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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달리의 석판화

원화인가 복사물인가 ‘애매모호한 논쟁’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원화인가 복사물인가 ‘애매모호한 논쟁’

원화인가 복사물인가 ‘애매모호한 논쟁’

‘성경’ 연작 중 일부, 1967. 성경의 삽화로 원래 수채화로 그린 것을 다시 석판화로 옮겼다.

해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되면 문화가에 떠도는 괴담이 있다. 바로 ‘가짜’ 전시품을 둘러싼 무서운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큰 이벤트 전이 열리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전시에 나온 어느 나라 국보급 미술품이 복제품이라느니, 가짜라느니 하는 뒷소문이 예외 없이 나돈다.

그래도 이런 소문이 언론이나 학술지 등을 통해 공식화된 적은 거의 없다. 엄청난 돈을 투자했고, 그래서 1만원이 넘는 입장료를 받는 이벤트 전의 특성상 ‘심증만 가고 물증은 없는’ 불온한 소문을 퍼뜨렸다가 주최 측에 손해배상을 해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이벤트 전’은 ‘방학용’이나 ‘교육용’으로 분류되어 작품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 일반인들이 얼마나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게 보여주는가, 즉 연출의 방식에 의해 평가받는 행사가 되었다. 이벤트 전이 대개 피카소처럼 검증이 끝난 대가들의 전시이거나 외국 미술관의 ‘투어전’을 유치해 이뤄지는 것도 작가나 작품성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9월5일까지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의 400여점의 작품 중 성경에 대한 삽화의 석판화가 ‘원화가 아닌 복사물의 전시’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원화인가 복사물인가 ‘애매모호한 논쟁’

미술 자료 연구가인 김달진씨가 미술관 등의 후원으로 발행하고 있는 미술전시 전문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글이 독립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인 장동광씨에 의해 미술전시 전문지 ‘서울아트가이드’ 7월호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장씨는 이 글에서 “비싼 입장료를 지불한 입장에서 원작을 보아야 할 당연한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은 석연치가 않다. 구체적으로 ‘성경’ 연작들은 원화가 아닌 복사물의 전시였으며, 더욱 놀랍게도 카탈로그에서조차 석판화로 찍은 원화인 것처럼 표기되어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로 해명되어야 할 것인가?”라고 썼다. 글이 나간 이후 ‘서울아트가이드’가 주최 측의 항의를 받고 일부를 수거해 문제가 된 글이 실린 쪽을 뜯어내고 다시 배포하면서 미술계 사람들 사이에서 이 사건이 불거지게 되었다.

학술적 판화 연구 계기 삼아야



전시를 주최한 ㈜마이아트링크의 이경은 대표와 평론가 장씨는 이 논란이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언론에 보도되는 과정에서 감정이 악화돼 확대되었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상대방이 원하는 화해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양쪽이 이렇듯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이유는 문제가 된 작품 자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달리의 ‘성경’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달리가 성경 속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일종의 삽화로서 최초엔 수채화로 그려졌던 것을 나중에 석판화라는 대량생산 방식을 통해 다시 만들었다. 이는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의 경우 드물지 않은 작품 제작방식이며 이번 달리 전에 전시된 것도 이 석판화 본이다.

원화인가 복사물인가 ‘애매모호한 논쟁’

스페인에서 태어나 전 세계 초현실주의의 흐름을 주도한 살바도르 달리(1904~89). 사진은 1959년 달리가 지식의 상징인 민들레를 들고 촬영한 것이다.

이대표는 “이 성경 연작은 달리가 살아 있던 1967년에 제작되었으며 석판화에 달리 자신이 ‘리터치’까지 한 ‘원화’임이 틀림없다. 스위스의 스트라튼 재단에 거액을 주고 전시물과 함께 진품임을 확인하는 증서를 받았으며 이미 해외 70개국을 돌아온 전시인데, 이를 들어 ‘주최자의 윤리성’ 운운하며 가짜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씨는 “첫째, 수채화 원본을 판화 공방에서 석판화로 만든 작품을 달리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삽화책으로 나온 것을 파기하여 낱낱의 판화로 전시함으로써 이미 원본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 별도의 달리 사인이 없는 것은 이 작품을 독립된 판화 작품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표는 “스트라튼 재단에서 받을 때 이미 액자에 담긴 완전한 작품으로 받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장씨는 “글의 옳고 그름을 떠나 거액을 들인 ‘남의 잔치’의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잡지도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 그러나 평론가가 쓴 글에 대해 ‘반론 글’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나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명예가 훼손된 부분에 대해 보상받겠다”고 맞서고 있다.

이 논쟁의 표면적 이유는 판화의 ‘복제’ 또는 ‘복사’물에 대한 해석이다. 달리처럼 공사다망한 작가가 원래 수채화로 그린 작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공방에서 판화로 다시 제작했다면 그것은 달리의 작품인가? (고개를 저을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달리가 기획하고 감독했으며, 그 위에 물감으로 덧칠까지 해서 ‘유일한’ 자신만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면? (고개를 끄덕여야 하나?) 전시장에는 달리의 트레이드마크인 ‘늘어진 시계’를 이용한 가구들도 놓여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달리의 작품인가? 어쨌든 쉽지 않은 문제다.

원화인가 복사물인가 ‘애매모호한 논쟁’

시간의 숭고(브론즈,. 1977년).

감정싸움의 밑바닥에는 반복되는 이벤트 전에 대한 미술평론가의 불만이 있다. 미술전문가가 배제된 채 무역업자들이 기획하는 전시의 문제점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되었으며 이제 대개 미술전문가들은 시비 거는 데도 지친 듯하다.

실제로 얼마 전 있었던 한 대가의 전시에서는 진위 논쟁조차 불필요한 인쇄 그림들이 ‘교육용’으로 액자에 끼워져 전시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전시를 본 아이들은 결국 ‘미술품=오래되고 비싼 그림이나 조각’으로 오해하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정말 어렵게 해외의 대형 전시를 유치한 기획자들도 의심을 받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해외의 걸작을 비행기 값 들이지 않고 국내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면 감상자들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더구나 기획이 훌륭하다면 우리나라 관객들은 외국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정확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대표와 장씨가 한국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만큼 법정 밖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뤄 이번 사건이 판화 작품에 대한 학술적 연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평생을 발로 뛰며 미술 자료를 수집해온 김달진씨가, 미술관들과 화랑들의 협찬을 받아 어렵게 꾸려온 ‘서울아트가이드’가 뜻밖의 필화 사건에 휘말려 큰 타격을 입지 않아야 한다는 게 미술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80~8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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