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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 받았으니 교단에 다시 서야죠”

이원규 루게릭병과 싸우며 ‘희망 일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박사 학위 받았으니 교단에 다시 서야죠”

“박사 학위 받았으니 교단에 다시 서야죠”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이원규(오른쪽)와 간병중인 아내.

지독할 만큼 성실하게만 살았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 입학 후 20여년 동안 따낸 학위가 모두 7개. 대학과 전공을 바꿔가며 4개의 학사 학위와 2개의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하나씩 마칠 때마다 우등 졸업이나 대표 졸업은 늘 그의 몫이었다. 8월25일 성균관대 졸업식에서 ‘한국시의 고향의식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이제는 7개의 학위를 갖게 된 이원규씨(43) 이야기다.

성균관대 졸업식장에서 이씨는 단연 눈에 띄었다. 휠체어에 올라탄 채 부인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졸업장을 받아드는 불편한 모습 때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만면에 웃음을 띤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씨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일명 루게릭병) 환자다. 온몸 근육이 하나씩 굳어지다가 결국은 호흡기 근육마저 마비돼 숨을 쉬지 못해 죽는 병.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앓고 있는 바로 그 질환이다. 아직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아 ‘죽음의 병’으로 불린다.

근육마비 죽음의 병 ‘날벼락’ … “불가능 없다” 온몸으로 증명

두 번째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1999년 겨울, 이씨는 발음이 자꾸만 새고 혀에 백태가 끼는 증세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루게릭병으로 혀 근육이 굳어가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하던 그의 몸은 그 후 자꾸만 변해갔다. 여행이나 등산을 갈 때면 늘 펄떡펄떡 뛰며 앞장서서 동료들을 이끌던 힘찬 근육은 모두 사라졌고, 살이 16kg이나 빠졌다. 이제는 휠체어에 앉지 않으면 외출을 할 수 없고, 자신의 손으로 밥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른쪽 가운뎃손가락 하나로 자료를 찾고, 논문을 직접 입력하며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아낸 것이다. 몸이 정상이던 시절 지독히 성실했던 그는 이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그리고 성실히 최선을 다한다면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9월4일 이씨의 신천동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자 아내 이희엽씨(40·초등학교 교사)는 남편이 앉은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더 이상 분명한 발음을 내지 못하는 남편 이야기를 통역해주기 위해서였다. 1985년부터 병이 온몸을 덮치기 전인 2003년 1학기까지 서울 동성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이씨는 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정확한 영어 발음, 교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유머 감각’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안면 근육은 대부분 마비돼 우리말도 어눌한 모음밖에 발음하지 못하는 정도가 됐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끈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의 입 모양에 시선을 맞추고, 한 음절 한 음절 전해주는 아내다. 마치 ‘외계의 언어’처럼 멀고 아득한 곳에서 들리는 이씨의 목소리를 아내 이씨는 차근차근 정확하게 풀어내준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여전히 잃지 않은 이씨의 멋진 유머 감각도, 아내 이씨의 목소리와 밝은 표정을 통해 기자에게 전해졌다.

루게릭병은 결코 의식을 마비시키지 않는다. 환자는 의식과 오감이 명징히 살아 있는 상태에서, 온몸의 근육이 하나씩 마비되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간다. 그래서 모든 병 가운데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병. 논문을 쓰면서 이씨가 느낀 아픔도 적지 않았다. 논문이 마무리돼가던 2004년 1월 이씨가 쓴 일기에는 그가 느낀 고통의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박사 학위 받았으니 교단에 다시 서야죠”

이원규가 건강하던 시절의 단란한 이씨 가족 모습.

“입은 떡 벌어져 신음소리가 튀어나오고 두 다리는 끊임없이 덜덜 떨리고 이마와 몸통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윗옷이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이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순간 온몸이 축 늘어져버리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기도가 잘되지 않았으나 어쨌든 통증이 어서 빨리 가라앉기를 빌었다. …그러나 끔찍한 고문과도 같은, 기억에도 전혀 없는 난생 처음 겪는 어마어마한 고통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그냥 지금 죽어도 좋으니 고통만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나의 삶에 대한 의지가 이토록 약하고 허망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지난해부터 그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고, 다니던 학교도 휴직해야 했다. 논문을 쓰는 작은 방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는 10여m에 불과하지만, 혼자 가려면 이제 5분을 걸어야 한다. 한 발을 간신히 들어 올리고, 다시 내리고, 다른 발에 힘을 주고, 들어 올리고…. 전 과정을 입으로 읊으며 온몸에 땀이 솟을 만큼 기운을 다해야 간신히 화장실 앞에 닿을 수 있다. 그렇게 고된 노력 끝에 써낸 논문이다.

아내 이희엽씨가 수발 …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

그러나 이씨는 논문 완성의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모든 것이 아내 덕분…”이라고 이씨가 떠듬떠듬 말을 시작하자 아내 이씨는 “이 말만은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며 통역을 중단했다. 그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란다. 이씨는 졸업식장에서 발표한 소감문에도 “사랑하는 아내가 없이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어 아내가 눈물을 흘리게 했다.

1989년 결혼한 후 15년 동안 함께 살아온 이들 부부에게 루게릭병은 잠시 왔다 가는 시련일 뿐이다. 아내 이씨는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나날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곧 치료법이 개발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남편은 분명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이씨는 매일 10가지가 넘는 특수 영양식을 만들고, 남편 이씨의 손 발 입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았고, 소녀처럼 활기가 넘쳤다. 남편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분이 우울할 때면 휠체어를 밀고 이씨와 함께 한강변을 산책한다는 아내 이씨에게 남편은 여전히 생에서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이다.

“언제나 덜렁거리는 저를 남편은 평생 동안 든든하게 지켜줬어요. 제가 필요할 때는 늘 제 뒤에 있었죠. 잠시지만 내가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런 시련이 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체적으로는 내가 도움을 주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지금도 제가 남편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있고요.”

이런 아내를 위해 이씨도 언제까지나 성실히 살아갈 생각이다. 논문을 마친 이씨의 다음 목표는 교단으로 돌아가는 것. 스티븐 호킹 박사가 사용하고 있는 음성변환장치만 있다면 불가능한 꿈도 아니다.

이미 루게릭병이 상당히 진행된 호킹 박사에게는 성대가 없다. 루게릭병 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호흡 근육 마비를 막기 위해 기관지 절개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 환자들은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돼 루게릭병이 정복되면 언젠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웬만하면 성대 제거 수술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병이 진행되고, 죽음이 다가오면 결국은 ‘살기 위해’ 목청을 도려낸다.

호킹 박사도 투병 17년째가 되는 해에 성대를 잘라내고 말았다. 지금은 단어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그것을 음성으로 변환해 읽어주는 장치를 이용해 강연을 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8000만원대인 이 기계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이씨는 “이미 투병 생활을 하며 집 한 채에 해당하는 돈을 들였기 때문에 그 기계를 사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지만, 기회만 된다면 어떻게든 그 장치를 이용해 강단에 서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았다.

이씨는 9월16일 모 방송의 생방송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불편한 얼굴 근육을 움직여 껄껄 웃었다.

“그때까지 다 나아야겠어요.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니까 멋있게 노래 한 곡 불러야지요. 제가 건강할 때는 학부모들한테 인기가 아주 많았거든요.”

아내 이씨는 얼굴 가득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이씨의 말을 통역했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명랑했고, 희망에 넘쳤다. 이들은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미래는 어떤 시련도 막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452호 (p64~65)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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