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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女와 200% 완벽男의 만남

‘캔디와 왕자’형 드라마 세 편 인기 폭발 … 뻔한 스토리 불구 맛깔스런 대사•연기 ‘시청률 쑥쑥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2% 부족女와 200% 완벽男의 만남

2% 부족女와 200% 완벽男의 만남

만화 주인공 캔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지만, 참 가진 게 없는 사람… 돼지저금통에 동전 모아본 적 없을 거구, 길거리에서 떡볶이 순대 사먹어 본 적 없을 거구, 누구 앞에서건 편하게 울어본 적 없을 거구, 기억은 많지만 추억은 없고, GD자동차 사장 아닌 다른 삶은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거구, 아마 자기 그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걸? 고개를 떨구고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을 테니까.’(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 중 태영의 대사)

‘야, 이게 국이냐 찌개냐’/ ‘국도 되고 찌개도 되고, 멀티플레이어!’(KBS 드라마 ‘풀하우스’ 중 영재와 지은의 대사)

‘나 메이드 인 코리아다. 그것도 못 알아보냐, 이 꽝태자야?’(MBC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 중 유빈의 대사)

시청률 50%를 넘보는 ‘파리의 연인’과 함께 1강2중 구도를 이루고 있는 드라마 ‘풀하우스’와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시청자들이 뽑은 명대사 명장면 중 하나다. 같은 시기에 방송되고 있는 세 편의 드라마는 200% 완벽한 왕자와 모든 면에서 2% 부족한 ‘캔디’, 인간적인 남자 친구, 그리고 이 모범적인 삼각관계를 야비하게 비틀어놓기 위해 등장하는 이라이자 등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닮은 캐릭터들의 갈등 구조로 엮어진다. 그럼에도 세 편은 서로의 시청률을 깎아먹기는커녕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더 달거나 좀더 상큼한 맛을 내세워 입맛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시청률에서 상승 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주(박신양 분, ‘파리의 연인’)의 차갑고 달콤한 프로포즈를 봤으니, 이번엔 건희(차태현 분, ‘황태자의 첫사랑’)의 울퉁불퉁한 말대답을 들어볼까, 하는 식이다.

한 제작진은 “해외촬영 중에 세 편이 똑같다는 정보가 나돌아 걱정했는데,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시청자층을 제한하는 트렌드 드라마와 달리 초등학생에서 30대 후반 시청자까지 폭넓은 시청자들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도 세 멜로물의 특징이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들이 “돈 많은 기주(박신양 분, ‘파리의 연인’)를 고를까, 터프한 영화배우 영재(비 분, ‘풀하우스’)를 고를까 고민이에요”라고 고백하는가 하면, 한 중학교 남자 선생님은 열흘 가출했다 돌아온 여학생에게 “애기야, 어디서 뭐 하고 놀았니?”(박신양의 대사) 했더니, 그 문제아가 김정은처럼 웃으며 감격해하더라는 실화도 전한다.



10~30대 문화 코드 맞춘 기획 ‘주효’

남성 문화평론가 고길섶씨는 “먹어주는 드라마다. 남자들이 봐도 거부감이 없어서 열심히 보게 된다”고 털어놓았고,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도 “‘파리의 연인’은 예외적으로 남편이 나보다 더 좋아하는 드라마”라고 말한다. 각각 뉴욕과 파리, 도쿄 메트로섹슈얼의 대표처럼 보이는 기주와 수혁(이동건 분), 건희의 패션이 남성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펑키한 태영의 옷차림이 동대문 패션몰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처럼 세 편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우선 10대부터 30대까지 시청자들의 문화 코드에 맞춰 정확하게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2% 부족女와 200% 완벽男의 만남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

세 편의 드라마는 젊은 작가(30대 초)와 연출자(30대 중•후반) 등 젊은 제작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들은 일본 만화와 할리퀸 문고를 보고 자랐으며, 미국적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맛본 만큼 치부(致富)에 대한 청교도적 거부감이 적은 대신 궁핍에 대해서는 공포에 가까운 현실적 두려움을 갖고 있기도 하다. 배수아 등 일련의 젊은 작가들이 잔인하게 묘사하는 바, 가난과 실업, 경쟁에 대한 젊은 세대의 두려움이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한 비판을 입맛 떨어지게 했다는 것을 이들 드라마의 성공이 보여준다.

