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8

2004.06.10

民生은 들고 특권은 두고 등원하라!

17대 국회 국민 개혁 여망 속 출범 … 상생 토대 일하는 국회 새 모델 창출 기대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6-02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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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김경재 전 의원이 “동원산업이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요구로 노후보 캠프에 50억원을 제공했다”는 지난 1월의 폭로와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때는 5월27일. 현역 의원이 의혹 폭로로 구속되기는 처음이었다. 김 전 의원은 서울 영등포구치소로 향하면서 “법적 윤리적 책임을 모두 지겠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2003년 10월17일 국회 본회의장.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메모지를 들고 대정부질문에 나섰다.

    “유시민 의원이 2002년 대선 직전 주중 북한대사관을 수차례 방문했다.”

    색깔론이라는 비판이 터졌지만 현정권을 흠집내는 데는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그러나 김의원의 주장은 2시간 만에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김의원의 주장 직후 유의원이 신상 발언을 통해 “중국 영토에 발 한번 디뎌본 적 없다”며 여권사본을 공개했기 때문. 직후 김의원은 사과성명을 냈다. 그러나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등과 관련해 법적으로 책임을 진 것은 없었다. 같은 허위폭로임에도 한 사람은 구속됐고, 한 사람은 정치적 사과로 끝을 냈다. 무슨 차이 때문일까.

    각종 특권과 혜택 제한 법·제도적 수술 진행

    결국 폭로의 장소가 문제였다. 김무성 의원은 ‘국회 안에서의 발언은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허위사실을 공개했다. 반면 김경재 전 의원은 스스로 이 보호막을 걷어올리며 정면승부를 자청했다. 그는 1월 라디오방송과 당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동원산업의 50억원 제공설을 거론해 화를 자초한 것.



    16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가 계속 터져나왔다. 대선과 총선 등을 겨냥해 일단 터뜨리고 보는 행태가 봇물을 이룬 것. 이런 무책임한 폭로의 배경에는 바로 ‘면책특권’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든 면책을 받았던 정치인들의 이런 특권은 때로는 정쟁의 수단으로, 때로는 경쟁자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활용됐다. 17대 국회 출범을 계기로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정치권도 스스로 이 특권이 갖는 모순을 알고 부끄러워하는 분위기다. 여야는 국회 개혁의 대표적인 사안 중 하나로 이를 거론하며 개선책을 찾고 있다.

    면책특권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회의원의 각종 특권과 혜택을 제한해야 한다는 광의의 개혁, 개선론으로 확대된다. 이미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법적·제도적 수술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3월11일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마음은 급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를 앞두고 최대표는 “당론을 따르지 않으면 출당 및 공천 박탈 등 가능한 모든 강경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당시 최대표의 카리스마는 하늘을 찔렀고 소속 의원들은 기세에 눌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투표결과 2표만이 반대해 최대표의 압박은 제대로 먹혀들었음이 확인됐다. 최대표의 이런 획일적 지시는 3김시대를 관통하는 1인 보스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의원 개개인이 입법기관으로 법적인 독립성이 보장됐지만 정치인들은 이런 권리를 굳이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보스의 핵우산 밑으로 숨는 경향이 더 많았고 이는 16대 국회의 또 다른 자화상으로 평가된다.

    개인 소신보다 당론 판 치는 모습 혁파 0순위

    17대 국회는 이런 기형적 모습에도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당론을 넘어 개인의 판단을 존중하는 크로스 보팅(교차·자유투표)을 활성화하자는 주장이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미 크로스 보팅을 전제로 한 각종 담론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크로스 보팅 활성화는 몸싸움을 막고 토론과 합의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문제는 원인을 파악해 처방전을 내놓는 것이다. 개인 소신보다 당론만이 판을 치는 배경은 무엇일까. 당지도부나 계파 보스가 방향을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정치를 훨씬 편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시를 거부할 경우 당장 다음 총선 공천권이 불투명해진다. 반대로 오더를 받아들일 경우 일단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경우에 따라 당직과 국회직 등 ‘자리’까지 보장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선택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검찰이 현역 의원을 체포하거나 구속할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동료 의원을 구속하는 데 대해 정치인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법과 원칙보다 의리를 우선한 그들의 행태는 2003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을 비롯해 7명의 현역 정치인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이 체포동의안을 줄줄이 부결시켰다.

