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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학교, 캐나다식 영어 ”띵호와”

영국식 위상 하락, 미국식은 美 문화 범람 우려 '기피'…초등생 교과서 75%의 저자는 캐나다인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ken1757@hotmail.com

중국학교, 캐나다식 영어 ”띵호와”

중국학교, 캐나다식 영어 ”띵호와”

올해 가을학기부터 캐나다 교과서로 영어를 배우게 된 중국 어린이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영어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느냐 마느냐’는 더는 논란거리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 결말이 나 현재 중국 어린이들은 베이징 당국의 국가 시책에 따라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배우고 있다.

그러나 영어와 관련해 한 가지 논란이 남아 있다. 어느 나라 영어를 표준영어로 하느냐는 문제가 그것. 영국 영어는 국제 위상이 옛날 같지 않은 데다 대영제국 시절의 오만한 가치관이 아직 말 속에 많이 남아 있다. 미국 영어를 받아들일 경우 미국 문화가 중국인들 사이에 스며들 것이 걱정스럽다. 이런저런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캐나다 영어. 최근 캐나다 유력지 ‘글로브 앤드 메일’은 “중국이 미국보다 덜 위협적인 캐나다 영어를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이번 가을학기 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중국 어린이가 약 2000만명이고 이 가운데 약 1500만명이 캐나다 회사가 펴낸 교과서로 공부하도록 확정됐다.

지문 곳곳엔 캐나다적인 특색 ‘물씬’

‘글로브 앤드 메일’은 “9월 시작되는 새 학기에 중국 초등학생들이 사용할 영어 교과서의 75%는 캐나다인 영어전문가들이 저술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영국 영어가 표준영어의 자리를 지켜왔으나, 영어 교수법의 혁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다수 초등학교들이 캐나다 사람들이 쓴 교과서를 채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 교과서는 캐나다식 철자로 쓰인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구별되는 ‘캐나다적인 그 무엇’이 지문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예컨대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과 눈(雪), 전통적인 기예(技藝)라고 할 수 있는 아이스하키, 그리고 북극권 원주민인 에스키모 등에 관한 지문이 포함되어 있다. 또 날짜가 미국보다 한 달 앞서고 의미도 다소 차이가 있는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에 관한 지문도 나온다. 한 중국인이 캐나다를 방문해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며 “캐나다의 중국인들은 긍지가 강하고 중국문화 보존에 열성적이야” “캐나다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좋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나온다.



이들 교과서의 판권을 갖고 있는 출판사는 토론토의 링고 미디어(Lingo Media)와 애드먼튼의 듀벌 하우스(Duval House Publishing). 이 중 링고 미디어가 중국 시장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링고 미디어는 2001년 중국 최대의 교재 출판업체와 손잡고 시장 점유율 60∼65%를 목표로 공격적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캐나다 출판사는 ‘완제품’을 수출하지 않고 저작권료만 받고 있다. 때문에 매출액은 그리 크지 않은 편. 지난해 링고가 중국 시장에서 챙긴 저작권료는 100만 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중국학교, 캐나다식 영어 ”띵호와”

캐나다는 중국 영어교과서 시장을 독점하면서 세계 영어교육 시장에 막강한 힘을 발휘할 발판을 마련했다.

링고 미디어의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중국인 샤 베일링씨는 “캐나다는 중국에 경제·문화적으로 위협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캐나다 영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베이징 당국자도 정부 차원에서 캐나다 영어를 선호하고 있다는 점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교육부의 교과서 검인정 담당부서장인 장 아이젠씨는 “캐나다의 전문가들은 중국 학생들에게 적합한 교과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영어 산업서 캐나다 약진 발판

이 같은 중국의 태도는 ‘미국과의 관계에 일정한 선을 긋겠다’는 세계관, 혹은 시국관을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이는 앞으로의 국제정세에서도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다.

그러나 묵직한 분석을 접어둔다면 캐나다인들은 행복에 젖은 기분으로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나라’ 중국의 어린이 대다수가 캐나다 영어를 표준영어로 익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미국에 늘 주눅 들어 지내는 캐나다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달콤한 관점으로 이 상황을 해석하자면, 그동안 캐나다가 추구해온 평화주의적 국가 이미지가 국제 사회에서 먹혀들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산업’의 차원으로까지 이해하자면, 캐나다가 세계 영어교육 비즈니스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발판이 마련됐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의 귀에는 미국 영어와 캐나다 영어가 거의 똑같이느껴질 정도로 두 영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어휘나 철자, 발음에서 약간씩 다른 부분들이 있을 뿐이다(상자기사 참조). 많은 캐나다인들은 일상에서 이러한 미세한 차이를 무신경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캐나다인들은 두 영어의 차이가 두 나라를 구분 짓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이 미세한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것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간동아 452호 (p56~57)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ken175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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