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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의 성(性)(32) | 권력가의 애정행각, 그리고 참수

여자에 눈먼 王, 선지자 목을 치다

헤롯 왕, 온갖 술수로 이복동생의 아내 취해 … 질책하는 세례 요한 목숨도 빼앗아

  • 조성기/ 소설가

여자에 눈먼 王, 선지자 목을 치다

여자에 눈먼 王, 선지자 목을 치다

클림트의 요부상을 대표하는 작품 ‘유디트1’. 대중들에게는 살로메를 그린 그림으로 잘못 알려져왔다. 그림의 주인공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구약성서의 외경 유딧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라크 전쟁과 테러의 와중에서 ‘참수(斬首)’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목을 베 죽이는 참수형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형 방법 가운데 하나다. 참수의 참 자는 차(車) 변에 도끼 근(斤)이 붙은 글자인데, 여기서 부수(部首)는 근(斤)이다. 고대에는 잘 드는 칼이 없었으므로 목을 벨 때 도끼를 사용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칼이 발달하면서 장검으로 목을 베게 되었다. 장검을 휘두르며 죄수의 목을 베는 사형집행인을 ‘망나니’라고 부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프랑스혁명 때 반역자들의 목을 효과적으로 베기 위해 저 유명한 기요틴이 활용되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도끼도 아니요, 장검도 아니요, 기요틴도 아닌 단도로 사람의 목을 썰다시피 베는 원시적인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

페이지마다 목을 베는 끔찍한 장면들이 있는 ‘삼국지’가 베스트셀러인 우리 사회에서는 참수형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역사소설에 등장하는 그러한 장면과 지금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충격의 강도가 사뭇 다르다. 성경 구약에서는 참수형이 간혹 언급되기도 하는데,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과 관련된 기사 외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세례 요한의 목이 도끼로 잘렸을까, 장검으로 잘렸을까를 따져보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세례 요한의 경우는 잘린 머리가 소반에 놓여 철없는 여자 아이와 간악한 그 어미에게 선물로 바쳐졌다는 데 비극성이 있다.

세례 요한이 참수형을 당한 이유는 당시 임금이던 헤롯 왕의 애정행각을 거세게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롯 왕은 예수가 태어날 시기에 생존했던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이다.



밤이면 헤로디아 불러내 열렬한 구애작전

헤롯 대왕은 자신의 왕위를 노린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아들들과 아내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인 임금이다. 그는 간신히 살아남은 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을 세 등분해 다스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기원전 4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어 비교적 정치를 잘 해나갔다. 로마 당국의 비위도 맞추어가면서 자신의 꿈인 헬레니즘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벌인 가장 중요한 사업은 갈릴리 호수 서안에 디베랴 신도시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디베랴는 당시 로마 황제 디베료를 축하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 그래서 갈릴리 호수가 디베랴 호수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디베랴 신도시에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지탄을 받았다.

헤롯 왕은 재임 초기에 나바티안 왕 아레타스의 딸과 혼인하여 20년 넘게 결혼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그의 이복형인 아리스토불루스의 딸이요, 이복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에게 반하여 그 여인을 얻기 위해 집요하게 구애하였다. 헤롯 빌립은 분봉왕 빌립과 다른 인물로, 한때 헤롯 대왕이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권력층에서 밀려나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헤로디아는 삼촌과 결혼한 셈인데 당시 헤롯 가계에서는 삼촌과 조카의 혼인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헤롯 가계의 쇠잔은 아마도 이러한 근친결혼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헤롯 왕은 로마로 가는 여행길에 헤롯 빌립 부부를 초대하였는지 같은 숙박시설에서 그들과 유숙하게 되었다. 헤롯 왕에게는 헤로디아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애욕은 인륜이고 뭐고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모양이다. 남편이 버젓이 있고,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이복동생인데도 헤롯 왕은 헤로디아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썼다. 헤롯 빌립이 잠든 틈을 타서 헤로디아를 은밀히 불러내어 사랑을 고백하고 자기와 결혼해줄 것을 호소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다음날 아침에는 헤롯 왕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롯 빌립 부부를 대하고, 이런 식으로 며칠 동안 계속된 헤롯 왕의 구애작전에 헤로디아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헤롯 빌립은 바로 자기 옆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키커가 골문을 향하여 공을 힘껏 차고 있는데도 멍청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골키퍼 꼴이었다.