“‘풀하우스’는 아예 원작이 만화이기도 하지만 세 드라마 공히 대사나 말투, 감정 표현이 만화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지요. 외주 제작이 많아지면서 제작진 자체의 연령이 내려간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 이유가 될 겁니다.”(이호성 제작 PD, ‘풀하우스’) ‘파리의 연인’이 시작되는 파리라는 환상적인 도시,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대부분 배경 장면을 이루는 클럽 메드의 휴양지, ‘풀하우스’의 세트장이 들어선 바닷가는 간접광고(PPL)에 대한 시비를 떠나 드라마를 위한 만화적 공간으로 제공된다. 실제 여자 주인공들은 당장의 생계와 취직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시계가 자정을 알릴 때까진’ 오트쿠튀르의 드레스를 입거나 열대의 태양을 즐길 수도 있고 날마다 풀사이드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시청자들의 ‘심리적 리얼리티’를 획득한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대사에서도 세련된 수준에 이르렀다. 남자 연인들은 80년대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사랑해, 사랑한다니까” 같은 대사를 결코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그 대신 “애기야” “이 안에 너 있다” “질투 나서 죽을 거 같아” “니 냄새, 니 그림자가 예쁘다”고 말한다. 사회적 계급적 차이가 있는 황태자들은 연인에게 동등한 자격을 허락하고 ‘우정’을 과시한다. 그래서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만하고 불손하면 할수록 인간적으로 보인다.

2% 부족女와 200% 완벽男의 만남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

지나친 사치품•간접광고 ‘눈살’

연기력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남자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다면, 여자 주인공들은 놀라울 만큼 똑같은 ‘캔디’의 모습으로 겹쳐진다. 예쁘지만, 예쁜 줄 모르기에 ‘팜므파탈’이 되긴 애초 틀렸고, 순진하지만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2% 부족하다. 태영은 자동차할부 계약서도 해독하지 못하고, 유빈은 회사 입사 절차에 무지하며, 지은은 사기를 당할 만큼 모두 사회 생활에 문제가 있다. 이들은 ‘싱글즈’로 살기는커녕 ‘결혼하고 싶은 여자’나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유능하고 독립적인 여자 주인공들에 비하면 확실히 ‘퇴행’했다.

아마도 ‘엽기적인 그녀’에서 비롯된 듯한 캐릭터, 예쁘지만 남자를 덫에 옭아맬 위험이 없고, 남자의 사회적 영역을 넘볼 능력이 부족하며, ‘무엇보다 남자들이 보내는 구원의 메시지를 기다림으로써 그들을 더욱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캐릭터’(심영섭)가 스테레오타입화한 여자 주인공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평범한 여자들로 하여금 ‘나도 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팬터지다. 김희선이 등장하는 ‘토마토’ 이후 반복되는 환상이며, 시청률을 확실하게 올리는 장치다. 이런 드라마의 성공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바랄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난나, 드라마폐인•문화평론가)

여성 문화평론가들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역으로 현실의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위기를 표현하는 듯 보인다. 크게 늘어난 여성 정치인이나 관료, 여성 기업인들이나 문화이론가들은 결코 완벽한 황태자일 수 없는 남성들에게는 반갑잖은 존재다. 역사적으로 근대 초기 남성들은 여성들의 과도한 지적 활동이 히스테리를 일으킨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경제 공황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가정과 모성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위기감을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정이현)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이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바람난 가족’ ‘4인용 식탁’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을 보자. 그들이 가진 여성성은 가부장적 체제를 흔들어놓는 공포의 근원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의 연인’과 ‘황태자의 첫사랑’, ‘풀하우스’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을 위로하는 팬터지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시청자들을 위해 등장하는 온갖 사치스런 자동차와 패션, 팬시한 공간이 너무 자주 노출되어 오히려 환상을 깨뜨린다는 점이다. 이 과도한 간접광고들은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며, 제작비의 절반을 협찬사로부터 받아야 하는 가난한 드라마의 현실을 드러낸다. 협찬사가 시청자들과의 ‘거리두기’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박신양, 김정은, 송혜교 등의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70~7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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