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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노무현 대통령, 헌재 결정 범위 안에서 ‘국가균형발전’ 밝혀 … 여론·경제난 감안 강공 피한 듯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정부 주요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 클러스트 건설,
  • 기업도시 건설 등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지방분권 정책의 대대적인 개편을 요구한다. 수도 이전이 무산될 경우, 이런 모든 국정 목표는 방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은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노무현 대통령에게 엄청난 시련이다. 예상치 못한 헌재의 일격을 받은 여권 주변에서는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를 통한 정면돌파 등이 거론될 정도로 격앙됐다. 그러나 노련한 승부사 노대통령은 4일간의 장고 끝에 헌재의 위헌 결정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고 신행정수도 건설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청와대와 국회를 뺀 행정도시 건설이라는 우회로를 확보, 비전과 희망도 동시에 제시했다.

잘 알려진 대로 신행정수도 건설은 참여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중·장기 국토개발계획의 기본 포석. 노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지방자치와 분권화에 남다른 의지를 보였고, 이를 통한 지방의 균형적인 발전을 국가 정책의 제1 목표로 삼았다. 노대통령은 이런 원칙을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걸어 충청권 유권자들한테서 호평을 받았다.

각종 지방분권 정책 대대적 개편 불가피

헌재의 특별법 위헌 결정은 노대통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강공보다 우회로를 선택했다. 노대통령은 10월25일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헌재 결정의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헌재의 결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한 계획을 세워 반드시 추진하고, 구체적 방안은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당과 협의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수도 이전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 테두리 안에서 국토균형발전 알맹이는 그대로 담되, 위헌 요소를 제거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10월25일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노대통령이 우회로를 선택한 배경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무엇보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우호적인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노대통령 자신의 낮은 국정 수행 지지도와 어려운 경제 여건 등도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헌재가 할퀸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 보인다. 위헌 결정은 경우에 따라 집권 중반으로 치닫는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개혁이란 명분으로 추진됐던 정책이 헌법기관을 통해 좌절됐다는 점이 무엇보다 뼈아프다. 한번 훼손된 권위는 회복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도전을 불러올 수도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정부 주요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 클러스트 건설, 기업도시 건설 등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지방분권 정책의 대대적인 개편을 요구한다. 수도 이전이 무산될 경우, 이런 모든 국정 목표는 방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노무현 정부 국정 추진의 핵심이 무너지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열린우리당의 이부영 의장(맨 오른쪽)이 10월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4대 개혁법안 추진과정 등을 보고받고 있다.

노대통령은 평소 “행정수도 건설에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발언은 정치적 책임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자칫 말과 행동이 따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여권 내부의 동요와 혼란을 동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흐름의 일단은 안테나에 잡히기 시작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 직후인 10월23일 정장선 의원(이부영 의장 비서실장)은 “정부 여당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해 반성하고 점검을 총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단일대오였던 개혁노선의 한 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여권 내부 동요 조짐 … 당내 세력간 갈등 표출 우려

더욱 심각한 모습은 정의원 주장에 공감하는 인사들이 당내에서 하나둘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방침에 신중론으로 맞서온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 소속 의원들이 선봉에 섰다. 안영근 의원은 “정의원의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지난 4·15 총선 승리를 기반으로 ‘과반 의석의 힘’으로 개혁을 밀어붙이던 우리당의 정국 주도력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헌재 결정에 반발하는 당내 진보파와 실용주의를 표방해온 중도·보수 세력들의 갈등도 점쳐진다. 이런 상황이 연출될 경우 청와대는 통치력의 상당 부분을 위헌 결정 혼란 수습에 쏟을 수밖에 없다. 수개월간 지지율이 30%대를 넘지 못하고 있는 노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당내의 복잡한 스펙트럼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기본법 제정,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관계법 제·개정 등 여권이 심혈을 기울여온 ‘4대 입법’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권은 4대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청와대는 해방 60주년과 을사조약 100주년, 6·25전쟁 발발 55주년이 되는 2005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일부 여론의 반발에도 4대 입법안을 밀어붙인 이유도 이런 타임 스케줄과 무관치 않다는 것. 우리당 한 관계자는 “2005년은 여러 가지로 역사적 분기점의 의미를 갖고 있는 해로, 이런 문제(4대 입법)들에 대한 정리가 더 늦어지면 곤란하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2002년 12월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대전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도 여권의 움직임을 같은 시각으로 읽는다. 박근혜대표의 측근인 K씨는 “이해찬 총리와 이부영 당의장, 그리고 정동채 문광부 장관이 최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역사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4대 입법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개혁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개혁 세력을 묶기 위해 보수 언론을 타깃으로 설정했다는 얘기다.

여권의 이런 움직임은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상당 부분 추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헌재 위헌 결정에 편승, 국가보안법에 대한 압박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 여권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안개모 소속 의원들 등 우리당 소속 일부 인사들도 당론과 다른 별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노선 논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10월21일 헌재 결정 이후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긴급의총에서 소속의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이 커질 경우 여권은 상호 반목 등 계파별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폭이 넓은 우리당의 한계가 악재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여권 내부가 갈등과 반목에 휩싸일 경우 우리당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 과반선이 무너질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여권 내에서 ‘적극적인 상황 반전 카드’를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이 늘고 있는 까닭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또 노대통령이 헌재 및 신행정수도 건설 반대론자들과의 정면대결보다 타협안을 내놓은 까닭도 이 같은 일정과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경제난에 따른 민심 이반도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헌재 위헌 결정에 여론 지지율이 높은 것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수도 이전이냐”는 반발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에 대한 비전 제시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바닥을 계속 길 수밖에 없다.

“측면돌파로 憲風 뚫어!”

10월20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이란 이름으로 새 출발을 위한 모임을 하고 있는 안개모.

정국 반전 계기 가능성도 … 명분상 ‘타격’ 정치적 ‘실리’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번 위헌 결정이 노대통령에게 정국 반전의 계기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노대통령은 명분상으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정치적으로 상당한 실리를 거머쥐었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노대통령은 엄청난 반대 여론 속에 신행정수도 건설을 강행해야 하는 부담을 덜었다. 무엇보다 그를 떠나던 개혁지지 세력들이 다시 몰려들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부 시민단체는 10월25일 헌재를 비판하는 모임을 마련했고, 그 세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헌재 위헌 결정 뒤 노대통령의 지지 세력들은 서로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그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격앙된 분위기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이런 흐름은 탄핵국면 때의 진보 대 보수 진영의 대립과 같은 정국 구도를 재연할 소지가 다분하다. 중단된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는 현 정권의 지지 여부로 성격이 변질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노대통령은 그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철회가 아니라 중단된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여권은 물론 야당도, 여론도 모두 이 시각에 동의한다. 신행정수도 문제는 2007년 대선 때까지 여야 정치권을 따라다닐 것이 자명하다. 노대통령은 지난 5월 연세대를 방문 “제 사주가 제법 괜찮다고 합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는데, 전 아무래도 시운(時運)을 타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458호 (p16~20)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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