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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실세들 방에선 지금 무슨 일이 … 친노 사랑방 207호, ‘짐승(기자들) 출입금지’ 709호 화제 만발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국회의원회관 전경.

국회의원회관 323호. 6월 초 이 방을 방문한 인사들은 한쪽 벽에 걸린 ‘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대붕역풍비 생어역수영)’이라는 글을 볼 수 있었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뜻으로, 시대 흐름에 안주하지 않고 불합리함에 맞설 줄 알아야 ‘큰 새(大鵬)’가 되고, ‘살아 있는 물고기(生魚)’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을 쓴 주인공은 노무현 대통령. 총선에 출마한 핵심 측근을 격려하기 위해 노대통령이 쓴 유일한 글임이 알려지면서 한때 이 글은 국회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 글은 그 직후 사라졌다. 이 323호의 주인은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문희상 의원이다. 노대통령의 정치특보로, 한때 마패까지 찼던 이 방의 주인을 찾아 현역 의원과 기자 및 각계 손님들이 몰려든다.

의원회관은 정치인들의 정치행위가 시작되는 곳이다. 정책을 연구하는가 하면 민원과 청탁 등 음습한 로비가 횡행하는 곳도 의원회관이다. 17대 국회 개원 한 달이 지난 지금 의원회관 실세들의 방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당분간 봉숭아학당 폐지할 것”

문의원의 방은 기자들이 많이 찾는다. 기자들은 이 방을 ‘봉숭아학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6월 초, 문의원은 민주당과의 합당 등 현안을 던져놓고 기자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를 만나지 않고서는 그날 기사를 끌고 갈 수 없는 상황. 기자들은 바로 문의원을 수배해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긴급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곳으로 쳐들어온 기자들을 상대로 국회 본청 앞에서 간이 기자회견을 하던 문의원은 기자들의 ‘허기’가 생각보다 심하다고 판단했는지 “차라리 봉숭아학당으로 가 2라운드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봉숭아학당의 수업은 1시간 넘게 진행됐고, 다음날 정치면은 ‘문희상 훈장’의 강의 내용이 사방팔방에 내걸렸다.



문의원은 있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스타일이다. ‘차라리 얘기할 테니 쓰지는 마라’는 식이다. 기자들은 “정치특보에서 밀려났지만 문의원 말에는 틀림없이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을 것”이란 ‘근거 없는’ 확신에 자주 빠진다. 문의원 측 한 관계자는 “당분간 봉숭아학당을 폐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원이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아 본청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국회의원회관 복도.

문의원 방은 갈등과 분열을 녹이는 접착제 노릇을 해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통일부 장관직’을 놓고 갈등을 보이던 6월의 일. 양측의 팽팽한 긴장감이 우리당을 감싸자 문의원은 이들을 차례로 만났다. 문의원은 이들에게 청와대와 당,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달했다고 한다. 323호실의 중재와 경고 메시지는 양측을 압박하는 데 적지 않은 구실을 했다고 한다.

문의원 방은 의원들도 자주 찾는다. 유인태 의원을 비롯해 이광재 서갑원 문학진 김현미 백원우 의원 등이 그들이다. 한 측근은 “3층 출입구에 있다 보니 오다가다 문의원이 있으면 들어와 커피 한잔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봉숭아학당이자 사랑방이었던 셈. 323호실의 전 주인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었다.

국회회관 207호 이광재 의원 방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분류된다. 데니스 할핀 미 하원 외교분과위원회 동아시아 담당 수석 보좌관과 의회 관계자 5명이 이의원 방을 찾은 것은 6월30일. 한 분야를 수십년씩 연구하는 미 의회 보좌관들은 의원들의 정책 입안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날 회동을 주선한 유재건 의원 측은 미 의회 관계자들이 이의원을 면담 대상자로 ‘찍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이의원은 5월 극비리에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존 볼튼 차관,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 등 미 국무부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노대통령의 대미인식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워싱턴 정가가 국회의원회관 207호실을 주시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워싱턴이 주시하는 방이라면 국내 정가도 눈길을 떼기 어렵다. 이의원의 방은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다. 이에 대한 한 측근의 설명이다.

