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5

2004.07.29

독자 눈길 잡기 ‘이벤트 전쟁 중’

출판계 고가 경품 내걸고 불황 탈출 판촉전 … 책값 거품•양서 기반 붕괴 우려 목소리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7-22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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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눈길 잡기 ‘이벤트 전쟁 중’
    ‘구입 고객에게 300만원 상당의 여름 휴가비를 지원합니다.’ ‘1등 6명에게 호텔 2박3일 이용권을 드립니다.’ ‘5명에게 25만원 상당의 성장탕을 드립니다.’ 백화점 판매 이벤트가 아니다. 책을 사는 고객에게 주겠다는 서점과 출판사의 광고문구다. 서울 시내 대형서점에 가면 이런 돌출광고(POP)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것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서점 통로에서 이런 이벤트가 이뤄진다. 어느 곳보다 심각한 불황을 타고 있는 출판계가 고가의 경품들로 독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추첨을 통해 고객에게 상품을 주는 현상 경품뿐 아니다. ‘최고로 만드는 CEO식 자녀교육’은 선착순으로 300명에게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지급하고 있고, 소설가 이외수의 ‘바보 바보’는 그의 다른 수필집과 함께 구입할 경우 고급 찻잔세트를 주고 있으며, ‘집이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는 클리닝 서비스 10% 할인권을 제공했다.

    베스트셀러는 경품이 결정?

    인터넷 서점들도 마찬가지. ‘세상 끝의 정원’을 구입하면 ‘내 생애의 아이들’을 한 권 더 주고, ‘다 빈치 코드’는 추첨을 통해 제주도 항공숙박권을 제공하며, ‘칼의 노래’ ‘현의 노래’는 리츠칼튼호텔 2박3일 이용권을 공모 경품으로 내걸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별도의 이벤트 코너를 만들어두고 있는데, 이벤트 수가 100여개를 훌쩍 넘는다. 공정거래위원회 경품고시에 따르면 ‘소비자 경품은 상품 거래액의 10% 이내, 공모 등을 통해 추첨하는 현상 경품의 경우 100만원 한도에서 예상 매출액의 1% 이내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규정을 어기고 있는 곳도 있는 것이다. 한 중견 출판인은 “얼마 전 한 인터넷서점에서 몇 개 출판사와 연합해 책을 산 사람들 가운데 추첨을 통해 ‘SM5’를 준 일도 있었다”며 “출판사들은 경품 등의 이벤트를 통한 전략적인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베스트셀러가 책 내용의 질을 떠나 경품으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베스트셀러 가운데 경품 제공이나 할인 이벤트 등을 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한국출판인회의가 7월7~13일 교보문고, YES24 등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의 도서판매 부수에 근거해 집계한 7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 20위권 안에 5권이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베텔스만코리아의 ‘다 빈치 코드’, 아울북의 ‘마법천자문’, 오래된미래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생각의나무의 ‘칼의 노래’ 등이 그것.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요즘 평균적으로 하루 출간되는 책은 100여권에 이른다. 한 달이면 3000여권. 불황인데도 책의 발행 종수는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책을 진열할 수 있는 서점의 매장 공간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대형서점이 소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데 반해 중소서점은 큰 폭으로 줄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국내 서점의 절반이 문을 닫았다. 1994년 5683곳에서 2002년 2328곳으로 줄어, 2004년에는 서점 수가 2000곳에도 못 미치고 있다. 서울 시내에도 올 들어 4월까지 42곳이 문을 닫았다. 이 가운데 80%가 넘는 곳이 50평 미만의 중소서점으로 추정된다. 또 최근 육가와 대덕문구 등 대형 도서유통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서점과 출판사들의 손실이 이어졌다. 베스트셀러도 발행부수가 크게 줄어 지난해의 절반 수준밖에 팔리지 않고 있으며, 4월 말 기준 단행본 출판사의 매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60%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출판사들은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독자의 눈길을 잡아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출판 생각의나무 김수환 편집장은 “대형서점에서 사람들 눈에 많이 띄는 곳에 이벤트 매대를 따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거기에 참여하면 책 판매에 유리할 것 같아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책값은 1만원 정도인데 수십만원의 경품을 내걸다 보니 비용 대비 효과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띄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모든 책을 이벤트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대중성과 상업성을 갖고 있어야 효과를 미리 짐작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요즘엔 ‘이 정도 책이라면 팔리겠지’ 하고 만드는 책들조차 독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서점의 이벤트에 참가하거나, 독자적 경품 행사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도서 판매 이벤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출판인들도 있다. 한 중소 출판사 사장은 “휴가철, 독서의 계절 등 특정한 시기에 서점이 중심이 돼 여러 출판사가 함께 참여하는 공모 이벤트는 경품 내용이 반문화적이지만 않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 관심을 갖게 한다는 면에서 장려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참가비가 50만원 정도면 서점에서 매절로 100여부를 가져가기 때문에 출판사에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처럼 판매액의 일정액을 아프리카 난민 돕기에 쓴다는 공익성 이벤트는 독자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지나친 가격 할인 ‘눈속임’ 여전

    물론 출판사가 직접 나서서 공짜 물품을 주는 것은 그것이 결국 책값에 반영돼 독자와 타 출판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또 고가의 이벤트를 하기가 부담스러운 중소 출판사의 경우 필자 구인난에 시달리게 된다. 필자들은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는 출판사를 처음부터 배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중견 출판사 편집자는 “요즘 필자들은 출판사가 어떤 이벤트를 해줄 수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묻는 경우가 많아 필자 잡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독자 눈길 잡기 ‘이벤트 전쟁 중’

    주요 인터넷서점 홈페이지에서 각종 이벤트 행사를 알리고 있다.

    출판계의 정상적인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은 경품 경쟁뿐 아니다. 지나친 가격할인 경쟁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는 1년 미만의 신간에 대해 정가를 지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책의 경우 특별한 규제가 없어 온라인 서점들은 여전히 할인 이벤트를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할인 이벤트야말로 가장 저열한 방식의 판매 촉진책이다”며 “처음부터 가격을 높여놓고 할인 폭을 키워가는 것은 독자를 ‘눈속임’해 이익을 취하려 드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경품 경쟁이나 출판과 동떨어진 고가의 이벤트들은 양서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런 일회성 행사들은 그만큼 책값의 거품을 형성하고 대중성 있는 책만 출판되는 풍조로 이어지기 십상이란 것이다. 그만큼 독자들은 양서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전에 없이 고가의 경품이 제공되고, ‘제 살 깎기’인 할인 이벤트가 지속되는 비정상적인 출판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차장은 “바람직한 방향은 출판사들이 콘텐츠 경쟁을 통해 넘치는 정보 속에서 독자가 찾는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서출판 마음산책 정은숙 사장은 “지금은 단순히 경제불황을 이기는 차원의 고민에서 벗어나 출판 개념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며 “저작권 시대가 열리면서 해외 작가도 국내 작가 못지않게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는 글로벌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으려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의 현대화도 필수적이다. 책을 서점에 맡겨놓고 팔린 만큼만 수금하는 위탁거래제 아래에서는 출판사들이 어음부도를 피할 수 없고, 그 피해는 출판사와 서점에 고스란히 돌아간다. 따라서 이 제도를 전산화를 바탕으로 한 신용거래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불황을 이기려는 출판계의 몸부림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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