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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 정보는 없다?

“경찰 정보와 다를 게 없다” 함량미달 정보 판쳐 … 靑·與 노골적 실망 ‘차장 교체설 솔솔’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국정원에 정보는 없다?

국정원에 정보는 없다?

국가정보원 고영구 원장(가운데)과 염돈재 1차장(왼쪽), 박정삼 2차장.

청와대는 7월13일 일부 언론에 ‘국가정보원 염돈재 1차장, 박정삼 2차장의 교체 가능성’이 보도되자 즉각 부인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국정원 1, 2차장 교체에 대해 검토하거나 내부에서 거론된 적도 없다”면서 “국가 중요 정보기관의 최고위급 인사 문제가 정확한 근거 없이 보도되는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국정원 1, 2차장 교체설’은 여전히 정치권 주변을 흘러다니고 있고 국정원 안팎에서는 하마평이 무성할 정도다. 일각에서는 최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만났다는 얘기가 나도는 전직 국정원 간부 L씨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원을 떠난 C씨, 또 다른 L씨 등이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뒤의 L씨는 현재 국정원 유관기관 간부를 맡고 있다.

국정원 1, 2차장 교체설이 이처럼 끈질기게 나돌고 있는 이유는 현 수뇌부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실망감’도 한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동안 “국정원에서 올린 정보가 경찰 정보와 별로 다른 게 없다. 국정원이 뭣 때문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한 측근 의원은 “당 의장에게도 정보가 오긴 오는데 별 내용이 없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의 정보는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에게 날마다 전달된다. 일각에서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가 청와대로 올라오는 모든 정보를 독점한다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국정원에서는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올리는 A보고를 비롯해 대통령비서실장 및 정책실장, 각 수석비서관 등에게 보안 등급을 달리한 보고서를 올리고 있다. 대통령에게 직접 하는 국정원장의 주례보고는 폐지됐지만 몇 차례 대통령 직접 보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정보에 대해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이 불신을 토로하는 것은 국정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기대 수준이 각기 다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국정원 정보가 ‘찌라시’(증권가에서 떠도는 확인되지 않는 정치권 등의 소문을 모아놓은 정보지) 수준인 경우도 있다. 특히 여당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 가운데는 해당 인사를 잘 아는 사람이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김선일씨 사건 통해 해외정보 부재 ‘입증’

청와대 관계자들이 국정원의 한심한 정보수집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때 꼽았던 게 송광수 검찰총장에 관한 정보 보고였다. 지난해 10월 무렵 국정원은 “송광수 총장이 최근 들어 룸살롱을 자주 출입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를 올렸는데, 이를 받아본 문재인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크게 화를 내고 국정원 측을 질책했다는 내용이다. 송총장의 주량이 맥주 한두 잔이라는 것을 잘 아는 문수석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보고였기 때문.

이에 대해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은 과거와 달리 특정인의 뒤를 캐는 식의 정보를 올리지 않는다”면서 “나도 그런 소문이 밖에서 나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 관계자는 “그 얘기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청와대에서 그런 얘기가 나돌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해외정보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 납치 살해 사건에서도 일부 제기됐다. 물론 주이라크 한국대사관 측과 국정원의 이라크 파견관이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에게 여러 차례 테러 위험성을 경고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게 국정원 내부의 평가다. 그러나 실제 김선일씨가 납치된 이후에는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에서 정권 교체 때마다 약속한 ‘국정원의 해외정보 강화’가 말로만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국정원에 정보는 없다?

올 6월23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고 김선일씨 피랍사건 관련 합동회의에 참석한 이종석 NSC 사무차장과 조영길 국방부 장관, 기문 외통부 장관(오른쪽부터).

국정원 정보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국정원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이 국정의 중심 역할을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정원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국정원이 우리당의 내부 사정을 정확히 꿰뚫는 정보를 올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국정원의 정치 개입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런 의미에서 국정원의 일일보고 중 10%만이라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성공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 파견됐던 한 경제관료는 “국민의 정부 당시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문제를 경고한 국정원 정보를 보고 금융감독원 쪽에 물어봤더니 ‘걱정할 것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쯤 뒤에 현대 문제가 터졌다”면서 “국정원의 역할을 시중에 나도는 소문 등을 나름대로 분석해 ‘예방 정보’를 생산해내는 것으로 한정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의 청와대 관계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

국정원 쪽이라고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양질의 정보를 원한다면 국정원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한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우리당 한 의원도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등 국정원의 권한을 제한하는 측면에서의 개혁에는 성공했지만 국정원의 기능과 몫을 재정립하는 데는 정권이나 국정원 모두 소홀히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간부 자질론·편중 인사론 등 문제 제기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한 경제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경제부처에 출입하는 국정원 조정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참여정부 들어 경제 관련 파트를 해외 담당인 1차장 산하로 옮겨 국익정보실로 통합했지만 해외전문가인 1차장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국정원 개혁 차원이라고 하는데, ‘눈 가리고 아옹’하지 말고 다시 2차장 산하로 보내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국정원 간부들의 ‘자질론’도 거론된다. 참여정부 들어 승진한 일부 간부 가운데는 국민의 정부 시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인사도 있다는 것. 특히 미모의 여인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부하 직원들로 하여금 이곳으로 와서 결재를 받게 한 간부도 요직에 기용됐다는 게 전직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리당 내부에서도 “그 업무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국정원에 정보는 없다?

2003년 6월20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직원들과 오찬을 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의 출신지에 따른 ‘지역 편중 인사’ 논란도 국정원의 내부 역량을 갉아먹고 있다. 6월 정기인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 인사들이 핵심 요직을 장악, 다른 지역 출신 직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는 것. 국정원의 한 전직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 시절 특정 지역 편중 인사가 문제가 됐는데, 참여정부 들어 그들 대신 또 다른 특정 지역의 ‘편중 인사’ 논란이 이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 지역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쪽에 ‘줄’을 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점. 국정원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신건 전 원장이 고영구 원장에게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 쪽에 국정원의 내부 문건을 건네준 것으로 의심되는 간부들에 대한 자료를 전해주었는데, 이 자료에 포함된 간부 한 사람은 참여정부 들어 오히려 요직에 기용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보위 소속 우리당 한 의원은 “정권교체 때마다 계속되는 순환인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기능과 역할을 정확히 정립한 다음 각 직무에 맞는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발탁하는 방식의 인사를 하지 않고, 과거 정권에서 ‘물먹던’ 인사들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요직에 등용하는 ‘순환인사’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정원 개혁 작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34~35)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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