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2004년 2월 담소 중인 유인태 문희상 의원

“4개 시·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당연하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와 관련해 도청 직원들이 찾아오고, 도의회 인사들도 수시로 207호실 방문을 노크한다는 것. 상임위(산업자원위) 관련 부서에서도 직원들이 인사를 온다. 그리고 207호실은 친노(親盧)인사들의 사랑방 구실도 한다. 이기명 전 노무현 후보 후원회장 등도 곧잘 방문한다. 이의원의 한 측근은 “이 전 회장이 국회를 방문하면 가끔씩 들러 가볍게 차를 마신다”고 말했다.

한번 실세는 영원한 실세?

이의원은 한때 ‘우광재’로 불렸다. 지금도 실세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구중심처(청와대)에 숨어 있던 시절 그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207호실에 가면 누구나 쉽게 그를 만나고 대화할 수 있다. 과연 청탁과 민원은 없을까. 역시 측근의 설명이다.

“전혀 없지는 않다. 일전에 나이가 많이 든 분이 인사 문제를 상의해온 적이 있다. 그분에게 ‘우리를 보는 눈이 의외로 많다. 참여정부의 생명은 도덕성이다’는 우리 방이 정한 원칙과 기준을 설명해주었다.”

이의원 방은 기자들도 한때 단골이었다. 기자들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그가 청와대 사정에 정통할 것으로 지레짐작한다. “그에게서 ‘노심(盧心)’을 읽을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하는 기자들이 꽤 있다. 그러나 이의원의 방을 취재해본 기자들은 이런 생각이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인정한다. 그의 방에서 정국 현안과 관련된 얘기를 듣기는 어렵다. 이의원의 관심은 ‘경제’다. 지금까지 정무로 노대통령을 보좌했다면 이제는 경제 관련 입법 등을 통해 ‘주군’을 돕겠다는 것이 이의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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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씨

이런 생각을 파악한 기자들은 이후 발걸음을 끊었다. 그럼에도 “이심(李心)은 노심”이란 기자들의 강박적 확신은 멈추지 않는다. 이해찬 총리 지명 직전 출입을 한동안 자제하던 기자들은 경쟁하듯 안테나의 초점을 207호실에 맞췄다. 중앙일간지 한 기자는 “총리 지명 전날 이의원은 누가 지명될지 아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당시 이의원 방을 찾아 대화를 나눈 우리당 L의원은 “한번 실세는 영원한 실세 아니냐”라는 말로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이의원은 6월 의원회관 복도에서 학교 운동권 선배이자 다른 의원 보좌관인 A씨를 우연히 만났다. 이의원은 대뜸 “형”이라고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며칠 후 이 보좌관은 이의원과 차를 앞에 놓고 학교, 국회, 청와대, 정치 얘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의원은 회관 자기 방을 드나들 때 양복 상의를 벗어 어깨에 두르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90년대 초 노무현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때의 버릇 그대로다. 국회 207호실은 권위보다 실용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이광재 의원.

우리당 국회의원 82명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노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씨의 구명을 위해 재판부에 탄원서를 낸 것은 6월7일,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동지를 변호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며 집단 탄원에 나선 그들은 당당했다. 집단 탄원이 몰고 올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했음에도 동참 제의를 거절한 사람은 드물었다고 한다. 국회 실세들과는 다른 형태지만 안씨가 궐 밖 또는 옥중 실세임을 볼 수 있는 사례다. 영어의 몸이지만 안씨도 자신만의 방을 갖고 있다. 비록 0.98평의 제한된 공간이지만 그 방 역시 정치권의 주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교도소 주변에서는 안씨에게 전해지는 영치금과 각종 영치물이 웬만한 중진 정치인을 능가한다는 소문들이 흘러나온다. 옥중 그의 말은 공개되기 무섭게 기사화된다. 조선 태종의 양위(讓位) 파동을 거론하며 존재를 한껏 과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의 말은 곱씹을수록 색깔과 깊이가 달라진다. 그를 잘 아는 우리당 초선의원 J씨는 “(안씨의 말은) 담백하지만, 경우에 따라 정치권에 화두를 던지는 고도의 옥중 정치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씨를 면회하고 온 여권 한 관계자는 “0.98평의 작은 방에서 참여정부의 원칙과 성공을 위한 거대한 그랜드디자인이 숙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왼쪽)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2004년 6월 21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 가교 담당 743호

