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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

맛의 철학 ‘味學’을 아시나요

  • 김재준/ 국민대 교수 jjkim@freechal.com

맛의 철학 ‘味學’을 아시나요

맛의 철학  ‘味學’을 아시나요

음식의 맛은 향기, 온도, 씹히는 소리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연인과 함께 먹는 초콜릿의 ‘달콤 쌉싸래한’ 맛을 보여준 영화 ‘초콜릿’의 한 장면.

사람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냐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내 자신을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특화했다고 대답한다. 사실 과거에는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창조성’이라는 화두에 대한 답을 찾은 이후 따로따로 움직이던 것이 통합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문화예술과 사회과학을 하나의 틀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또는 해결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을 필요는 없으니 나 같은 성향의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나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모든 대상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먹는 행위에도 수많은 학문 분야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식품영양학에서부터 호텔경영학의 식음료 원가 계산에 이르기까지. 현재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는 맛을 분석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다. 나는 이 일을 거창하게 미학(味學)이라고 명명했다. 아름다움에 관한 철학인 미학(美學)과 발음이 같아서 재미있다. 미(味)는 미(美)와 통한다고 해야 할까. 어느 학문을 배우든지 개론이라는 과목이 있다. 정치학개론이니 사회학개론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미학개론(味學槪論)을 써보기로 했다.

맛의 철학  ‘味學’을 아시나요

다양한 프랑스 요리가 나오는 영화 ‘바베트의 만찬’의 한 장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것이 인간관계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학문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뭐 대단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고 맛을 언어로 표현하는 문제를 조금 진지하게, 유머러스하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맛있어’ ‘입에 맞아’라고 하거나, 좀더 구체적으로 ‘시원하다’ ‘달콤 쌉싸래하다’ 정도로 음식 맛을 설명한다. 그러나 음식 색깔의 조화, 입안에서의 느낌, 향기, 온도, 씹히는 소리 같은 좀더 넓은 의미의 음식 맛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들이 요리를 즐기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좋은 요리를 만들려면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조리해야 한다.

20세기 초 미술계에서 다다이즘(dadaism)운동이 한창일 때, 전위파 미술가들이 시각과 미각의 연계성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맛있는 고급 요리를 풍성하게 대접하면서 모두 파란색으로 조리해 내놓았다. 결과는 맛이 없다는 불만이 나왔다. 자연식품 중에 과일이건 채소건 파란색은 없다. 블루베리만 해도 꽃만 파랄 뿐 열매는 파랗지 않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냄새가 많이 나는 블루치즈인데, 사실은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청회색이나 녹회색을 띤다. 그러니 파란색의 음식을 대하면 일단 의심이 앞서게 된다.



음식의 맛은 입을 거쳐 목으로 넘어갈 때 가려진다. 맛을 느끼는 데는 미각, 촉각, 후각, 청각 등 감각이 총동원되어 느낀 바를 뇌에 전달한다. 뇌가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우리는 맛이 어떤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미각으로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이렇게 네 가지가 있다. 떫은맛을 더해 다섯 가지 맛이 있다고 하여 오미(五味)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혀의 끝부분은 단맛을, 뒷부분은 쓴맛, 혀의 왼쪽과 오른쪽 부분은 신맛, 왼쪽오른쪽의 뒷면은 짠맛을 관장한다. 이러한 맛들의 조합, 예를 들어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지는 맛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또 미각적으로 불쾌한 경우, 예를 들면 치약으로 이를 닦고 귤을 먹어보면 된다. 기분이 아주 엉망이 될 것이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미뢰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입맛이 떨어지는 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이는 음식의 적정 섭취량이 차차 줄어드는 것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다. 인체의 구조는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다.

맛의 철학  ‘味學’을 아시나요

여름철 건강에 좋은 ‘오미자차’.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고 하여 ‘오미자(五味子)’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나 여자친구의 요리 솜씨가 어머니의 솜씨보다 못하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맛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그건 엄마의 손맛이 아니라 당시 미뢰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억울한 여자들은(또는 남자들은) 이런 맛의 과학을 밥투정하는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이다.

맛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은 창의성 개발을 위한 가장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프랑스어로 맛이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되는지를 프랑스 메뉴와 프랑스 요리 평론을 통해 소개해보고 싶다.

이번 원고로 ‘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는 끝을 맺는다. 그동안 이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20세기 건축의 거장 미즈 반 데 로에의 말을 인용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구체적인 작은 부분에 계신다.”(Mies Van der Rohe said that “God is in the details.”)

Tips | 다다이즘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미학,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은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개인의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86~87)

김재준/ 국민대 교수 jjkim@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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