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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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신탁’ 적용은 17대 의원부터

  • 심재엽 /한나라당 의원(강원 강릉)

    입력2004-07-16 1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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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신탁’ 적용은 17대 의원부터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는 공직자가 재임 중 재산을 공직과 무관한 대리인에게 맡겨 절대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백지신탁제도’라 부른다.

    백지신탁제가 추진될 경우 공직자는 직위를 이용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나 채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입안이나 법 집행을 하기 힘들다. 따라서 정책 입안과 집행이 그만큼 투명해진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나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뿐만 아니라 부통령, 장관, 군 장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위 공직자가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이다.

    최근 정부 및 여야가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에게 백지신탁제의 도입을 예고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17대 국회의원들에게도 주식 백지신탁제도를 적용할 것이냐 하는 미묘한 문제와 신탁된 주식을 수탁자가 일정기간 이내(정부안 최장 90일)에 강제 매각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공직자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시대적 흐름으로 본다면 백지신탁제의 도입은 당연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사회적 판단 기능 및 장치가 개혁과 반개혁이란 이분법적 단순논리로 재단되는 상황에서 반대할 명분이나 논리는 더더욱 찾기 힘든 형국이다.

    “4년 임기 동안 깨끗한 정치 하겠다는 의지이자 약속”



    그러나 공익과 사익의 ‘충돌’을 막기 위한 백지신탁제의 순기능 이면에는 기업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일부 공직자 및 정치인들의 기업경영권 방어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점이 숨어 있다. 이 때문에 적용 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많은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는 눈치다.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필자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필자는 비교적 빨리 생각을 정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지신탁제는 17대 국회에서 조건 없이 도입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17대 국회의원들도 4년 임기 동안 깨끗한 정치를 하고 부패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백지신탁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거론되는 백지신탁제는 소급입법에 대한 문제와 공무담임권 및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위헌 문제가 현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도덕성과 청렴성, 정치권의 부패현상을 제도적, 근원적으로 근절해야 한다는 시대와 국민의 요구, 명분을 거역할 더 큰 상위개념의 명분이 없는 한 소급입법에 대해 위헌적 요인을 문제 삼는 태도는 옹졸해 보인다.

    다만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 몇 가지 보완작업과 장치를 하는 것이 과도기적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먼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보유 주식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판정되어 신탁명령을 받은 자는 수탁기관에 신탁한다.

    둘째, 상장 및 등록주식은 기준일을 정해 그날의 종가를 신탁가격으로 확정하고, 비상장주식은 내부유보율 및 성장성을 감안하여 전문기관의 심사를 통해 기준일의 주당가치를 신탁가격으로 확정한다.

    셋째, 임기 만기 후 주식을 반환받을 때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는 신탁자의 위법행위로 주식의 신탁가격이 상승했는지를 심사(필요하면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위법행위로 얻은 이익이 있을 때 이익분의 환수를 명령한다.

    넷째, 신탁자가 주식의 현금화를 위해 신탁 기간 중이라도 필요한 때는 언제든지 수탁자에게 요구하여 매각할 수 있어야 한다(단, 위법행위로 주식가치 상승이 있었는지는 이때도 심사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17대 국회의원은 소급입법의 논란과 관계없이 위에서 제시한 방안에 따라 보유주식을 신탁함이 옳다고 본다.

    신탁방법은 보관신탁을 원칙으로 하되, 중간에 재산권의 행사 차원에서 매각이 가능해야 하며, 이때를 포함해 임기 만기시 위법행위에 의한 이익에 대해 법적 환수가 이루어진다면 모든 시비 거리는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17대 국회의원 모두는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 거기에 걸맞은 입법 행위와 정책 결정을 해나가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4년 뒤 또다시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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