    차떼기 주역 등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정서는 하늘을 찔렀지만 칼자루를 쥔 의원들의 일방행동을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15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가 근 1년여 동안 열렸을 때도 국민들은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런 특권도 17대 국회는 도마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 국민여론은 한마디로 이를 ‘쓸데없는 특권, 특권을 위한 특권’으로 치부한다.

    투표로 퇴출 ‘국민소환제’ 도입 긍정적 반응

    이런 특권을 스스로 반납하지 않을 경우 17대 국회는 더욱 가혹한 제도를 통해 정치인들을 다스릴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국민소환제를 통해 국민이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자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처럼 국회의원의 비리 실정(失政) 등에 대해 유권자들이 투표로 해임할 수 있게 하자는 제도가 국민소환제다. 여야는 이 제도 도입에 모두 긍정적이다. 몇몇 인사들의 생각이지만 부작용을 막기 위해 소환요건을 당선일 1년 후부터, 임기 말 1년 전까지만 가능하게 하자는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검토 중이다. 소환발의도 유권자 일정비율 이상이 요구할 것을 명시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소환제와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한발 빨랐다.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가 5월 이미 잇따라 관련 조례를 통과시켰다. 반면 국민소환제가 남발될 경우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행정공백과 지역구민의 분열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일하는 국회, 개혁과 변화에 앞장서는 국회를 염원하는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나태와 무기력을 감시하기 위해 국민소환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소환제는 17대 국회에 진입한 정치인들에게 족쇄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17대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일하는 국회, 싸우지 않는 국회다. 일하는 국회는 원내정당화가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우리당은 원내정책정당화를 위해 ‘새정치실천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비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총선공약으로 내세운 국회 상시개원제를 비롯해 비상설 국회 예산결산특위의 상임위 전환 등 구체안을 만들고 있다. 여야는 ‘일하는 국회’를 위해 ‘입법 인프라’ 구축에 한창이다.

    상시 국감 열리면 행정부와 관계도 급변

    상시 국정감사도 17대 국회의 새로운 변화상으로 떠오른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연간 20일로 정해진 국정감사를 상시 국감 형태로 바꾸는 방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5월 당 운영위원회에서 여야 대표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국정감사는 1년에 20일인데, 상임위별로 필요하면 1년 내내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시 국감 시대가 열리면 국회와 행정부의 관계도 크게 달라진다.

    시민단체들은 17대 국회를 국가보안법 폐지의 최대 호기로 보고 체계적인 투쟁계획을 세워놓았다. 시민단체들은 5월 연대기구를 결성, 국보법 폐지를 목표로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연대기구가 결성된 것은 2000년 임시국회를 앞두고 명동성당 앞에서 벌였던 농성 이후 4년 만이다. 반면 자유총연맹과 자유시민연대는 국보법 폐지 운운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저지운동에 나서겠다고 맞섰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와 보수세력의 마찰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권을 폐지하고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는 것은 실상 제도적 보완만으로 불가능하다. 변화와 개혁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의원들이 실제로 일할 자세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민생경제와 상생정치가 강조되지만 여야는 벌써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총리 지명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여야의 성급한 차기 주자들은 이미 각축 양상을 보인다. 이와 맞물린 계파별 세 불리기 경쟁도 가속화하고 있다.

    17대 국회를 목전에 둔 국민들은 우리 사회 자화상을 ‘불안한 격변기’로 그린다. 여야가 어떤 ‘게임의 룰’을 만드느냐에 따라 17대 국회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17대 국회 초선은 187명. 총의원 수의 63%에 해당한다. 변화의 동력이자 혼란과 위기를 초래하기에 충분한 수다. 때문에 17대 초선은 양날의 칼이다.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으면서 출범한 17대 국회가 출항에 나섰다. 그 뒤를 개혁에 대한 소리 없는 여망이 뒤따른다. 과연 17대는 특권을 거부하는 모범국회로 거듭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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