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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ㅣ백발의 침구사 김남수옹

침통과 뜸기 들고 주5일 무료 봉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침통과 뜸기 들고 주5일 무료 봉사

침통과 뜸기 들고 주5일 무료 봉사

아흔 살 현역 김남수옹이 침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올해 나이 아흔인 구당 김남수옹은 매주 월요일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한다. 수요일에는 종로에 있는 ‘시민의 신문’ 사무실, 금요일에는 감사원, 토·일요일에는 창신동에 있는 한 무료 봉사실로 길을 나선다. 60년째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침통과 뜸기를 들고서다.

김옹의 직업은 ‘침쟁이’. 침구사 면허를 가진 그는 1943년부터 홍릉에서 ‘남수 침술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날마다 다른 곳으로 출근하는 이유는 그곳에 마련된 ‘침뜸 봉사실’에서 무료로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닷새를 무료 봉사하는 탓에 정작 그의 침술원은 화, 목 이틀만 문을 연다.

“의술은 원래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 목숨 값으로 치부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진료마저 뒤로 미룬 채 봉사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자 김옹은 당연하다는 듯 짧게 답했다. 일주일에 이틀이면 생활에 필요한 돈을 다 벌 수 있는데 무슨 욕심을 더 부리느냐는 것이다.

자신 돈벌이 위한 진료는 주 2일만



돈을 벌지 않는 닷새 동안 그가 치료하는 이들은 60살 이상 생활보호대상자,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같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는 셈이다.

그가 이러한 삶을 살게 된 데는 어린 시절 동네 의원이던 선친의 영향이 컸다. 1915년 전남 광산(현재의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난 김옹의 어린 시절에는 동네 의원이 치료비를 받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산골이든 논두렁이든 밭두렁이든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갔고, 밤낮 없는 치료 후에도 돈을 받지 않았다. 생활은 동네 사람들이 알아서 챙겨주는 쌀로 꾸렸다.

“추수 때가 되면 마을 이장이 자루를 들고 동네를 돌았어요. 그러면 각자 형편껏 쌀을 담았죠. 내가 이만큼 치료받았으니 이만큼 넣는다, 하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넉넉한 사람은 많이 붓고, 없는 사람은 못 붓기도 하고. 아름다운 의료보험이었죠. 저는 그게 진정한 의술이었다고 생각해요.”

세월은 변했고, 이제는 의사가 부자인 것이 너무 당연한 세상이 됐다. 하지만 김옹의 좌우명은 여전히 ‘배워서 남 주자’다. 의술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침통과 뜸기 들고 주5일 무료 봉사

서울 홍릉의 정통침뜸교육원에서 ‘붕어빵’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남수옹.

하지만 ‘배워서 남 주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무료 봉사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인근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김옹을 ‘불법 의료행위’로 신고하기 일쑤기 때문. 현행 의료법상 침뜸은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게 이유다.

한때 우리나라의 대표적 의료행위였던 침뜸이 ‘불법 의료행위’가 된 것은 1962년부터. 5·16으로 집권한 새 정부가 국민의료법을 개정하면서 구법에서 ‘의료유사업자’로 규정했던 접골사, 침술사, 구술사 등에 대한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근거 규정이 사라지자 침구사는 순식간에 ‘무법적인 존재’가 돼버렸다. 11개나 되던 관인 침구학원은 소리 소문 없이 폐쇄됐고, 5000여명의 졸업생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그렇게 침구사는 역사의 유물이 됐다.

