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5

2004.07.29

‘한숨과 눈물’ 닦는 몽골 노동자 두영

밀린 임금 요구하다 막다른 길 ‘자살 소동’ … “열심히 돈벌어 고향에 식당 차릴래요”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7-22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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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숨과 눈물’ 닦는 몽골 노동자 두영

    임금 체불이 발단이 돼 자살 소동을 빚었던 몽골 노동자 두영(가운데)과 그를 보호하고 있는 바트(왼쪽)·아기 부부.

    몽골인 두영(41·가명)은 한국에 온 지 3년 된 합법 이주노동자다. 겉모습은 여느 한국인 아주머니와 똑같다. 스스로 ‘나 몽골인이오’ 하지 않는 이상 그를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외모가 우리와 비슷하다. 그는 지난해 남편을 잃었고, 울란바토르엔 세 자녀가 자라고 있다. 집을 팔아서 브로커에게 600만원을 주고 한국에 들어왔다. 계획대로라면 아이들을 위해 한창 돈을 벌고 있어야 할 지금 자기 집도 아닌, 몽골인 이웃의 눅눅한 단칸 지하방에서 상처 난 배를 움켜쥐고 몸져누워 있다.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머리 아픈 세상 이대로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7월14일 경기 양주시 교외에서 만난 두영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 와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하루 13시간씩 노동했고,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나 한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그는 그동안 쌓은 노력을 모두 헛되이 할 뻔했으며, 자칫 저세상 사람이 될 뻔했다.

    한창 일해야 하는데 몸져누워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4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주시의 한 원단공장에서 일하던 두영은 지난해 고국의 남편이 죽고, 혼자서 한국생활을 영위하는 게 너무 힘들어 우연히 만난 동족 노동자 K와 동거에 들어갔다. 계약동거를 한 것은 외로운 탓도 있었지만 다른 많은 이주노동자들처럼 방세와 생활비를 아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K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두영의 월급으로만 생활하려 했다. 두영은 K의 폭행에 시달렸고, 스트레스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고된 노동으로 생긴 하지정맥 증세로 심한 통증에 시달렸지만 병원비가 아까워 수술도 하지 못했다.



    두영은 미싱·원단·가구 공장 등을 전전했는데 보통 8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울란바토르 노동자 평균 임금이 20만원 정도인 것에 비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매달 40만~60만원 정도 고국에 보내고 나머지는 방세 등 생활비에 사용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다녔던 원단공장에서는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사장을 믿었다. 입사 초기엔 방세 100만원을 선뜻 내주기도 했던 이였다.

    “50일 정도 일했는데, 사장은 월급 대신 어느 땐 7만원, 10만원씩 푼돈으로 줬으며, 돈 대신 4kg짜리 봉지쌀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두영은 점점 더 생활이 어려워졌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두영은 회사로 찾아가 밀린 임금 77만원을 요구했고, 사장은 언제까지 오라는 식으로 미루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두영은 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의정부고용안정센터나 서울 종로5가의 직업소개소를 수없이 들락거렸다. 그러나 불황이어선지 일할 수 있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밀린 임금을 받으면 몽골 고향 집에 가서 다리 치료를 받고 쉬기를 바랐다. 몸도 마음도 지쳤던 것이다.

    “월급 주세요, 다리 아파요, 몽골 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사장을 찾아갔다 빈손으로 온 날 그의 집에 쌀이 떨어졌다. 한 끼를 굶고 두 끼를 굶은 것이 사흘째. 자신이 보내줄 돈을 기다리고 있을 고향의 아이들 생각에 잠도 자지 못했다. 어찌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두영은 며칠째 그를 들볶던 K와 마지막 남은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소주를 함께 마시고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7월1일 밤 두영은 양주중앙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혼자였다. 이날 새벽 이웃 마을에서 살고 있던 몽골인 바트·아기 부부는 K가 다급한 목소리로 잠을 깨워 두영에게 사고가 난 것을 알게 됐다. 바트 부부는 배 두 군데에 상처를 입고 피 흘리는 두영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소식을 듣고 양주외국인노동자의집 김영미 소장과 자원봉사에 나선 소파회사 미투넷의 최성재 사장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두영은 자해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한 곳은 자해한 상처일 수 있지만 다른 한 곳은 스스로 찔렀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깊이 찔렸다”고 말했다. 김소장이 누가 찔렀냐고 묻자, 두영은 아무 대답도 않고 떨고만 있었다.

    ‘한숨과 눈물’ 닦는 몽골 노동자 두영

    서울의 한 중소기업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두영과 동거했던 K는 병원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K는 두영이 숙소를 얻으면서 냈던 보증금 100만원 가운데 방세 30만원을 주인에게 주고 나머지를 갖고 달아났다. 병원비는 300만원이 넘게 나왔다.

    “두영은 깨어나자마자 빨리 퇴원하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병원비가 77만원을 넘어서면 자신이 갚을 능력도 없고, 몽골에도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김영미 소장)

    김소장은 중앙병원 박대규 원무과장에게 두영의 사정을 설명했고, 양일종 원장은 병원비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양원장은 “두영은 의료비 지원이 안 돼 병원비가 더 비싸게 나왔는데 처지가 하도 딱해 병원비를 받을 수 없었다”며 선행을 감추려 했다. 이 병원엔 가끔 두영처럼 오갈 데 없는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이 와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두영의 자살소동은 체불임금이 발단이었다. 밀린 임금만 받았더라면 두영은 지금쯤 고향 땅에서 편히 쉬며 다리를 치료하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 양주지역 섬유·가구공장들이 불황 속에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은 게 사실이다. 최성재 사장은 “개중 90%의 기업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잘하고 있고, 5%는 고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고, 5%는 불황으로 어쩔 수 없이 임금을 체불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숨과 눈물’ 닦는 몽골 노동자 두영

    두영의 수술비 300만원을 받지 않은 양주중앙병원 양일종 원장

    두영이 최근까지 일했던 공장의 사장은 “두영이 회사에서 말도 잘 안 듣고 대꾸하는 등 행패도 부린 나쁜 사람이며, 한국인 알기를 우습게 한다”며 “두영에게 줄 밀린 임금은 30만원도 안 되지만 회사가 어려워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와 전화 통화했을 때 그는 사업차 필리핀을 방문 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영은 수술이 잘 돼 휴식만 잘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배에 물이 차 있어 통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바트의 집에서 10여분 걸어나가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없다. 통원 치료비는 하루에 4만원 정도 든다. 약값도 없는데 최사장이 병원비에 보태쓰라며 봉투를 내놓았다.

    세 자녀와 가족 생각에 눈시울

    두영의 수발을 들고 있는 바트 부부는 불법체류자다. 아기는 “두영은 남들을 잘 도와주는 착한 언니다”고 말했다. 아기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들을 인편으로 고향 부모에게 보내고, 남편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바트는 한 달 전 실직했지만 불법체류자라서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불황 탓도 있지만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본격 실시하면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단속이 강화돼 생긴 현상이다. 두영은 다시 가족 생각에 눈시울을 적신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니 꿈만 같아요. 한국에 좋은 사람 많아요. 한국인과 일하는 것 좋아요. 몸이 나으면 열심히 돈벌어서 고향에 가고 싶어요. 고향에 가서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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