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8

2004.11.04

“밟으면 밟히는 ‘충청’이 안타깝다”

염홍철 대전시장 “신행정수도 건설은 절대 원칙 … 타협·제3 대안 있을 수 없어”

  • 대전=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10-28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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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홍철 대전시장은 자치단체장으로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 이후에 대한 대안과 대책은 쥐고 있는 듯했지만 정작 “지금은 정부 대책을 지켜볼 때”라며 핵심을 비켜갔다. 그의 신중함은 조만간 있을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둔 장고의 의미도 있다.
    “밟으면 밟히는 ‘충청’이 안타깝다”
    충격과 분노에 떨고 있는 대전시민과 충청도민들 때문일까. 염홍철 대전시장은 말을 아꼈다. 마치 엄청난 승부를 앞둔 승부사처럼, 인터뷰 내내 절제된 표현과 단어로 일관했다. 자치단체장으로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에 대한 대안과 대책은 쥐고 있는 듯했지만 정작 “지금은 정부 대책을 지켜볼 때”라며 핵심을 비켜갔다. 그의 신중함은 조만간 있을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둔 장고의 의미도 있다. 그는 “신행정수도 건설은 타협도, 제3의 대안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초 계획에 준하는 행정수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다.

    한나라당 소속인 염시장은 헌재 결정이 ‘중앙 정치권의 정치논리에 따른 결론’으로 비치는 부분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신행정수도 건설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한 것 때문에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그는 헌재의 위헌판결과 관련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며 정치권 전체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10월23일 토요일 오후 대전시청 시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현지 분위기는.

    “말 그대로 충격과 분노로 얼룩졌다. 정치권에 농락당했다는 민심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이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주민들은 중앙정부에 더욱 강력한 조치를 주문하라고 요구한다. 충청권 지역민들이 푸대접을 받아도 그냥 지나치고 밟으면 밟히는 지역민으로 인식되는 점이 안타깝다.”

    -충청권 부동산 시장에 대혼란이 예상되는데.



    “대선 이후 대전과 충청지역 부동산 시장은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사실상 과열 양상을 보였다. 지역 부동산 시장은 신행정수도에 대한 기대심리로 잔뜩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신행정수도 건설 위헌 결정으로 이것이 한꺼번에 터졌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된다. 대전시는 충청지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시의 구실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치권에 농락, 민심 분노 … 강력한 대처 요구

    -충청권 일부 의원들이 헌재 재판관을 탄핵하겠다고 나섰다.

    “헌재가 내린 결정에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또 불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명분으로 헌재가 내린 결정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헌재 재판관들을 탄핵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지역 주민들도 이들 주장에 동의하는가.

    “그들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지역주민들은 헌재의 위헌 결정 뒤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심한 상실감,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중앙정부에 더욱 강력한 조치를 주문하고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0월 마지막 주에 1만명 규모의 규탄 집회도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중앙정치권은 지역민들의 이런 분노를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밟으면 밟히는 ‘충청’이 안타깝다”

    10월22일 충청 지역 자치단체장들이 모여 위헌 결정이 난 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왼쪽부터 염홍철 대전시장, 심대평 충남지사, 이원종 충북지사.

    -위헌 결정은 여론을 외면하고 정책을 밀어붙인 여권의 책임인가, 아니면 정략적으로 접근한 한나라당의 책임인가.

    “정치권의 리더십에 사실상 문제가 있었다. 굳이 따진다면 여야 공히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형식에 사로잡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했을 뿐, 신행정수도 건설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등한시했다. 무리한 밀어붙이기가 다른 지역의 반발을 샀고, 결국 헌재의 위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대안 없이 반대한 한나라당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지역 여론은 한나라당에 더 비판적인데.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동의했던 한나라당이 반대로 돌아선 것이 결국 지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 같다. 이런 문제 때문에 몇 차례 당 지도부와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한나라당의 반대 당론에 맞서 한때 염시장의 ‘탈당설’이 나돌았는데.

    “최근 3명의 충청권 자치단체장이 모여 대책을 숙의하면서 언론인들이 그런 얘기를 자주 거론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이 신행정수도 건설에 반대하고 이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로 목소리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탈당설로 확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배후도시 대전 역할 재검토 … 도시 발전 전략은 계속 추진

    -헌재의 위헌 결정 뒤 지역민들 사이에서 다시 한나라당 소속인 ‘염시장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헌 결정에 대한 분노가 워낙 크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탈당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하다. 위헌 결정을 받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시 추진해야 한다. 그러자면 여당은 물론 야당의 협조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 나는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한나라당의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정치권에서 행정특별시, 행정타운 등 갖가지 대안이 쏟아지고 있다. 염시장의 해법은.

    “이런저런 생각은 있지만…. 자치단체장이 의견을 밝히는 것보다 정부의 태도와 방침을 지켜보는 것이 먼저다. 헌재의 결정은 법리와 입법 절차의 문제에 대한 결정일 뿐,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궁극적 결론은 아니다. 신행정수도 건설의 현실적 당위성과 역사적 필연성은 여전히 존중돼야 한다.

    어떤 경우에든 신행정수도 건설을 중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타협이나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대승적 역사적 배경과 목적에 맞게 신행정수도 건설은 다시 추진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조만간 회동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이런 원칙을 강력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부동산 시장의 냉각과 건설경기 타격 등으로 지역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 건설경기 등에서 이상 신호음이 들리고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과열 방지를 위해 시행했던 각종 부동산 규제책을 빠른 시간 안에 해제,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 기업의 어려움을 감안, 수출기업의 세금 납기 유예 등도 혼란에 빠진 지역 경제를 추스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이다.”

    -행정수도의 배후도시로 거듭나려던 대전시의 역할과 기능에 변화가 불가피한데.

    “사실 난감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신행정수도 중심까지 연장하려던 대전도시철도 1호선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 같다. 그외 각종 연계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나마 대부분 입안단계로 재원을 투자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교육 복지 환경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구상했던 도시발전 전략은 행정수도 건설과 관계없이 추진할 것이다.”

    -조만간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예정인데.

    “무엇보다 충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되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기획했던 정신과 계획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정책적 목표가 백지화돼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 충청 경제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대책도 논의할 예정이다.”

    -한나라당의 지원책은.

    “헌재 결정 직후 박근혜 대표와 통화를 했다. 박대표는 당이 갖고 있던 충청지역 개발 계획에 따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조만간 별도로 만나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지원 입장을 확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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