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2

2004.07.08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청주 원흥이 마을 개발 직면 … 산림파괴 등으로 생태계 교란 불 보듯 ‘산란빞?치?위기

  • 청주=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7-01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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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원흥이 방죽\'을 둘러싼 구룡산 자락은 두꺼비 등 갖가지 생물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였지만, 최근 토공의 토지 개발로 인해 상당 부분 깎여나갔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할 수 있을까. 지역개발론과 환경보전론은 아름다운 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까. ‘두꺼비마을’로 불리는 충북 청주시 ‘원흥이 마을’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발이냐 보전이냐를 놓고 1년째 논쟁을 계속해오던 한국토지공사(이하 토공)와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가 서로 절충안을 내놓고 대타협을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원흥이 마을’은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금성자동차학원 뒤편 일대를 가리킨다. 밖으로는 구룡산 자락이 마을을 감싸고 가운데에는 ‘원흥이 방죽’이라 불리는 아담한 못이 있는 이곳은 2002년 토공이 일대 33만2000평에 대한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 청주지방법원(이하 청주지법)과 청주지방검찰청(이하 청주지검)이 들어서고 2만여 가구가 입주하는 주택지가 건설된다는 사실에 땅값이 최고 평당 2200만원에 이를 만큼 투기 열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원흥이 방죽' 주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종류의 실잠자리들.

    그러나 토지 매각이 끝나고 본격 공사를 앞둔 2003년 3월, 청주지역의 시민단체인 ‘생태교육연구소 터’는 이 개발 예정지가 실은 생태계의 보고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구룡산 자락에서 겨울잠을 자던 두꺼비들이 산란기가 되자 일제히 깨어나 ‘원흥이 방죽’으로 내려오는 모습, 못 안에 알을 낳은 뒤 다시 봄잠을 자기 위해 산에 오르는 모습 등이 관찰된 것. ‘원흥이 방죽’이 두꺼비의 집단 산란지였음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5월 초에는 방죽 안에서 자라난 15만여 마리의 새끼 두꺼비들이 서식지를 찾아 구룡산으로 떼지어 올라가는 모습까지 목격돼 이 지역의 생태적 가치는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환경단체들은 이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보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두꺼비 외에도 희귀 동식물 많은 ‘생태 보고’

    일대의 땅이 온통 두꺼비들로 뒤덮였던 이 ‘대장정’은 두꺼비의 ‘귀소본능’에 의해 이뤄진 것. 어미 두꺼비는 산란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 알을 낳고,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서식지로 돌아온다. 책을 통해 배울 수밖에 없었던 죽은 지식이 ‘원흥이 마을’의 두꺼비 대이동을 통해 생생한 현실로 입증된 것이다. 이후 도심에서 겨우 5분 거리면서도 그동안 일반 주민들에게 낯선 곳이던 ‘원흥이 마을’은 ‘생태의 보고’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두꺼비의 대이동과 올챙이의 성장을 보기 위한 학생들의 생태학습이 줄을 이었다. 가족단위 관광객들도 주말이면 하루 수천명에 이를 정도가 됐다.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생태교육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원흥이 방죽'을 찾은 어린이들이 못 안의 두꺼비 올챙이 등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토공은 이미 토지 매각이 끝났다는 이유로 올 2월 공사 강행을 선언했고, 지역 시민단체들은 나무를 끌어안고 벌목을 막는 ‘칩코 운동(산림 보호운동)’까지 벌이며 강력 저항에 나섰다. 지역 종교인들로 구성된 시위단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16일간 단식을 벌였고, 충북도 내 4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시민대책위 소속 회원들은 이 지역에 ‘두꺼비 생태공원’을 조성할 것을 촉구하며 원흥이 방죽에서 토공 충북지사에 이르는 구간을 삼보일배하기도 했다. 시민대책위는 6월9일부터 청주지법과 청주지검 앞에서 ‘원흥이 생태를 살리기 위한 지역민 60만배’도 진행하고 있다.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원흥이 마을'에서 목격된 허물을 벗고 있는 잠자리.

