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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색 과학자 열전3

소리 연구하다 푹 빠진 ‘색소폰 사랑’

서울대 성굉모 교수 … “음악은 말보다 더 명확한 의미 전달, 국악기에도 각별한 관심”

  •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스 객원기자 rosewise@empal.com

소리 연구하다 푹 빠진 ‘색소폰 사랑’

소리 연구하다 푹 빠진 ‘색소폰 사랑’

음향공학을 연구해온 성굉모 교수는 현재 음악대학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분위기 있는 카페, 자욱한 담배 연기와 어두운 조명, 그리고 재즈…. 색소폰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색소폰 연주자를 만났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성굉모 교수(57)가 바로 그 주인공. 아담한 체구에 동그란 금테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소유한 그를 보면, 품에 안긴 색소폰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서울대 뉴미디어통신연구소 건물 지하에 마련된 음향학연구실에서 매일 오전 색소폰 연습에 몰두할 만큼 색소폰을 사랑하는 과학자다. 공대 교수인 그가 색소폰 연주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독일 속담에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악이든 기악이든 음악을 사랑하고 연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습은 필수입니다. 색소폰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좀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왜 하필 색소폰일까. 성교수는 이 궁금증에 대해 멘델스존의 명언을 인용하며 명쾌하게 대답했다. “음악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런데 색소폰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천의 음색을 가졌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다양한 색깔의 소리를 구사할 수 있어요. 가장 성스러운 교회음악에서부터 클래식 가요 팝송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악기죠. 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가 인간의 흥겨움이나 흐느낌을 나타내는 목소리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연주자의 상상력도 높여줍니다. 소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교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대 교수직도 맡아 음향학 강의

성교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의 아헨공대에서 음향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3년 귀국해 모교의 전자공학과(현재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음대 교수직도 함께 맡아 악기의 발음 메커니즘과 과학적 특징 등 음악음향학을 강의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성교수의 세부 전공인 음향학은 소리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분석하고 수치로 표현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음대에서 강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전공에서 음악과 소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 그에게 언제부터 음악과 친숙한 인연을 맺었는지 물었다.

“중학교 시절의 장래 희망은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안익태 선생이 지휘하는 국립교향악단(KBS 교향악단 전신)의 ‘코리아 판타지’를 감상한 뒤 지휘자를 동경하게 된 소년. 성교수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그는 6•25 전쟁이 끝나던 해인 1953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밥 굶는 건 보통이고 맨발로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던, 극히 어려웠던 시절. 주변에서 구경할 수 있는 악기라곤 교실에 있는 풍금과 몇몇 아이들이 갖고 있는 하모니카가 전부였다. 그는 아버지가 선물한 ‘귀한’ 하모니카 소리에 반해 음악에 빠졌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음악 선생님한테서 작곡 공부를 권유받을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음대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누구보다도 강했던 학자인 셈이다.



소리 연구하다 푹 빠진 ‘색소폰 사랑’
“1971년, 독일 아헨공대로 유학을 갔습니다. 세부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데 안테나공학, 전자재료공학, 음향공학 중에서 택할 수 있더군요. 엔지니어로 성공하려면 안테나공학이나 전자재료공학을 전공하는 게 유리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미련이 남아서 음향공학을 선택했습니다. 운 좋게도 지도교수가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한 수준을 갖춘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공부하는 데 더욱 재미를 붙일 수 있었죠.” 그는 독일에서 바이올린의 음질평가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 관련 음향학을 전공했다. “연구 주제가 악기 소리였기 때문에 수십 년간 바이올린과 함께 생활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친구이자 애인으로 함께한 바이올린보다 우연히 접한 색소폰을 더 좋아하게 됐으니 색소폰과 저는 참으로 운명적인 인연인가 봅니다.”

“악기 개량 꺼리는 풍토 안타까워”

색소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1998년. 술 마시기 좋아하던 성교수에게 건강을 위해 술보다는 악기연주에 취미를 붙여보면 어떻겠냐는 친구의 권유로 색소폰을 처음 만난 뒤 그에게 색소폰은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가 됐다.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색소폰만 6개.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악기 연구나 음대 강의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관악기 강의를 할 때 이론은 제가 가르치고 데모(시범)는 음대 학생에게 시켰는데 생각보다 불편하더군요. 색소폰 연주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직접 음계를 불며 가르칠 수 있으니 탁상공론에서 생생한 실무교육으로 거듭난 셈이죠.”

색소폰과 ‘지독한’ 사랑에 빠진 성교수지만, 그의 악기에 대한 관심은 훨씬 광범위하다. 서양악기, 국악기, 민속악기 등 모든 악기에 관심이 많아 집에 악기 보관창고를 따로 마련했을 정도. 제자들도 악기에 대한 애정을 잘 알고 있어 해외 연주회나 출장을 다녀오면 꼭 그 나라 전통악기를 선물한다고 한다. 요즘 성교수는 국악기의 음향특성 분석 및 개량 관련 연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양악기에 대한 연구는 이미 상당 부분 완료됐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서양인들이 지금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악기에 대한 연구는, 체계적 연구는 물론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국악인들이 국악기의 개량 자체를 꺼리고 있다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음악을 사랑하는 과학자로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도 사명감을 갖고 실천할 생각입니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특별한’ 전공을 택했고, 전공에 필요해서 지속적인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성교수.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과학과 음악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정겨운 만남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성굉모 교수 약력

-1977년 독일 아헨공대 전자통신공학 석사

-1982년 독일 아헨공대 음향공학 박사

-1977년 독일 아헨공대 음향공학연구소 연구원

-1983년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1994년 한국통신 이사

-1997년 서울대 뉴미디어통신연구소 소장

-현 국방부 지정 서울대 수중음향특화센터 소장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주간동아 442호 (p68~69)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스 객원기자 rosewis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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