그 이후 침구사 면허는 더 이상 발급되지 않는다. 김옹처럼 침구사 제도가 없어지기 전 면허를 딴 침구사들은 침뜸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할 수 있지만, 이미 대부분 사망해 현재는 고령의 50여명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전문 침구사의 명맥은 이제 거의 끊어진 셈. 그러니 병원들이 ‘침뜸 치료’를 한다면 일단 ‘불법’이라고 보고 신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옹은 이런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가슴 아파했다. 침과 뜸은 ‘부작용이 없고,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돈도 별로 들지 않는’ 서민에게 가장 이로운 의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번 뜸을 뜨는 데 드는 비용은 고작 쑥값 수십원 수준. 뜸자리를 잘 아는 전문가가 처음 자리를 일러주기만 하면, 그 뒤부터는 본인이 직접 혹은 가족끼리 서로 뜸을 떠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의료비는 병원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싸다. 김옹은, 북한은 물론 일본과 중국까지 침구를 전문과로 발전시켜왔는데 우리나라만 돈이 되지 않고 ‘구식’이라는 이유로 이것을 내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시대 어의였던 허임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침구사예요. 그는 허준 선생과 함께 왕의 건강을 돌봤죠. 지금은 잘못 알려져 있지만 원래 우리나라 의학의 본류는 침과 뜸이었습니다. 의원이 침뜸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약이 필요하면 약제사에게 처방을 써줬어요.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의 한약을 집대성한 약제사였지요. TV 방송을 통해 허준 선생이 침을 놓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의사가 침도 놓고 약도 쓴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그건 다 허구입니다. 우리나라만큼 의약 분업이 철저했던 곳이 없어요. 과거의 의사는 침구사였죠. 그런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침뜸이 지금은 ‘사이비 의술’처럼 치부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김옹의 평생 소원은 침구사에 관한 법이 부활되는 것이다. 그가 굳이 국회의사당이나 과천 정부청사 안에서 무료 봉사를 하는 것은 넓게 보면 관련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높은 분’들의 눈앞에서 침과 뜸의 효능을 보여줌으로써 침뜸이 당당한 의료행위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것.

“아흔 살 노인에게 무슨 욕심이 더 남았겠어요. 다만 수천년을 이어져온 우리 침뜸의 맥이 끊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 손자 손녀들이 전통 의술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 나가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옹은 이를 위해 여든이 되던 1994년부터 자신의 침뜸술을 전수하는 정통침뜸교육원과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했다. 그는 이곳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을 자신의 ‘붕어빵’이라고 부른다. 오랜 세월 쌓아온 의학 지식을 이들에게 모두 가르쳤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과 똑같은 실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300시간 교육을 수료한 뒤 자체 시험을 보는데, 지금껏 교육받은 2000여명 가운데 ‘준붕어빵’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360명에 그칠 정도로 까다로운 평가 과정을 거친다. 이들이 진정한 ‘붕어빵’이 되려면 시험에 통과한 뒤 180시간의 봉사활동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제자들과 ‘뜸사랑’ 결성 … 해마다 6만여명 무료 진료

김옹은 이 ‘붕어빵’ 제자들과 함께 봉사단체 ‘뜸사랑’을 결성해 해마다 6만여명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활동을 펴고 있다. 김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정식 침구사가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돈 한 푼 받지 않는 무료 봉사가 될 수밖에 없다.

김옹은 미국, 중국 등에서 열리는 침뜸 관련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최근에는 북쪽의 의료인들과 금강산에서 만나 남북 침뜸술의 교류를 위한 회의를 열기도 했다. 모두 다 침뜸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수제자에게만 ‘비방(秘方)’을 남기는 게 한의학의 전통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과거를 돌아보면 어느 마을에나 으레 침뜸에 정통한 어른이 있었고, 환자가 생기면 그분이 어디에 침을 놓거라, 뜸을 떠라 일러주는 대로 치료했거든요. 자신이 아는 모든 ‘비방’을 전수하는 게 한의학의 원래 전통입니다. 저도 그래요. 벌써 제 ‘붕어빵’들에게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고, 그들이 또 후학들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꽉 찬 아흔의 나이에도 날마다 오전 5시부터 자정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정력적으로 살고 있는 김옹의 시력, 청력, 체력은 모두 아직 50대 수준이다. 그래서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침구술의 ‘동의보감’ 격인 허임 선생의 ‘침구경험방’을 번역하고 싶고, 현재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침뜸을 이용한 화상 치료법도 더 널리 알리고 싶다. ‘뜸집’을 뜻하는 ‘구당’을 호로 삼았을 정도로 침과 뜸을 사랑하는 김옹의 침뜸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주간동아 455호 (p72~7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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