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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8084 태극전사 희망을 쐈다

김호곤號, 우여곡절의 19개월

감독 부임 때부터 반대 여론 시달려 … 프로팀들 선수 차출 거부, 주전 줄부상 악몽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최원창/ 굿데이 기자 gerrard@hot.co.kr

김호곤號, 우여곡절의 19개월

‘아쉽지만 잘 싸웠다.’2002년 11월3일 올림픽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김호곤 감독을 대한축구협회에서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는 당시 “능력이 의심스럽다”는 부임 반대 여론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았던 박항서 감독을 일방적으로 해임한 뒤 비난받고 있던 터라 김감독의 입지는 더욱 좁았다. 게다가 부산 아이콘스 창단 감독을 맡아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물러났던 터였다. 대한축구협회가 “‘실업자 구제소’로 전락했다”는 등 지도 능력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김감독은 첫 선수 소집이었던 지난해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전지훈련에 앞서 사상 초유의 대표 차출 거부 사건을 겪는다. 안양 LG(현 FC 서울)가 소속 선수들을 대표팀에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K리그 출범 후 대표팀 일이라면 무조건 희생을 감수해온 프로축구팀이 처음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봇물처럼 터진 구단들의 분노를 김감독은 홀로 버텨내야 했다. 아테네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8강에 진출한 태극호는 이렇듯 불안하게 닻을 올렸다.

김감독을 다시 만난 건 남아프리카공화국 전지훈련 직후 네덜란드에서다. 김감독은 네덜란드 올림픽대표팀과 치를 평가전을 앞두고 매우 긴장해 있었다. 2003년 2월12일 한국은 스테르담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네덜란드 올림픽팀을 맞아 1대 0으로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다.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움베르투 코엘류 당시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이 현장에서 김감독에게 축하를 전했다.

김감독은 지난해 7월 일본과 치른 원정경기에서 1대 1로 비긴 데 이어 9월 홈경기에서 2대 1로 승리하면서 비로소 축구계 안팎에서 지도력을 인정받는다. 일본과 치른 평가전을 모두 이긴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경기를 압도적으로 끌어갔다.

아시아 최종예선 ‘죽음의 조’에서 승승장구



김호곤호가 탄력받기 시작한 때는 네덜란드전 이후 무패행진을 이어가면서다. 올림픽팀은 올 1월7일 호주 원정경기에서 0대 1로 패할 때까지 8경기 연속 무패(6승2무)를 기록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후 올림픽팀의 상승세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1월 카타르에서 벌어진 8개국 친선대회에선 3승2패로 준우승을 거두며 아테네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조 편성 결과 한국은 중국 이란 말레이시아와 함께 A조에 속했다. 가히 ‘죽음의 조’라고 불릴 만했다. 특히 3월3일 중국과 치른 첫 경기는 김호곤호가 마주한 최대 위기였다. 한 달 전 일본과 치른 원정 평가전에서 맥없이 0대 2로 패하며 상승세가 꺾였기 때문이다. 1999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시드니올림픽팀이 일본과 치른 두 차례 평가전에서 1대 4, 0대 1로 패한 뒤 하강 곡선을 그린 게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중국전에서 한국은 후반 막판 최성국이 59m 단독 드리블을 한 뒤 내준 패스를 조재진이 오른발로 중국 골문에 차넣으며 1대 0으로 힘겹게 승리했다. 이어 원정경기로 펼쳐진 이란전에서는 갑자기 박지성이 팀에 합류하지 못하게 되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이한다. 당시 언론은 “박지성이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팀에 합류하지 못했다”고 전했으나 박지성의 부상은 그리 심한 편이 아니었다. 사실은 아인트호벤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을 올림픽에 출전시키지 않으려고 가벼운 부상을 차출 불가 빌미로 이용한 것이었다.

박지성을 테헤란에 데려가지 못한 김감독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박지성의 합류를 고집할 수 없는 처지였다. 때아닌 폭설로 경기장 여건이 최악이었던 테헤란 원정에서 한국은 이천수가 왼쪽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을 입고도 재치 있는 오른발 골을 터뜨려 1대 0으로 승리한다. 이란의 홈 불패 신화가 깨진 것. 이후 한국은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4연승을 거둬 6전 전승(9골 무실점)으로 아테네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는다.

아테네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도중 국가대표팀 코엘류 감독이 퇴진한 것은 올림픽팀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 협회가 국가대표팀을 무시하고 올림픽에 올인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면서 올림픽팀이 코엘류 감독을 퇴진하게 만든 주범으로 인식된 것이다.

6월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가 벌어진 포르투갈에서 만난 김감독은 시끄러운 한국을 떠나온 것을 홀가분하게 여기고 있었다. 김감독은 포르투갈에서 한국과 아테네올림픽에서 맞상대할 그리스의 전력을 분석하는 한편 올림픽 본선을 위한 새로운 구상에 들어갔다. 김감독은 필요한 선수들을 제대로 뽑지 못하는 현실을 탓하면서도 차선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네덜란드 출신의 조 본프레레 감독이 국가대표팀에 새로 부임했다. 국내 여론은 7월에 벌어지는 아시안컵과 8월 올림픽을 놓고 ‘과연 어느 대회에 총력을 기울일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협회는 올림픽팀을 선택한다.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 4강 문턱에서 이란에 3대 4로 패하자 협회의 올림픽 위주 전략이 또 한번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올림픽팀이 크게 혜택을 누린 것은 없었다. 박지성은 결국 히딩크 감독의 반대로 선발하지 못했고 와일드카드로 뽑은 송종국과 김남일이 잇따라 부상을 당하며 베스트11 구성에 차질을 빚었다. 게다가 조병국 김동진 등 주전들이 줄줄이 부상을 당해 사기는 급전 직하했다.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황금 세대’는 이처럼 갖은 위기를 견뎌내고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56년 만에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조별 예선을 통과한 김감독은 선수들에게 “조별 리그를 치르면서 우리의 장점인 단합과 조직력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8강전부터 다시 화합된 모습으로 경기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김감독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8월21일(현지시간) 열린 파라과이전에서 올림픽팀은 안타깝게도 2대 3으로 패해 4강 문턱에서 주저앉고 만 것. 수비 조직력 와해가 패배의 빌미가 됐다. 김감독은 “4강에 진출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올림픽을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올림픽에서 이룬 성과를 폄하할 수는 없다.

올림픽팀은 지난해 1월 출범한 후 1년 7개월간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넘어섰다. 이런 경험은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데 밑거름 노릇을 할 것이다. 올림픽 8강이라는 한국 축구사의 새 장을 연 황금 세대가 선배들의 월드컵 4강 신화를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06년, 2010년 월드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주간동아 450호 (p76~77)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최원창/ 굿데이 기자 gerrard@h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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