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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호와 김선일 그 불운한 만남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쟁터 기업서 사고 … “‘김선일 쇼크’ 불구 이라크 진출 막지 말아야”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김천호와 김선일 그 불운한 만남

김천호와 김선일 그 불운한 만남

바그다드의 사무실에서 종교행사를 하는 가나무역 직원들. 가운데가 김천호 사장이고 그 오른쪽에 손을 잡고 있는 이가 고 김선일씨다.

김선일씨 피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42)과 주이라크 한국대사관 등을 상대로 감사원 조사가 이뤄졌지만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감사원 조사를 여러 차례 받은 김사장은 어떤 진술을 했을까. 김사장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행적과 함께 진술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사건의 실체 접근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돼 김사장을 추적해보았다.

김사장은 매우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1962년 경기 가평군에서 3남2녀 중 넷째(3남)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서울 종암동으로 올라와 정릉천변 판잣집에서 성장했다. 숭례초등학교를 다닐 때 부모가 이혼하고 집을 떠나, 졸지에 5남매는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 첫째인 큰누나는 동생들의 밥을 해주다 지방으로 내려갔고, 큰형은 입대했으며, 둘째 형은 신문을 돌렸다.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김사장은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종암극장에서 영화간판 보조 화공(畵工) 일을 했다. 1년 후 덕수중 야간부에 입학하고도 학비가 없어 2학년 때 자퇴하고 독학으로 고입검정고시를 치른 뒤 덕수상고 야간부에 입학했으나 이 역시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 후 출판사 보조사원 등으로 일하며 독학으로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해 84년 한양대에 합격했으나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등록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입대 영장을 기다리던 85년, 대한통운의 기능공으로 취직돼 사우디 주베일로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아 ‘오리엔탈 슈퍼마켓’을 차린 큰형 비호씨(50)가 그를 불렀다. 김사장은 “큰형과 슈퍼를 할 때 비로소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라고 말한다.

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사우디 등으로 옮겨왔다. 주베일 지역에도 미군부대가 들어왔는데, 비호씨는 부대의 PX를 운영하는 AAFES(미 육·공군 복지지원단)를 상대로 식료품과 T셔츠 등을 납품하는 권리를 따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사우디는 종교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데, 이 시기 형제는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숨은 교회’에 출석해 열렬한 기독교인이 됐다. 걸프전이 끝나자 형제는 슈퍼마켓을 접고 건설 장비를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김천호와 김선일 그 불운한 만남

맨 왼쪽이 고 김선일씨다.

95년 결혼한 김사장은 사우디의 경기가 나빠지자 2001년 가족과 함께 미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오만의 무스카로 옮겨가 AAFES의 납품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 직후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즉각 알 카에다 세력과 이들을 비호하는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감행했다. 이를 본 형제는 ‘킴스 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고, AAFES로부터 칸다하르에 주둔한 미군부대에 물품을 납품하는 권한을 따냈다. 이어 미국이 이라크의 목을 조이자 김사장은 이라크로 진출할 채비를 갖췄다.

납품으로 잘나가던 ‘의지의 한국인’

성경 요한복음 2장에는 ‘갈릴리의 가나에서 열린 혼인식에 간 예수가 포도주가 없다는 말을 듣고 맹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사장은 여기서 ‘가나’라는 이름을 따 가나무역을 설립하고, 한국에 있는 여러 교회의 주보를 통해 구인광고를 냈다. 이를 보고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경쟁률이 10대 1에 육박했는데, 이때 합격한 사람 중의 한 명이 김선일씨였다.

2003년 3월19일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뒤 AAFES는 가나무역에 대해 4월에는 나시리야, 6월에는 바그다드, 7월에는 모술, 8월에는 키르쿠크 주둔 미군에게 물품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그해 6월 가나무역은 아예 바그다드에 사무실을 내고 각 부대에 물품을 공급했다. 이어 자동차와 건설 장비를 들여와 현지인들에게 빌려주는 별도의 임대업도 시작했다.

김천호와 김선일 그 불운한 만남

가운데 김선일씨가 보인다.

