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가 지났습니다. 두둥실 떠오른 한가위 보름달을 보노라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되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닐 겁니다. 길이 막혀 몇 시간째 차 안에서 괴로워했던 사람들에게는 보름달이고 한가위고 다 지겹게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한가위 때마다 겪는 엄청난 귀성·귀경 행렬은 사실 지나친 서울 집중 현상의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던 무렵에 서울 인구는 90만명 정도였습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서울 인구는 급증해 1960년에는 240만명을 넘게 됩니다. 그 뒤 박정희 정권의 서울 집중 정책을 통해 서울 인구는 더욱 급증하고, 마침내 88년에는 서울에 사는 사람의 수가 1000만명을 넘게 됩니다.
세계에는 10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가 열댓 개 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서 선진국의 도시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도쿄뿐입니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는 1km2에 1만7000명이 살고 있는 서울이라고 하는군요. 생활비가 높은 도시로는 앞에서 꼽히고,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는 뒤에서 꼽히는 것이 오늘의 서울입니다. 서울은 변해야 합니다.
이명박 시장, 시민위 만들어놓고 의견 무시 공사 강행
이명박 시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시민들이 반신반의하면서도 큰 기대를 감추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시장은 ‘자연이 숨쉬는 청계천’ ‘문화와 역사가 되살아나는 청계천’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서울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서울의 자연과 역사는 마구 파괴되었습니다. 청계천 복원은 이 파괴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의도로 비쳤습니다.
이시장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시민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 맘대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시민위원회의 뜻을 받들어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청계천 복원을 연구해온 청계천 되살리기연구회 전문가들과 여러 시민단체 대표들이 시민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위원회 활동은 결국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시장은 처음부터 시민위원회 의견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시민위원회에서 어떤 논의도 하기 전에 청계천 복원 예상도가 만들어지고 널리 홍보되기 시작했던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예상도는 역사유적 청계천 복원도가 아니라 국적 불명의 현대식 하천 공원 예상도였을 뿐입니다. 시민위원회 항의에 대해 이시장은 홍보를 위한 것일 뿐 실제 복원은 시민위원회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7월에 속초에서 시민위원회의 심의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설계회사 책임자들이 참여해서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시장이 그들을 아예 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해 9월에 열린 서울시 의회에서 심재옥 의원(민주노동당)이 이에 대해 따졌습니다. 당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이던 양윤재씨는 “시민위원들이야 속초에 온천이나 하러 간 사람들인데 어떻게 바쁜 설계회사 책임자들을 부를 수 있냐”고 답했습니다. 이시장은 이런 그를 오히려 부시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2004년 3월에 열린 시민위원회는 서울시의 실시 설계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민위원회의 뜻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위원회를 무시할 거라면 이시장은 도대체 왜 시민위원회를 만든 것일까요. 결국 9월 시민위원회를 이끌어온 위원들 26명이 ‘잘못된 청계천 복원 사업에 다시 한번 항의하는 뜻’으로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서울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이시장의 청계천 파괴 사업을 중단시키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棟이명박 시장은 처음부터 시민위원회 의견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시민위원회에서 어떤 논의도 하기 전에 청계천 복원 예상도가 만들어지고 널리 홍보되기 시작했던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예상도는 역사유적 청계천 복원도가 아니라 국적 불명의 현대식 하천
공원 예상도였을 뿐입니다. 시민위원회 항의에 대해 이시장은 홍보를 위한 것일 뿐 실제 복원은
시민위원회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가위 때마다 겪는 엄청난 귀성·귀경 행렬은 사실 지나친 서울 집중 현상의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던 무렵에 서울 인구는 90만명 정도였습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서울 인구는 급증해 1960년에는 240만명을 넘게 됩니다. 그 뒤 박정희 정권의 서울 집중 정책을 통해 서울 인구는 더욱 급증하고, 마침내 88년에는 서울에 사는 사람의 수가 1000만명을 넘게 됩니다.
세계에는 10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가 열댓 개 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서 선진국의 도시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도쿄뿐입니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는 1km2에 1만7000명이 살고 있는 서울이라고 하는군요. 생활비가 높은 도시로는 앞에서 꼽히고,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는 뒤에서 꼽히는 것이 오늘의 서울입니다. 서울은 변해야 합니다.
이명박 시장, 시민위 만들어놓고 의견 무시 공사 강행
이명박 시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서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시민들이 반신반의하면서도 큰 기대를 감추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시장은 ‘자연이 숨쉬는 청계천’ ‘문화와 역사가 되살아나는 청계천’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서울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서울의 자연과 역사는 마구 파괴되었습니다. 청계천 복원은 이 파괴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의도로 비쳤습니다.
이시장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시민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 맘대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시민위원회의 뜻을 받들어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청계천 복원을 연구해온 청계천 되살리기연구회 전문가들과 여러 시민단체 대표들이 시민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위원회 활동은 결국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시장은 처음부터 시민위원회 의견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시민위원회에서 어떤 논의도 하기 전에 청계천 복원 예상도가 만들어지고 널리 홍보되기 시작했던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예상도는 역사유적 청계천 복원도가 아니라 국적 불명의 현대식 하천 공원 예상도였을 뿐입니다. 시민위원회 항의에 대해 이시장은 홍보를 위한 것일 뿐 실제 복원은 시민위원회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7월에 속초에서 시민위원회의 심의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설계회사 책임자들이 참여해서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시장이 그들을 아예 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해 9월에 열린 서울시 의회에서 심재옥 의원(민주노동당)이 이에 대해 따졌습니다. 당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이던 양윤재씨는 “시민위원들이야 속초에 온천이나 하러 간 사람들인데 어떻게 바쁜 설계회사 책임자들을 부를 수 있냐”고 답했습니다. 이시장은 이런 그를 오히려 부시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2004년 3월에 열린 시민위원회는 서울시의 실시 설계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민위원회의 뜻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위원회를 무시할 거라면 이시장은 도대체 왜 시민위원회를 만든 것일까요. 결국 9월 시민위원회를 이끌어온 위원들 26명이 ‘잘못된 청계천 복원 사업에 다시 한번 항의하는 뜻’으로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서울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이시장의 청계천 파괴 사업을 중단시키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棟이명박 시장은 처음부터 시민위원회 의견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시민위원회에서 어떤 논의도 하기 전에 청계천 복원 예상도가 만들어지고 널리 홍보되기 시작했던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예상도는 역사유적 청계천 복원도가 아니라 국적 불명의 현대식 하천
공원 예상도였을 뿐입니다. 시민위원회 항의에 대해 이시장은 홍보를 위한 것일 뿐 실제 복원은
시민위원회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