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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기사? 편하고 안전해요”

운송업체 ‘서울기획’ 사람들 … 강사들 전문 수송, 몸 불편해도 ‘베스트 드라이버’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장애인 기사? 편하고 안전해요”

“장애인 기사? 편하고 안전해요”

서울기획의 장애인 기사들. 정호병, 윤종병, 변영섭, 김진황, 유성대씨(왼쪽부터).

“기사 분들이 모두 장애인이에요. 처음에는 저 몸으로 괜찮을까 걱정도 좀 했는데 이젠 오히려 편안해요. 과속 안 하고, 난폭 운전 안 하고, 다들 점잖으시니까요.”

전국 방방곡곡 강의 많이 다니기로 유명한 한 방송인에게서 “특이한 운송업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와 기사를 함께 대여하는 식인데 그 기사들이 모두 장애인이라는 것. 그는 “강사들만을 전문 수송하는 업체라 더욱 신뢰가 간다”고 했다.

‘서울기획’이라는 이 운송업체의 사장은 김진황씨(57)다. 그 자신 왼쪽다리 대퇴부 아래를 절단한 장애인이다. 18살 때 월남전에 자원 입대했다 일주일 만에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이 회사에는 김사장 외에 비슷한 나이의 중증 장애인 기사 9명이 더 있다. 2000년부터 김사장의 주선으로 강사 수송업에 뛰어들었다. 일종의 지입차 영업이라 법적으로 문제 될 소지가 없지 않지만, 오랜 세월 직장도 벌이도 없이 고통받아온 장애인들에게는 소중한 일자리가 아닐 수 없다.

“꼭 우리 불러주는 좋은 분 많아”

이들은 모두 서울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남부장애인복지관 소속 장애인이다. 2000년, 곰두리 차량봉사대를 조직하면서 내친김에 돈벌 길도 한번 찾아보자는 뜻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기왕에 운송사업을 해온 김사장의 역할이 컸다.



“상이군인으로 제대해 고생도 많이 했죠. 그래도 한때는 안양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며 제법 자리도 잡았는데 여의치 않아, 15년 전쯤 ‘나라시 택시’ 일을 시작했어요. 자가용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니 불법이죠. 그래도 먹고살아야 했으니까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모 대학교수를 태우게 됐다. 그는 김사장의 딱한 사연을 듣더니 서류 한 장을 주며 “그러지 말고 강사를 전문적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한번 해보라”고 조언했다. 서류에는 전국의 기업체 연수원이나 대학, 문화시설, 백화점 등에 강사를 파견하는 이른바 ‘컨설팅업체’의 연락처가 가득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교수님, 강사님들을 모시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한때는 제 차 30대를 운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예전 같지 않죠. 현재 기사 수는 저까지 포함해 장애인이 10명, 일반인이 13명입니다. 신체조건 때문에 장애인 기사들에게 다양한 일을 줄 수 없는 것이 가장 맘에 걸려요.”

김사장은 컨설팅업체나 단골고객과 기사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 수고비는 건당 3000원이다. 워낙 성행하는 업태이긴 하나 지입차 영업은 법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일. 하지만 스스로 적당한 일거리를 지속적으로 따올 수 없는 장애인들로서는 주저하는 고객들을 열심히 설득해 일을 연결해주는 김사장이 고마울 뿐이다.

김사장은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꺼리는 게 사람들 심리”라며 “그래도 ‘없는 사람 돕자는 거다, 거저 달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이해해달라는 것’이라며 그냥 밀어붙인다”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개중에는 컨설팅 회사에다 ‘왜 그런 사람들을 보냈냐’고 화를 내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좋은 분들이 더 많더라고요. 일 있을 때마다 일부러 꼭 우리 기사들을 불러주시고. 다른 업체를 이용하면 차도 더 고급이고 기사들도 말쑥해서 좋을 텐데 말이에요.”

기사들이 한 달에 가져가는 수입은 1인당 100만~200만원 선이다. 여기서 LPG 연료값, 고속도로 통행료(장애인 50% 할인)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은 60만~120만원 정도. 생활을 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큰돈은 아니지만, 쪼들리는 살림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김사장은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1인당 월 300만원까지도 벌어봤다. 하지만 요즘은 영 시원치 않다. 장애인들이라고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고객도 있다. 기사 분들이 격무를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수입이 적은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장애인 기사? 편하고 안전해요”

몸 오른편이 불편해 왼손으로 시동을 거는 변영섭씨

“몸 여기저기가 자꾸 아프고, 금방 피곤해지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분들도 있고요. 예를 들어 뇌졸중을 앓은 분들은 하루 두 건 넘게 일을 하기 쉽지 않거든요. 거기다 다들 고령이잖아요.”