안씨를 면회한 사람들은 안씨가 구치소에서 새 친구를 사귄 게 확실해 보인다고 얘기한다. 주인공은 DJ정부의 실세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서울구치소에서 함께 수감생활을 해온 두 사람은 동병상련으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는 것. 서울구치소 사람들은 이재정 이상수 전 의원 등에 이어 ‘재기’ 수순을 밟을 대표적 인물로 안씨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안씨의 장밋빛 미래를 입에 올리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18일, 대선 막바지 서울 명동 유세에서 정동영 의원이 연단에 올라 노무현 후보와 손을 잡는 것을 본 ‘통합21’ 정몽준 대표 측은 극도로 흥분했다. 인근 식당에서 긴급 참모회의를 연 정대표 측은 끝내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이 대형사고를 부른 사람은 서갑원 의원이었다. 그가 정의원을 연단 위로 떠밀었기 때문이다. “노후보와 정대표만 단상에 서 있는 모양새가 어색해 그랬다.”

노대통령의 ‘그림자’이자 대형사고를 친 주인공답게 국회의원회관 그의 방은 청와대와 국회의 가교역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과 연을 맺고 있는 386인맥들이 서의원 방을 자주 찾는다는 후문이다. 국회와 청와대 식구들이 모두 편하게 생각하는 방이 743호 서의원 방이라는 말도 나온다. 당내에서는 그가 친노그룹의 전위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의원은 최근 이광재 윤호중 백원우 의원 등과 함께 ‘의정활동연구센터’를 만들었다. 서의원 측은 신(新)성장동력 탐방 프로젝트를 만들어 산업현장을 돌아볼 계획이다.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유인태 의원은 17대 국회 출범과 함께 비서진에게 이색적인 주문을 했다. 자신의 방(709호) 앞에 ‘짐승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이라는 것이다. 유의원이 말하는 짐승은 기자들을 말한다. 측근들은 이 말을 흘려들었지만, 유의원은 지금도 비서들을 채근하며 ‘짐승’들과 대면을 극구 거부한다. 유의원은 말이 험하다. 욕도 잘한다. 기자들과 술을 마시면 어느 순간 욕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렇지만 기자들은 그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그가 툭툭 던지는 말 속에 이른바 ‘고급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험한 그의 말이 기자들에게는 반갑기까지 하다.

유의원은 짜여진 틀을 싫어한다. 수행원 없이 혼자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간이 나면 이 방 저 방 다른 의원 방을 수시로 찾는다. 김원기 국회의장과 임채정 김부겸 이호웅 염동연 의원 등의 방이 그가 즐겨 찾는 곳이다. 유의원은 집 근처 목욕탕이나 가게를 자주 이용한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진짜인 줄 모르고 “유인태 닮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盧心? 의원회관 323호에 물어봐!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

유의원은 6월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이나 행정자치위원장을 희망했다. 그러나 3선 중진이 아니란 이유로 상임위원장에서 밀려나자 “얼마나 산다고…”라며 곧바로 포기하고 국회 자신의 방에서 다른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최근 유의원 방은 긴장감이 돈다.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성공을 위해 막전막후에서 상당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와 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노대통령과 기 싸움을 벌일 정도인 유의원이 각종 민원과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측근은 유의원이 민원과 청탁을 거부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대부분의 청탁자들도 이 논리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유의원은 기자들 보는 앞에서도 인사청탁 얘기를 입에 올린다. “아, 이런 사람한테 인사청탁 들어왔는데 어떻게 하지…”라며 묻곤 한다. 참여정부의 핵심 실세가 스스로 인사청탁과 관련해 커밍아웃을 했지만 이를 기사화한 기자는 없다. 유의원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음을 기자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간동아 444호 (p24~26)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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