사업이 확대되면서 부족해진 일손은 영어가 가능한 인도인과 필리핀인을 채용해 해결했다. 이라크인들은 운전기사 겸 경호원으로 주로 채용했다. 이로써 가나 직원은 순식간에 170여명으로 불어났다. 김사장을 비롯한 한국인 직원들은 한 집에 살며 일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온누리교회의 선교사가 만든 한인교회에 다녔다.

김선일씨는 김사장을 제외하면 아랍어가 가능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학구파였던 김씨는 한 이라크인 여성 직원과 결혼을 이야기할 정도로 가까워졌다(이 여성은 지난 2월 가나무역을 퇴사했다). 지난 4월 이런 와중에 수니파와 미군이 팔루자에서 충돌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한인교회 관계자 등은 요르단의 암만으로 대피했으나, 가나무역은 바그다드에 남았다. 팔루자 사태가 진정된 5월 AAFES는 가나무역에 팔루자의 캠프 리지웨이에 주둔한 미군부대에 대해서도 납품해달라고 요청했다.

바그다드에서 팔루자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해 1시간30분 정도 달려야 한다. 팔루자는 위험한 곳이었으므로 처음에는 김사장이 직접 물건을 배달하다 이어 한국인 직원들이 운전기사 겸 경호원인 이라크인을 데리고 나가게 됐다. 5월24일 김사장은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려는 외국업체와 이라크를 연결해주기 위해 터키의 디아르바키르에서 열린 ‘이라크 박람회’에 참여했다가 30일 돌아왔다.

김선일씨가 캠프 리지웨이에 물품을 갖다주기 위해 바그다드를 떠난 것은 다음날이었다. 그런데 당일치기를 할 것으로 예상한 김씨가 돌아오지 않았다. 미군이 작전을 펼치기 위해 도로를 폐쇄했기 때문에 못 오는 것이려니 하는 사이 나흘이 흘러갔다. 이라크에서는 위성전화를 사용하는데 때마침 이 전화가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리기만 했던 것이다.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 점검을

6월3일 비로소 통화가 이뤄진 캠프 리지웨이에서는 “선일씨가 도착 당일(5월31일) 차를 타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김선일씨 신상에 변고가 생겼음이 확실해졌다. 6일 요르단으로 피신했던 한인교회의 강부호 목사가 돌아오자, 김사장은 김씨 실종을 알리고 선일씨를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이어 가나무역의 고문 변호사에게 “어느 단체가 김씨를 데리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이 변호사에게는 13살 난 딸이 있는데, 이 소녀는 아랍어를 할 줄 아는 김씨를 무척 따랐다. 딸과 잘 놀아준 김씨가 납치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변호사는 깜짝 놀라며 김씨 행방을 찾는 데 주력했다.

이라크는 부족집단적 사회이기 때문에 부족 대표끼리는 서로 통한다. 이러한 망을 통해 김씨를 납치한 조직의 상부 인물을 알아낸 변호사는 17일 팔루자로 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알았다”고만 했다는 것이 김사장의 설명이다. 그리고 20일 밤 12시쯤 모술에 가 있던 김사장은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알 자지라 방송이 김선일씨 납치 테이프를 방영하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이어 22일 알 자르카위 세력이 김씨를 살해함으로써 김사장을 비롯한 한국인들은 ‘김선일 쇼크’에 빠져들었다.

김천호와 김선일 그 불운한 만남

업무에 여념이 없던 고 김선일씨 모습.

여기까지가 김선일 쇼크를 당하기까지의 김사장 스토리다. 중동지역에서 ‘의지의 한국인’으로 성공을 거뒀던 김사장은 마지막 순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쟁터에서 빠르게 사업을 키울 수 있었지만 하이 리스크를 경시한 탓에 직원의 사고가 발생했다.

조만간 감사원의 조사결과가 발표되면 사건의 실체 접근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 이후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점검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김씨 피살에 김사장은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가 김사장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거나,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여타 기업의 이라크 진출을 무조건 막아서는 안 된다. 하이 리스크를 줄이면서 하이 리턴을 확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 이것이 김씨 피살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준 진정한 교훈이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42~43)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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