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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내 이름은 용감한 새

인디언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인디언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인디언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새 천년’을 앞두고 로마 가톨릭 차원에서 지난 1000년을 되돌아보며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백인의 약탈과 만행을 신의 이름으로 허락한 사실에 대해 반성한다고 말했다. ‘자유와 기회와 희망의 땅’ 미국에서 벌어진 인디언 약탈이 얼마나 잔혹했으면 지난 1000년의 반성목록에 들어갔을까.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과 원주민 간의 인종 갈등은 1890년 ‘운디드 니 사건’이 난 뒤 공식적으로 종결됐다. 이후 인디언들은 과연 망각의 포로가 돼 빛 바랜 사진처럼 보호구역에 ‘보관’돼 있거나, 백인 사회의 틈바구니에 끼여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의 삶을 이어왔을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혹감을 경험해야 할 듯하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아온 한 인디언 여성의 삶을 그린 ‘내 이름은 용감한 새’는 우리의 인식을 바꿔놓는다. 인디언들은 인권의 모범국가로 알려진 미국에서 공식적인 ‘멸망’ 이후에도 끊임없이 핍박과 소외자의 삶을 살아왔으며, 인디언의 저항도 격렬하게 계속됐음을 확인하게 한다.

주인공 ‘메리 까마귀개(결혼 전 이름은 ‘용감한 새’)’는 백인과 인디언 혼혈로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는 ‘장미 꽃봉오리 보호구역’에서 수우족 인디언으로 태어났다. 백인과 순수 혈통 인디언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인디언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 살려면 인디언임을 포기해야 한다.”



할머니는 손녀의 앞날을 위해 그렇게 교육했다. 백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안락한 삶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줄 마법의 열쇠라고 여겼던 것이다. 손녀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인디언을 기독교로 개종시켜 백인화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가톨릭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는 문제아였다. 자신의 정체성 탓에,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끊임없이 방황했다. 그 아픔을 극단의 방황으로 해소하려 했다.

“한도 끝도 없이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고, 의붓아버지와 싸우는 일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도망쳤다. 늘 술을 마셨고,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살았다. 열일곱 살 나이에 내 소일거리는 술과 마리화나가 전부였다. 위스키를 마셨다. 물도 타지 않고 마셨지만, 조니 워커나 커티 삭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열다섯 살 되던 해 그는 성폭행을 당했고, 친구는 용감하다는 이유로 38구경 총알이 박힌 채 눈 속에서 발견됐다. 언니는 아이를 낳고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인디언의 씨를 말리겠다”는 백인의 뜻으로 원하지도 않은 불임시술이 돼 있어 울었고, 아이가 두 시간 만에 죽어 절망했다.

사람들은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지만 그는 마실수록 잊혀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대책 없는 반항아였다. 어느 날 일부러 ‘인디언과 개 출입금지’라는 간판이 내걸린 술집에 들어가 백인 여자 옆에 앉았다. 백인 여자가 “염병할 더러운 인디언 같으니, 길거리 시궁창으로 꺼져”라는 말을 하자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유리 재떨이를 깨뜨려 날카로운 모서리로 여자의 얼굴을 그어버렸다.

그런 그가 새로운 삶을 발견한 계기는 인디언의 인권을 지키려는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AIM)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보호구역에 사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절망적인 삶을 영위하던 그는 진정한 인디언으로 다시 살고자 하는 희망과 목적을 발견한 것이다. 백인에게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운, 자신이 삶의 주인공일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겪는 까닭은 낯설고 더 힘센 문화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부족의 생활방식과 언어, 가치를 지키려고 애쓰는 인디언이기 때문이다.”

인디언의 생활방식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정신, 인디언의 영적 전통을 이어받는 것을 말한다. 수우족 사회의 중심에는 티요스페이예(tiyospaye)라는 대가족 집단이 있었다. 거기에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이 있었다. 예컨대 한 사람이 끼니를 이을 수 있으면 다른 일가붙이도 끼니를 굶지 않아야 한다는 전통이다. 그래서 “양식과 가스를 사려고 하는데 5달러가 필요하네”라며 일가붙이가 찾아와 부탁하면 단돈 한 푼이라도 있는 한 친척을 대접하는 게 성스러운 의무였다.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용감한 새’는 이제 더 이상 절망의 몸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백인의 핍박 앞에 당당했고, 백인이 법으로 금지한 신성한 ‘태양 춤’을 복원한 ‘레오나드 까마귀개’와 결혼도 했다. 아픔과 절망을 딛고 인디언으로서 자기 정체성과 자신감, 삶의 희망을 되찾은 여인의 이야기다. 도시 개발 때 주변부로 밀려났던 우리 도시 빈민의 모습이 겹쳐진다.

메리 크로우 도그·리처드 에르더스 지음/ 신홍민 옮김/ 두레 펴냄/ 424쪽/ 1만8000원

Tips | 운디드 니(Wounded knee) 사건

1890년 12월29일 미국 사우스다코다주의 운디드 니에서 제7기병대와 인디언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인디언 300여명과 백인병사 60여명이 죽은 사건. 이를 계기로 인디언의 힘은 크게 쇠퇴했다. 1973년 아메리칸 인디언운동이 다시 한번 이곳에서 일어나 장기간 군경과 대치해 인디언의 권리보호를 주장했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권리는 좀체 진전되지 않았다. 인디언 출신의 첫 미국 상원의원(벤 나이트홀스 캠벨)이 탄생한 때는 1992년에 와서였다.



주간동아 2004.06.10 438호 (p86~87)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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