헤로디아는 서민으로 전락한 현재의 남편 빌립과 당시 최고 권력자인 헤롯 왕을 재빠르게 비교해보았을 것이다. 왕위 계승자로까지 지목되었다가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으니 헤롯 빌립이 받은 충격도 대단하였을 것이고, 그 충격과 스트레스로 인해 남성으로서의 성적 능력도 떨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은밀히 헤롯 왕의 애무를 받아보니 이런 쾌락이 세상에 존재하였는가 싶을 정도로 황홀하였다.

조강지처인 나바티안 공주, 위기 감지하고 탈출

마침내 헤로디아는 헤롯 왕에게로 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당신에게는 나바티안 왕 아레타스의 딸이 당신 아내로 버젓이 있잖아요. 그 여자는 어떡하실 건가요?”

헤롯 왕은 자기 아버지 헤롯 대왕이 여러 여자를 아내로 삼았던 사실을 떠올렸다. 헤롯 대왕은 하스모니안의 공주 마리암, 대제사장 시몬의 딸인 또 다른 마리암, 헤롯 왕의 어머니이기도 한 사마리아 여인 말다크, 분봉왕 빌립의 어머니인 예루살렘 출신의 클레오파트라 등 여러 여자들을 한꺼번에 거느리고 있었다.

헤롯 왕은 애초에는 아내인 나바티안 공주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헤로디아를 또 한 명의 아내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헤로디아는 헤롯 왕의 유일한 아내가 되고 싶어했다.

“저를 얻으시려면 지금 당신의 아내로 있는 나바티안 공주를 버리시겠다는 약속을 하셔야 해요.”

“아내를 버리다니…. 어떻게 버린단 말이오?”

여자에 눈먼 王, 선지자 목을 치다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모로가 그린 ‘살로메’.

헤롯 왕으로서는 나바티안 공주를 버린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바티안 왕 아레타스가 아직도 살아 있으므로 어떠한 보복을 당할지 알 수 없고 백성들의 눈치도 보아야 할 사안이었다. 이 일로 로마 당국에 밉보이면 정치생명도 끝장날 위험성이 있었다.

“버리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헤로디아가 직접적으로 발설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서서히 독을 먹여 병들어 죽게 하는 것이었다. 병들어 죽었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러나 나바티안 공주는 헤로디아보다 더 현명하였다. 헤롯 왕의 마음이 헤로디아에게로 쏠리고 있음을 이미 눈치 챈 나바티안 공주는 지금 로마 여행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헤롯 일행이 돌아오기 전에 자신의 거처를 나바티안 국경 근처에 있는 마채루스의 베리아 궁전으로 옮겼다. 거기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자기 아버지 왕국으로 건너가 목숨을 보존하였다.

나바티안 공주가 사라진 것이 다행인지 화인지 알 수 없으나 헤로디아가 헤롯 왕의 아내로 들어서는 데 방해물이 제거된 것만은 확실하였다. 이 일은 경건한 유대인들의 비위를 건드리고, 급기야 세례 요한이 헤롯 왕의 애정행각이 죄악이라고 심하게 비판하였다.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지만 그래도 양심이 남아 있었는지 그의 질책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원수로 여기고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마침 헤롯이 생일잔치에서 딸 살로메의 춤 솜씨에 반하여 선물을 주겠다고 하자 딸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하라고 충동질하였다. 정치권력가의 무분별한 애정행각이 선지자 중의 선지자의 목을 가져가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주간동아 448호 (p68~69)

조성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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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40호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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