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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性’ 아직도 민망하십니까

60세 이상 10명 중 6명이 성생활 ‘성욕은 청춘’ … 사회 인식은 편견과 부정적 시각 못 벗어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노인의 性’ 아직도 민망하십니까

‘노인의 性’ 아직도 민망하십니까

영화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2002년 영화 ‘죽어도 좋아’가 선보인 후 노년의 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죽어도 좋아’는 일흔을 넘긴 두 노인이 사랑에 빠지고 섹스를 나누는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린 영화. 이 영화를 만든 박진표 감독은 당시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이 늙어 서러운 삶을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 ‘세파에 찌들어 육신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해서 인생마저 늙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서글플 뿐 아니라 옳지 않은 시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충격 요법’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사회는 노년의 ‘사랑하고 성생활을 즐길 권리’를 인정하거나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다른 집 노인이라면 몰라도 내 부모는 안 된다”는 자녀들의 편견과 부정적 의식이 큰 문제다. 노인들 스스로도 연애는 남우세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청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만난 노인의 상당수는 주변 ‘커플’에 대해 “주책스럽다”는 등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렇다 해서 노인들의 몸과 마음마저 이성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5월 ‘사랑의전화 복지재단’ 조사에 따르면, 60살 이상 노인 10명 중 6명이 성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2월 경기도 성남 ‘여성의 전화’ 조사에서도 60살 이상 여성노인 중 51.8%가 ‘성생활이 필요하다’, 22%가 ‘배우자가 없어도 성생활을 하고 싶다’는 답을 했다.

“60대 이상 남성 36%, 주 1회 성욕 느껴”

해마다 한국 남성의 성의식을 조사하는 비뇨기과 전문의 이윤수 박사는 “지난해 조사에서 60대 이상 남성의 36%가 ‘주 1회 성욕을 느낀다’고 답했다. 주 2회 또는 2주에 1회, 한 달에 1회라 밝힌 사람도 각각 16%였다. 반면 ‘성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설사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는다 해도 욕구는 분명 존재한다. 이를 배우자나 이성 친구와의 원만한 관계를 통해 해소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여성부가 운영하는 유아·어린이 성폭행사건 전담기관 ‘해바라기아동센터’는 최근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 하나를 내놓았다. 6월18일 개소 후 8월25일까지 전화 상담한 90건 중 10건(11.1%), 내방 치료를 받고 있는 60건 중 7건(11.6%)의 가해자가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노인의 性’ 아직도 민망하십니까
해바라기아동센터의 실질적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연세대 의대 신의진 교수(소아정신과)는 “유아·어린이 대상 성폭력 가해자 중 노인이 월등히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성욕이 없고, 그래서 늘 안전하다’는 사회적 통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 자신 오랫동안 아동 성폭행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임에도 의외의 결과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에게 ‘노인도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줘야 하는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부모들이 유념해야 할 대목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노인들이 무성(無性)이 아님을 엉뚱한 방향에서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고 60살 이상 노년층의 성폭력 범죄가 일반적으로 그 이하 연령층보다 높은 것은 결코 아니다. 서울경찰청 이금형 여성청소년과장은 “지난해 전체 성폭력 가해자 1만1968명 중 60살 이상은 348명으로 2%에 그쳤다”고 밝혔다.

범죄 건수 자체는 적지만 주 피해자가 유아·어린이·장애여성 등 자기 보호 능력이 취약한 층인 것은 사실. 서울경찰청 김영미 여경기동수사대 반장은 “성폭력의 일반적 특징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대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일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는 경우도 많다. 면식범도 상당수다. 노인 성범죄자가 자기 보호 능력이 약한 층을 주 범행 대상으로 삼거나, 피해자가 ‘할아버지 말씀이라 듣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거나, ‘동네 할아버지’ 등 면식범이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이 저지르는 성범죄는 피해 내용이 강간보다 성추행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한 행동이 성범죄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세대 간 성의식 및 생활관습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