장애인 기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정호병씨(70)는 1994년 뇌출혈로 큰 위기를 겪었다. 많이 회복됐다지만 지금도 몸 왼편을 잘 쓰지 못한다. 장애 정도 2급의 중증 장애인이다.

“이 나이에 이 몸을 해가지고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아이들한테 손 안 벌려도 되고, 무엇보다 나다니니 속이 다 시원하고요.”

강사 수송이 주업무다 보니 전국 각지 풍광 좋은 곳에 자리잡은 기업체 연수원이 주요 목적지다. 정씨는 “좋은 공기 쐬고 점심 대접도 제대로 받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다”고 말했다.

윤종병씨(58)는 1996년 뇌출혈로 2급 장애인이 됐다. 역시 몸 왼편이 불편하다.

“손님들 중에는 저 몸으로 운전이나 제대로 할까 의심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몸이 안 좋다 보니 오히려 침착해지고 더 많이 조심하게 돼서 아직 접촉사고 한 번 난 적이 없어요.”

“몸 멀쩡한 친구들도 부러워해”

윤씨는 “언어장애가 있어 말을 편히 할 수 없는 것이 고객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저야 늘 고맙죠. 운전하기 전에는 어쩌다 공공근로 나가 푼돈 버는 게 다였거든요. 가능하면 오래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제 가장 큰 희망입니다.”

“장애인 기사? 편하고 안전해요”

월남전에서 왼쪽 다리를 잃은 김진황 사장.

유성대씨(64)는 20대에 장애인이 됐다. 그 사연이 참 기구하다. 이북이 고향인 유씨는 혈혈단신 월남해 스무 살이 되도록 고아원과 도시 뒷골목을 배회하며 지냈다. 스무 살 때 부산에서 통행금지에 걸렸다 이른바 ‘개척단’이라는 곳에 끌려갔다. 개척단은 전두환 정권 때 등장한 ‘삼청교육대’의 원조 같은 것. 부랑아나 무연고자 등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간척사업, 도로 닦기 등에 투입했다. 유씨는 전남 장흥군의 간척공사 현장으로 끌려갔다.

“끔찍했지요. 일 못한다고 맞고 말대답한다고 맞고. 물에 담가뒀던 곡괭이 자루 같은 걸로요. 제가 우리 반 반장이었는데 결국 한 친구가 관리자들한테 맞아 죽고 말았어요. 입 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일이 자꾸 꼬이는 바람에 결국 군수사대에 사실을 밝히게 됐지요. 그냥 있으면 죽겠다 싶어 목숨 걸고 탈출했습니다.”

이후에도 유씨의 삶은 신산했다. 폭행으로 다친 허리를 애써 추슬르며 공사판을 떠돌아야 했고, 어찌어찌 만나 결혼한 아내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남매를 데리고 가출해버렸다. 두 아이는 프랑스로 입양됐다고 한다.

유씨는 지금도 제대로 된 거처가 없다. 그래도 운전을 시작한 후 생활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운전할 때는 진통제를 맞아야 할 만큼 몸이 안 좋아 수입이 더 적습니다. 그래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변영섭씨(60)가 장애인이 된 것은 1993년. 당시 소규모 건축일을 하던 변씨는 공사현장에 갔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왼쪽 뇌를 다쳤다. 그 후 1년간 병을 고치겠다고 안 가본 데 없이 다 가며 노력했지만, 결국 오른편 팔과 다리를 잘 못 쓰는 3급 장애인이 됐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큼 유명한 분들도 많이 모시고 다녀요. 대부분 훌륭한 인격을 갖고 있지만 개중에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은 경우도 있지요. 휴대전화로 아랫사람에게 마구 상소리를 하거나 본인이 늑장 부린 건 생각 않고 나무란다거나.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몸 멀쩡한 친구들도 이 나이에 돈번다고 부러워하는걸요.”

변씨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일하고 돈벌고 인정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가 열심히 해야지요. 저처럼 나이 많은 장애인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 못지않게 성실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40~41)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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