는 셈이다.



주간동아 458호 (p64~6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99

제 1299호

2021.07.23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