신의진 교수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인들이 왜 그처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들은 종종 방치된다. 직장을 갖고 건전한 이성교제를 하며 노년을 즐길 만한 여건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못하다. 주로 손자손녀를 돌보거나 유아원 운전기사, 아파트 경비원 등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직종에 종사한다. 그만큼 성인이 아닌 아이들과의 접촉이 많으며, 한편 사회적으로는 생활과 의식 모두에서 고립돼 있다.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노인의 性’ 아직도 민망하십니까

남녀 노인의 건전한 만남을 확대하는 일에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죽어도 좋아’를 만든 김진표 감독은 “노인과 유아 성폭력을 연결 짓는 논리는 자칫 노인을 일종의 ‘범죄집단’처럼 비치게 할 우려가 있다. 그보다는 ‘노인도 젊은이와 똑같은 남자요, 사람’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노인 범죄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젊은 가해자에 비해 수는 적지만 어쨌거나 있긴 있다는 것 아니냐. 다른 연령층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년층에도 범죄 성향을 띤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될 걸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사람들이 ‘노인은 성적 욕망이 없다’거나 ‘노인은 성적 욕망 없이 살아야 한다’는 잘못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이 성폭력에 관해서도 “부모가 노인 또한 남성임을 알고, 자녀들에게 젊은 남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경각심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우울증 노인들에게 ‘야한 비디오’

그러나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인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성 욕구를 풀고 이성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하는 것일 게다. 노인 자신을 포함, 사회적 의식 변화가 필요함도 물론이다. 이는 민간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관련 부처가 적극 나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인 관련 이슈를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아직 ‘노인의 사회생활 및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까지는 갖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측은 “현재 노년층과 관련해서는 노인복지과, 노인요양보장제도과, 노인지원과 등 3개 과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건강·의료, 취업 문제 등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데만도 힘에 부치는 실정이다. 노인의 건전한 여가생활 등은 주로 지원과가 하는 일인데, 일단 각 구청 등의 노인복지회관이나 경로당 시설을 확충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파노인복지관 김희정 사회복지사는 “이곳에 오는 어르신들은 노년을 즐기겠다는 생각이 강한 분들이다. 그러나 이성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누구누구가 사귄다는 소문이 돌면 그들을 따돌리거나 뒷말을 하는 경우도 많아 ‘커플’이면서도 숨기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여성노인 대 남성노인 비율이 7대 3인 것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노인의 性’ 아직도 민망하십니까

노년의 아름다운 사랑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그에 반해 남성 노인 수가 80%를 차지하는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이성교제가 훨씬 활발한 편이다. 송화진 팀장은 “할아버님들은 조금만 사귀다 보면 결혼하자, 같이 자자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그냥 어울리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좋긴 하지만 세상 눈이 겁나고, 또 이 나이에 새삼스레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한 할아버지는 ‘40년 결혼생활 후 혼자가 됐는데 어떻게 갑자기 성욕이 없어지냐’며 ‘자식들부터 좀 점잖이 계시라는데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렇듯 내심 이성교제에 대한 욕구가 강함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은 편이다. 각 노인회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남녀가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스포츠댄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풍기를 문란케 한다는 진정서가 보건복지부에 접수돼 일선 복지관들로 ‘스포츠댄스 프로그램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이 발송되기도 했다 한다. 손잡고 춤추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우리 노인들의 현실인 셈이다.

일본의 몇몇 양로원에서는 노인들이 우울증이나 의욕상실증을 보일 때 ‘야한 비디오’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 일을 취재한 재일 르포라이터 유재순씨는 “의기소침한 노인에게 야한 비디오는 정신적 비아그라 노릇을 한다. 노인들의 성욕은 전압이 낮은 전구와 비슷하다. 밝지 않아도 꺼지지는 않는다”는 현지 심리상담사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성욕이 살아 있다는 것은 생에 대한 의욕이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인, 이제 그들의 성에 사회가 눈 돌려야 할 때다.



주간동아 452호 (p52~53)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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