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스포츠 불멸의 기록⑩ | 마크 스피츠

나갔다 하면 金 ‘올림픽 7관왕’ 위업

미국이 낳은 불세출의 수영 영웅 72년 대회서 대기록 … 68년에도 금메달 2개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lo54@yahoo.co.kr

나갔다 하면 金 ‘올림픽 7관왕’ 위업

나갔다 하면 金 ‘올림픽 7관왕’ 위업

수영선수 마크 스피츠와 약혼녀.

1968년 멕시코올림픽을 앞두고 마크 스피츠는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큰소리쳤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최소한 금메달 6개를 따오겠다. 아마 올림픽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금메달을 2개밖에 따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개인종목이 아니라 팀 동료들과 함께 출전한 400m 계영과 400m 혼계영에서였다. 개인종목에서는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에 그쳤다.

대학시절 세계신기록 28개 작성

미국인들이 실망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마크 스피츠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건방지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가 “나는 앞으로 장담도 예측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수영만 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스피츠는 1950년 2월10일 캘리포니아 주 모데스토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은 하와이에서 보냈다. 9살 때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로 이사한 뒤 수영을 시작했고, 15살 때부터 경기에 출전해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한 국제대회에서는 4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스피츠는 이때부터 건방져지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그에게 “수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것도 아무도 달성한 적이 없는 세계신기록으로”라고 조언해 오만함에 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나 멕시코올림픽에서의 실패는 스피츠를 약간은 겸손하게 만들었다.

멕시코에서 실망을 안고 돌아온 스피츠는 인디애나 대학에 입학해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키 182cm, 몸무게 77kg의 체격 조건은 당시 기준으로는 나무랄 데 없었다. 스피츠의 활약으로 인디애나 대학은 미국대학수영선수권에서 3연패했다. 인디애나 대학의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자유형과 접영에서 무려 28개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스피츠는 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4년 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당대 최고의 수영코치인 셔먼 샤보를 지도자로 받아들여 날마다 4~5시간씩 훈련을 했다. 수영에 적합한 체격조건, 힘찬 스트로크, 그리고 지기 싫어하는 투지 등이 4년 전 풋내기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뮌헨올림픽을 앞두고는 4년 전처럼 큰소리를 치거나 자신의 경기 결과를 예상하지도 않았다. 매스컴에서 “이번에는 금메달을 몇 개나 딸 것 같으냐” “누구를 라이벌로 생각하느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영 전문가들이 계주종목에서 4개, 개인종목에서 3개 등 7개까지 가능하다고 예상했고, 스피츠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갔다 하면 金 ‘올림픽 7관왕’ 위업

역영하는 마크 스피츠.

은퇴 후엔 CF·방송출연으로 돈방석

스피츠는 72년 8월28일 올림픽 수영장에서 온몸으로 답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첫 종목은 접영 200m였다. 스피츠는 2분07초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2위와 2초나 차이가 나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스피츠는 같은 날 400m 계주의 미국 팀 주장으로 출전해 역시 세계신기록으로 두 번째 금메달을 땄다.

8월29일 경기는 200m 자유형이었다. 라이벌은 4년 전 멕시코대회 금메달리스트인 호주의 마이크 웬덴과 팀 동료 스티브 젠더였다.

레이스 중반까지는 젠더가 스피츠를 조금 앞서나갔다. 그러나 올림픽을 며칠 앞두고 간단한 수술을 받은 젠더는 100m를 돌아서면서 처지기 시작했다. 결국 스피츠는 1분52초27의 기록으로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00m 접영과 800m 계영에서 잇따라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5개의 금메달을 건졌다.

이어 스피츠는 400m 혼계영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 6관왕에 만족하려 했다. 그러자 셔먼 샤보 코치가 “만약 마지막 자유형 100m를 포기하면 박살 내고 말겠다”고 위협(?)했다. 스피츠는 할 수 없이 자유형 100m에도 출전해 팀 동료 제리 해브텐리크를 제치고 세계신기록으로 일곱 번째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자유형 100m에서 스피츠에게 뒤져 은메달에 그친 해브텐리크는 “ 스피츠는 신체조건이 수영에 적합하다. 키에 비해 다리가 매우 긴 데다 긴 다리를 쭉 뻗어 보통선수들보다 15cm 정도는 길게 물을 차낸다. 그의 다리는 마치 활처럼 굽어 바지를 입어도 옆줄이 휘어질 정도다. 그래서 다리의 탄력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차다”고 분석했다.

지금이야 한 대회에서 금메달 6개를 딴 선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5개가 최고기록이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에서 미국의 체조선수 안토 하이(개인종목 4개 단체종목 1개)와 20년 이탈리아 펜싱선수 네도 나디(개인종목 2개 단체종목 3개), 미국 사격선수 윌리스 리(단체종목 5개), 핀란드 장거리 육상선수 파보 누르미(개인종목 3개 단체종목 2개) 등이었다.

뮌헨올림픽에서 돌아온 스피츠는 ‘치과의사의 길을 택할 것이냐’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추가해 자신이 갖고 있는 통산 9개 금메달 기록을 경신하느냐’를 놓고 망설였다. 당시 스피츠는 22살의 치대생이었다. 스피츠는 치과의사도 수영선수도 아닌 돈을 택했다. 면도기와 우유회사 CF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보브 호프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가 코미디도 하면서 준연예인이 되었다. 수영 못지않게 돈버는 재주도 뛰어나 스포츠맨 출신의 최고 거부가 된 것이다.





주간동아 442호 (p78~79)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lo54@yahoo.co.kr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16

제 1316호

2021.11.26

“삼성전자 승부수는 차량용 반도체기업 인수합병”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