    이 지역이 토공의 개발계획대로 고층 아파트와 지법, 지검 등이 들어서는 집단 주거지로 변모할 경우 두꺼비의 산란지와 서식지인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 일대 지역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원흥이 마을’에 두꺼비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인 원앙, 새매, 황조롱이 등 20여종의 희귀 조류와 환경부 지정 보호종인 맹꽁이 등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개발공사 저지’를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지역 주민들에 의해 새롭게 생태공원으로 태어난 '원흥이 방죽' 모습.

    실제로 ‘원흥이 마을’에서는 지금도 밤이면 고라니, 수리부엉이 등 깊은 숲 속에나 있을 법한 짐승들이 목격된다. 공사가 시작된 후 많은 동물들이 이 지역을 떠났는데도 여전히 물총새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찌르레기 꾀꼬리 등의 새와 너구리 등의 포유류, 1급수 지표종인 가재 도룡뇽 옆새우 등 수생생물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관찰되고 있다. 까치떼가 맹금류인 새매를 몰아내고 사냥한 먹이를 빼앗는 장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 둥지를 만드는 장면 등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들이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에 이처럼 완결된 생태계가 형성된 이유는 생태계의 중간자인 양서류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은 “양서류는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먹이사슬의 중간 단계를 차지하고 있다.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원흥이 방죽'에서 부화한 새끼 두꺼비들이 서식지를 찾아 구룡산 방향으로 집단 이동하고 있는 모습.

    두꺼비와 같은 양서류가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역은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개발이 진행돼 산림이 파괴되고 두꺼비의 이동통로가 막힐 경우 ‘원흥이 마을’의 생태계는 곧 파괴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교원대 생물교육과 박시룡 교수도 “인근 산림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면 결국 짐승들의 살 곳과 먹을거리가 사라지고 지역 전체의 생태계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개발계획대로라면 내년이면 생물종이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고, 결국 몇 년 지나면 ‘원흥이 마을’ 지역도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생명의 불모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주장은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원흥이 마을’ 생태계의 중심지인 ‘원흥이 방죽’ 주변의 생태만이라도 원형이 유지되게 개발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거미들의 부화 장면.

    토공, 생태 이동통로 제안 ‘타협 실마리’

    이 같은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용지 보상과 토지 매각이 끝난 상태에서 개발 공사가 지연되면 입주자들에게 큰 손해가 생긴다”며 공사 강행 의사를 밝혔던 토공이 먼저 한 걸음 물러섰다. 개발계획을 일부 수정해 두꺼비의 산란지인 ‘원흥이 방죽’부터 서식지인 구룡산 사이에 3곳의 두꺼비 이동통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토공 충북지사 이재영 소장은 “택지개발지구 서쪽에 폭 20m의 생태 이동통로를, 북쪽에는 공동주택지 안 녹지에 폭 4m의 생태 이동통로를, 또 청주지검 부지 안에 폭 4m의 생태 이동통로를 만들어 두꺼비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시민대책위도 ‘상생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며 화답하고 있다.

    ‘두꺼비마을’서 두꺼비 쫓겨날라

    석잠풀.

    산림 보호를 위해 구룡산 자락에 건설 예정인 청주지법과 청주지검 건물을 아예 ‘원흥이 방죽’ 아래쪽으로 내려 지으라고 주장하던 기존의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두꺼비들이 이동로로 주로 이용하는 능선 쪽 산림만 보존된다면 건물 방향을 바꾸는 정도의 계획 변경도 용인하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 이미 개발계획이 수립된 상황에서 건물의 위치 자체를 바꿀 경우 주변 토지를 매입한 이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다. 시민대책위는 새로운 타협안을 들고 대법원 행정처장과의 면담을 추진 중이다.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태교육연구소 터’ 박완희 사무국장은 “아직도 양자간의 주장에 차이가 크지만 ‘원흥이 방죽’과 주변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데 토공과 지역 주민들이 뜻을 함께한다면 분명 방법은 나올 것이라고 본다. 생태적으로 좋은 환경이 인간의 삶에도 도움이 된다는 대전제 아래서 개발과 보전이 수렴되는 절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오랜 논란 끝에 절충점을 찾아가고 있는 원흥이 마을의 미래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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