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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

수라상 생각보다 단출하네!

  • 김재준/ 국민대 교수 jjkim@freechal.com

수라상 생각보다 단출하네!

수라상  생각보다 단출하네!

노무현 대통령은 효자동 \'토속촌\'의 삼계탕을 특히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하도 오래 하셨습니다.” 아마 올해 나온 영화 가운데 최고의 대사가 아닐까 싶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 끝 부분에서 극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발사 성한모에게 오랫동안 한결같이 일해온 것을 치하하자 성한모가 얼떨결에 한 대답이다.

대통령의 장기 집권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대통령의 요리사 가운데에는 장기독재를 하는 이들도 있다. 한번 주방을 차지하면 관저의 주인공이 바뀌어도 수라간의 권력은 그대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대통령의 연인’이라는 영화에서 미국 대통령으로 나오는 마이클 더글러스가 극중 연인인 아네트 베닝에게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라는 말이 침대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농담하는 장면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라고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동안 백악관을 지키며 그들의 식성을 맞춰온 사람이 있다면 그도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등 무려 5명의 역대 대통령의 임기 동안 백악관을 지킨 장기 집권 요리사가 있다. 스위스 사람인 앙리 할러가 바로 그다. 1966년부터 86년까지 20년간 백악관 요리장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그의 고백에 따르면, 참석자가 1000명에 이르는 대연회를 준비하는 일보다 저마다 다 다른 대통령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미국 대통령들은 대체로 간단하고 소박한 음식을 좋아했고 체중 조절을 위해 디저트를 생략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역대 대통령 부인들이 주방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들도 그랬는지 궁금해진다.

권력은 음식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권력자의 만찬은 매우 화려하다.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요리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요리 재료는 바다제비집, 낙타 혹, 곰 발바닥, 원숭이 골, 오랑우탄 입술, 표범 태반, 코뿔소 꼬리, 숫호랑이 고환 등. 만한전석은 청나라 강희제가 자신의 환갑을 맞아 이틀간 만족(滿族)과 한족(漢族) 노인 2800명을 궁궐로 초청해 갖가지 희귀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대연회를 개최한 데서 연유해 이후 황제의 만찬을 말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식단은 생각보다 검소하다고 한다. 청와대 식단은 진수성찬과 거리가 먼 격조에 주안점을 두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대통령의 기호식품과 영양가, 초청인사의 음식 취향이라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잘 먹는 것으로 유명했다. 해조류와 육개장을 좋아하며 특히 생선회와 흑산도 홍어를 즐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식사는 단출한 편으로 칼국수와 생멸치를 좋아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주 찾은 집은 서울 성북동의 ‘국시집’. 박정희 전 대통령은 소박하게 차린 된장국과 생선구이, 그리고 중국요리를 자주 먹었다고 한다.

수라상  생각보다 단출하네!

복날이면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토속촌 모습.

노무현 대통령은 특히 서민적인 가정식 식사를 그리워한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여름철이면 삼계탕을 즐겨 먹는데 청와대에 입성한 뒤 첫 공식적인 ‘외식 나들이’ 장소가 효자동 ‘토속촌’이었다. 노대통령은 재벌 총수와의 오찬회동도 이곳에서 한 바 있으며, 취임 직후 이 삼계탕집에 요리사를 보내 요리 비법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을 정도다. 이 덕에 식당 주인 박금남씨는 “1000그릇이라도 보내줄 수 있지만 조리법은 영업 비밀이라 가르쳐줄 수 없다”며 거절한 일화로 유명해졌다. 이곳의 닭은 약간 작은 편인데 국물이 아주 진하고 맛있다. 보양식을 원하면 오골계를 추천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식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대통령은 음식이 상에 떨어져도 집어먹을 정도로 소박하고 검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측근들이 대통령으로서의 체통을 이야기하며 “떨어진 음식은 드시지 마세요”라고 하면 “아깝지 않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권위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리더십은 분명 바람직한 것이나 어쩐지 ‘노무현 지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해 불편해한다. 이제는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도 좋지만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대통령이 더 좋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4.06.03 437호 (p100~101)

김재준/ 국민대 교수 jjkim@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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